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던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 무더위에 잠시 주춤했던 미술계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며 속속 전시를 오픈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미술시장에서도 여느 시장판처럼 화랑과 수집가들이 작품을 사고파는 큰 장터가 종종 열린다. ‘아트페어’라고 부르는 미술품 판매 장터로 화랑들이 한 장소에 모여 각자의 부스를 차리고 손님과 가격 흥정을 한다. 특히 9월에는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국내 최대 미술품 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가 열린다. 2002년 처음으로 개최된 키아프는 올해로 10번째를 맞는다. 아시아의 대표 아트페어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와 함께 올해는 17개국 192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참가 화랑은 한국 117곳을 비롯해 호주와 일본, 독일, 영국 등 75곳에서 1500여 명의 작가 작품 5000여 점이 전시된다. 특히 한국-호주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호주를 주빈국으로 17곳의 호주 갤러리가 참여함으로써 원주민 미술부터 최근 미디어아트까지 호주미술을 집중적으로 소개할 계획이다. 또한 미술작품 전시 이외에도 다양한 부대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올해는 미디어아트와 설치미술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아트 플래시’ 행사가 마련돼 회화나 조각 등 고전미술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의 다양한 장르를 소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BMW 그룹이 세계적인 팝아트 작가 제프 쿤스와 협업해 제작한 BMW 아트카(BMW 자동차를 이용한 자동차 예술작품)인 ‘BMW M3 GT2’도 행사장에 전시한다. 이처럼 규모면에서나 부대프로그램 등에서 많은 성장을 보인 키아프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역시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면치 못하고 있다. 키아프에 참가하는 한 갤러리 관계자는 “국내 대표적 아트페어인 만큼 모른 척 지나갈 수 없어 참여하지만 큰 기대는 없다”며 “요즘 경기도 좋지 않은데다 너무 많은 아트페어가 생겨 오히려 아트페어라는 특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아트페어가 생겨 일반 대중들이 미술을 더 자주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긍정적 의견도 있지만 차별화가 없는 무분별한 아트페어의 등장은 오히려 역효과가 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해마다 ‘같은 작가 또는 같은 그림’이 쏟아지는 ‘별 볼일 없는 페어’가 반복되면서 국내외 컬렉터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이에 미술계에서는 국내 아트페어의 질적 향상 등을 위한 시스템 마련이 절박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술계 관계자는 “해외 아트페어를 다녀보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신선한 작품이 많아 오랜 시간 발길을 머물게 만들지만 국내 아트페어는 멈춰서 볼 만큼 작품이 다양하지 않고 돌아보면 봤던 작품이 또 보이는 등 똑같은 작품이 너무 많아 흥이 나질 않는다”고 말했다. 키아프는 2010년 9회 행사를 앞두고 참가 화랑 심사를 강화하고 다른 유력 아트페어 제휴 등을 추진하면서 일부 군소 회원 화랑의 ‘생존권 침해’라는 반발에 갈등도 빚었었다. 엄격한 검증 없이 회원 화랑들이 부스를 차지하고 작가들 뒷돈을 받아 출품하는 관행도 여전한데다 외국 화랑들도 인지도 낮은 곳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KIAF2010은 관람객 몰이에는 성공했지만 판매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는 평가다. 키아프 사무국에 따르면 관람객은 7만2000명으로 2009년 5만6000명보다 30% 늘었으나 판매액은 125억 원으로 2009년 136억 원보다 8% 줄었다. 사무국은 참가 갤러리의 증가(2009년 168개 갤러리, 2010년 193개 갤러리)에도 매출액이 감소된 이유 중 하나로 미술계 최대 이슈였던 미술품 양도소득세 시행의 여파를 손꼽았다.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올해도 만만치 않은 경기불황으로 키아프의 고전을 점치는 이들이 많다. 규모나 다양한 행사를 늘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진정한 미술의 볼거리를 만들어주는 질적인 향상이 절실한 시점이다. 미술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지혜를 모아 나아가느냐 아니면 상업적인 도구로서 이용이 되느냐가 기형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국내 미술계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 국내 미술시장의 큰 축인 아트페어의 방만한 운영, 내부 화랑들의 다툼 등 밥그릇 싸움에 이미 국내 컬렉터들은 외국 유명 아트페어로 눈을 돌리며 점차 국내 시장을 외면하게 된다. 현재의 우리나라 미술시장은 일부 유명작가의 작품만이 컬렉터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 역시 돈이 될 만하다는 정보를 토대로 구입한다. 일부 화랑주나 경매회사에 의해 느닷없이 작품가격이 뛰어오르는 것을 보면 미술을 위한 행동이 아닌 당장에 큰 수익을 만들어 내는 판매에만 열을 올리는 건 아닐까 한다. 아트페어 또한 당장의 수익보다는 미술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에 더 힘써야 한다. 이점이 오히려 먼 미래를 바라봤을 때 진정한 미술계의 발전과 경제적인 성장까지 함께 이뤄나가는 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