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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성희롱을 왜 ‘저지른 사람 편’에서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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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38호 최영태⁄ 2011.09.12 14:46:03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죄 없는 사람은 강용석에게 돌을 던져라’는 호소문이 화제다. 강 의원에 대한 무죄 투표를 이끌어낸 명문장이다. 이 글에서 김 전 의장은 “정말로 여러분은 강용석 의원에게 돌을 던질 만큼 떳떳하고 자신 있는 삶을 살아오셨나요?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요?”라고 의원들에게 물었다. 묘하게 자극적이며, 공범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이다. 온갖 추잡한 일에 다 관여하는 게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회의원이고 보면, 그의 질문은 타당하다. 강 의원보다 더한 짓을 하고도, 더한 성희롱을 하고도 살아남은 의원이 한둘이 아닌데 왜 강 의원만 단죄를 받아야 하냐고 물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따지면 세상에 벌 받을 사람이 없다. 죄를 저지른 사람 모두가 특정 전례를 거론하면서 “쟤가 나보다 더 악독한 일을 저지르고도 벌을 안 받았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항변하면 되니까. 이런 예를 들어보자. 모든 사람이 크고 작은 죄를 저지르고 산다. 도로 신호등을 위반하는 것도 그런 죄 중 하나다. 그런데 빨간 불을 무시하고 달리다가 붙잡힌 운전자가 “앞의 흰 차, 검정 차 모두 신호를 위반했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항변하면 경찰관이 그냥 놔주나? 아니다. 수많은 교통신호 위반자가 있어도 ‘경찰관 눈에 띄지 않은’ 범법자는 그냥 무사통과 하는 것이고, 경찰에 걸린 사람은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게 세상이치다.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있다. 인간의 심리 현상을 진화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학문 분야다. 진화심리학에서 특히 논쟁이 뜨거운 분야는 남녀관계, 성생활 관련 분야다. 많은 진화심리학자들이 “강간의 본능이 남성에서 진화했다” “힘센 남자가 여자를 지배(겁탈)하도록 진화했다”는 주장을 폈고, 그런 주장이 나올 때마다 여성주의자들은 “과학의 탈을 쓴 마초들의 횡포”라며 이를 갈았다. 그러나 이런 모든 논쟁은 법원 밖에서 진행될 뿐이고, 법정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참고사항이 되지 않는다. 강간범 재판에서 변호사가 “남자니까 강간 본능이 있는 게 당연하고, 그러니 남자임을 참작해아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변호사는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왜냐고? 범죄를 처벌하는 형사법은 ‘범인의 심리적 동인(動因)’을 다루는 분야가 아니라 ‘드러난 죄에 대한 사회적 처벌’을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정상참작이 돼도(예를 든다면, 아무리 남자가 강간할 만한 여건-심리적 조건을 갖췄다 하더라도) 강간범에 대한 처벌은 ‘당한 자의 입장’에서 처리된다. 당한 자가 고통을 받았다면 그만큼의 죗값를 강간범이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진화론이니 또는 판사는 죄를 저지른 적이 없냐는 따위의 논리는 완전히 무시된다. 강용석 제명안의 핵심도 마찬가지였다. ‘죄를 잘 짓는 의원들의 마음’으로 이번 건을 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모든 성범죄를 범법자의 시각으로만 본다면 도대체 지구상의 어떤 남자 판-검사가 성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을 것인가? 김 전 의장은 여기서 그치지 말고 한발 더 나아가 모든 성범죄 관련 판-검사에게도 편지를 띄우기 바란다. “돌을 던질 수 있는 판-검사만 성범죄자를 처벌하라”고. 죄와 벌의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근대 들어 죄와 벌에 대한 논리와 방법이 복잡해졌지만, 근본원리는 어디까지나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당한 사람이 기준이란 말이다. 죄 많은 우리 정치인들은 또 한 번 ‘성희롱을 권장-격려하는 국회’까지 만드셨으니, 앞으로 죄들을 짓기가 더욱 수월해지셨을 것 같다. 참 대단한 국회고, 대단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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