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9-240호 심원섭⁄ 2011.09.14 14:50:33
‘안철수 신드롬’ 속에 대세론 논란에 휩싸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지금까지 해오던 트위터, 미니홈피 등 온라인 정치공간을 빠져나와 국민의 삶 현장에서 오프라인 소통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는 등 급속하게 민생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행보는 최근 ‘안철수 신드롬’의 주인공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부상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면서 정치권의 ‘대권 캘린더’를 앞당길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정치권에서는 지난 4년간 30%대의 안정적인 지지율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온 박 전 대표의 대세론이 불과 1주일 전에 혜성처럼 등장한 ‘안철수 돌풍’에 휘청거리고 있는 탓에 ‘안풍’(安風,안철수 바람)과 ‘박근혜 대세론’을 놓고 연일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안 원장은 지난 6일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 선언 직후 일약 야권의 대선주자급으로 급부상했고,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를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안 원장은 9월 7일 발표된 CBS·리얼미터 조사에서 43.2%의 지지율로 박 전 대표(40.6%)에 2.6% 포인트 앞선 데 이어 8일 나온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도 41.5%를 기록, 박 전 대표(40.7%)를 0.8% 포인트 차로 제쳤다. 그리고 다음날 발표된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는 박 전 대표(40.6%)가 안 원장(36.1%)을 4.5% 포인트 차로 따돌렸으나 공고하던 대세론을 하루아침에 무색하게 했다는 점에서 친박계는 물론 여권 전체가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근혜 대세론’ 피로감 가능성…‘안풍’ 영향받을 것 이제 관심은 안풍·박근혜 대세론의 향배와 향후 대선정국에 미칠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안철수 돌풍이 계속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 시각이지만 결국 거품이 빠지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없지 않다. ‘안풍’ 신봉론자들은 ‘안철수 신드롬’이 정쟁을 일삼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불신에서 비롯된 측면이 큰 만큼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실제 안 원장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지지를 선언하면서 기존 3∼5%에 그쳤던 그의 지지율은 단번에 30% 이상 치고 올라가 일단 안풍 효과를 입증한 셈이다. 이에 대해 윤희웅 사회여론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은 “안 원장이 적극적으로 정치의지를 밝히지 않아 조정 가능성은 있겠지만, 지지도가 단기간에 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도 “안 원장의 인기가 쉽게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고, 한나라당 남경필 최고위원 역시 “안철수 신드롬은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특히 원희룡 최고위원은 최근 한 방송과의 회견에서 “민심 폭발이며, 박근혜 대세론에도 빨간 불이 켜진 것”이라고 밝히면서 “1급 태풍경보가 켜졌다”고 주장했다.
원 최고위원은 “안철수 원장은 개인의 정치 경험이 있나 없나를 떠나 ‘탈정치’의 정치 행보를 하고 있다”며 “(안 원장이 대선주자로) 나올 것으로 본다.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해도 가만두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반면 친박 등 여권 일각에선 안풍이 일시적이지는 않겠지만 ‘실체 없는 바람’인 만큼 결국 위력이 약화되면서 박근혜 대세론이 다시 힘을 받지 않겠느냐는 반론을 제기한다. 한 친박계 의원은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는 후보단일화 효과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안풍이 앞으로 계속 갈지는 의문”이라고 말했고,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안 원장이 검증무대에 오르면 거품은 빠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박 전 대표의 위기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일부 정치권에서는 1997년과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차로 대세론을 이끌어가던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의 사례와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의 이인제 대세론 등을 들며 ‘철칙’인 대세론은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대세론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이 후보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이며 야당 후보를 앞서고 있었고, 따라서 사실상 대통령 당선을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1997년에는 이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가 터지면서 대세론이 꺾이기 시작한 데다 당내에서 경쟁했던 이인제 후보가 신당을 창당하면서 대선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2002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후보는 ‘대권 재수’에 도전, 노무현 민주당 후보에게 지속적으로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선거막판 노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극적인 단일화를 이루면서 대세론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던 이인제 후보는 2002년 민주당으로 말을 갈아타 높은 지지율로 ‘대세론’을 내세우며 유력한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대선후보 경선기간 동안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이며 추격을 한 노무현 후보에게 ‘대세론’이 무참히 깨지면서 대선가도를 접어야 했다. 박찬종 전 의원도 1995년 6월27일 민선 1기 서울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선거를 불과 20일가량 앞둔 시점까지 40% 안팎의 지지율로 1위를 지켰지만 실제 선거에선 33.5%를 얻어 조순 민주당 후보(42.4%)에게 패했다. 박근혜 “방문지역 수도권까지 확대…정책 다양화” 박 전 대표의 지지도는 이명박 정부가 성공적으로 출범하면서 동반 상승했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 앞서 치러진 당내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고 이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적극 나선 모습이 국민들에게 인정받게 된 것이다. 여기에 2008년 ‘4·9 국회의원 총선거’를 전후해 지지율은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이른바 친박계 의원들의 공천 탈락 사태가 이어지면서 박 전 대표가 배신을 당한 피해자로 인식된 것이다. 결국 2008년 말엔 박 전 대표는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40%를 넘기는 압도적 지지율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첫번째 위기는 2010년 초부터 다가왔다.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들고 나온 이후 박 전 대표가 이에 적극 반발하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지율이 급격히 빠지기 시작했다. 세종시 수정안 표결이 국회에서 부결된 이후인 7월 초엔 25.2%까지 내려앉았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신뢰 정치가 다시 인정을 받으며 지지율은 조금씩 회복하면서 올해 초엔 36.0%까지 상승, 예전의 대세론도 되찾아온 것이다. 이후 3월 말 정부가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선언하고 애매한 스탠스를 보이던 박 전 대표가 다시 이를 비판한 것을 전후로 박 전 대표 지지율은 30% 초반까지 내려가게 되고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후엔 30% 밑으로 내려오기도 했으나 여론조사에서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예를 들더라도 한 번 뚫린 대세론의 벽은 바람을 틀어막지 못한 채 무너져 내렸다는 점을 명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안 원장은 대선 출마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어 그가 다시 정치 세계에 뛰어들지도 분명치 않고, 그의 인기가 얼마나 계속될지도 알 수 없다.
문제는 대세론 그 자체로서 대세론의 최대 적(敵)은 내부에 있다. 후보와 그 주변이 대세론에 갇히는 순간 세상과 담을 쌓게 된다. 대세론에 갇힌 정치는 자칫 국민에게 ‘오만과 불통(不通)’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권 안팎에서 박 전 대표에게 변화와 쇄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현 시점에서 이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지 못하면 내년 12월 대선까지 가는 길에서 어느 시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다시 맞닥뜨릴지 모를 ‘제2, 제3의 안철수 바람’에 또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내달 초 외부 사무실 열듯…“현장 목소리 듣겠다” 어쨌든 ‘안풍’과 ‘박근혜 대세론’ 논란은 대선정국을 앞당기는 효과를 가져왔다. 당장 위기감을 느낀 박 전 대표는 현장행보를 강화하고 내달 초 외부 사무실을 여는 등 대선행보를 앞당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국정감사 역시 지난 4년간 준비한 정책홍보 무대로 활용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대권행보를 시작한 한나라당 정몽준 전 대표 역시 박 전 대표의 행보에 맞춰 대립각을 넓혀갈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여야 대선후보들이 사실상 `여·야, `진보·보수 대결구도로 굳어진 서울시장 선거에 전면으로 뛰어들 것으로 보여 이번 선거는 그야말로 대선 전초전을 방불케 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여야 모두 “이미 대선은 시작된 것 아니냐”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친박계는 ‘안풍’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면서도 ‘박근혜 위기론’의 확산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박 전 대표의 견고한 지지가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정치권을 부정적으로 보는 민심 자체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무언의 지적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4년 만에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을 넘는 ‘예비후보’가 등장했다는 것도 무시하기 어려운 대목이라는 점에서 친박계에서는 일단 ‘조기 출전’과 ‘개혁 강화’라는 두 가지 대응 전략이 거론되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적극 나서는 한편 정책 현안에 대한 발언과 강연 등으로 대국민 접촉 기회를 늘리면서,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대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9월 8일 본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의 활동과 관련, “현장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 가능한 한 자주 다니려 한다”고 했다. 서울시장 후보 지원에 대해선 “어떤 선거든지 당이 국민에게 어떤 얘기를 할지 정해야 한다. 정하지도 않고 (지원여부를)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 서병수 의원은 “좀더 적극적으로 자기를 알리는 외연 확대가 필요하고, 박 전 대표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보수, 진보로 나눠 패싸움을 하기보다는 진보에서도 좋은 정책이 있다면 취해야 하고, 외연을 확대하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사덕 의원은 “양극화 현상 속에서 경제정책이나 남북관계를 극우 보수라는 분들의 주장대로 가서 나라의 장래가 담보된다고 보는 사람들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움직임이 ‘대권행보’로 비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한구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대선)캠프를 차리는 것과 직접 개인적으로 소통하는 것은 조금 다른 차원 아니냐. 아무래도 너무 빨리 왕성하게 움직이면 지금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자기 페이스대로 해야지, (우사인)볼트가 달릴 때 옆 사람 보고 달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격인 이정현 의원도 “그동안 언론에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조용하게 행보가 많았다”며 “특별히 (공개행보를 늘리는) 계획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측근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사무실 개소 시점은 국회 활동에 성실히 임한다는 그동안의 입장을 볼 때 국정감사(9월19일~10월8일)가 끝난 직후로 관측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한 핵심측근은 9월 10일 “박 전 대표가 최근 대외 행보를 강화하면서 언론이 알아야 할 사안이나 일정이 많아졌다”면서 “캠프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서실 확대 개념의 외부 사무실을 내야 할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생겼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다른 한 측근은 “최근 박 전 대표는 영남권인 청도·경주·대구에 이어 수도권인 서울과 인천으로까지 방문 지역을 넓히고, 정책 발표도 상임위 관련 사안을 벗어나 외교·안보까지 확대하고 있다”면서 “지난 대선 경선을 앞둔 한 해 전인 2006년을 보더라도 박 전 대표의 향후 행보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06년 박 전 대표는 9월14일 여의도 E빌딩에 ‘확대 비서실 개념’의 사무실을 마련해 유정복 의원과 김선동 전 대표비서실장, 이정현 전 부대변인을 상주하게 하면서 대(對) 언론 업무를 맡겼고 그 다음 달 정식 개소식을 가진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