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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주인이 오셨다’…이 사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부조리한 사회 고발…백성희장민호 극장서 10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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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39-240호 김금영⁄ 2011.09.21 19:59:56

‘주인’.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대상이나 물건 따위를 소유하거나 집안이나 단체 따위를 책임감을 가지고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도 사회의 주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격을 사회가 일방적으로 빼앗아 간다면? 국립극단의 세 번째 레퍼토리로 선정된 연극 ‘주인이 오셨다’에는 식당을 경영하는 금옥, 종구와 포주를 피해 식당으로 도망 온 흑인 여자가 등장한다. 겉으로 봤을 때는 똑같이 사회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인간이다. 하지만 어느 한 쪽은 ‘주인’이 되고 다른 한 쪽은 ‘소유물’로 전락한다. 금옥이 흑인 여자를 처음 봤을 때 하는 말. “아니, ‘이게’ 뭐야?” 금옥은 흑인 여자에게 ‘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마치 어수룩하고 순한 흑인 여자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듯한 이름이다. 첫 만남부터 순이를 ‘이것’으로 여긴 금옥은 아들 종구가 순이를 임신시키자 이를 빌미로 순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전락시킨다. 그리고 종구에게 말한다. “저것에게 말을 가르치면 안 돼. 말을 알게 되면 우리와 비슷한 인간이 될 거야.” 금옥과 종구는 순이가 자신들과 다른 부류, 즉 소수에 속한다 해서 철저히 소통을 거부하고 차단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태어난 순이의 아들 ‘자루’. 자루는 금옥이 도둑이 돼 자루에 여러 가지를 훔쳐 담다가 결국엔 세상까지 담게 된 태몽 끝에 지어진 이름이다. 금옥의 꿈에서 자루는 모든 것을 담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아무 것도 담지 못한다. 자루는 노예나 다름없는 순이를 보면서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노력하지만 오히려 동년배들에게 외면당하게 된다. ‘시키는 대로 뭐든지 하겠다’는 자루의 처절한 울부짖음은 ‘너는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거부당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 속에서 자루의 절망은 분노로 바뀌게 된다. 자루는 이 모든 것이 엄마인 순이로부터 비롯된 굴레라고 생각하지만 죄책감에 순이를 죽이지 못한다. 대신 그 분노를 세상을 향해 표출하며 순이를 죽이기 위해 연쇄 살인을 시작한다. 자루가 처음으로 살인한 뒤 갑작스레 펼쳐지는 철도역 장면은 다소 당황스러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철도역 장면은 현실적으로 보였던 무대 공간을 초현실적인 공간으로 이끌며 관객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철도역의 노숙자로 등장하는 두 사람은 악한을 만들어내는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낸다. 한 번 보기보다는 여러 번 보며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극이 절정에 치달았을 때 순이가 자루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는 장면은 특히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사회에서 거부당했음에도 그 사회에 대한 애정이 담긴 순이의 모습과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해 몸부림치는 자루의 모습이 충돌한다. 사람들은 살인 사건이 났을 때 대부분 살인마에게 주목하지만 그 살인마가 속해 있는 사회는 과연 아무 작용도 하지 않았는지, 왜 사회에는 주목하지 않는지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배우들은 무대 양 옆에 관객같이 앉아있으면서 서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때로는 관객들과 눈이 마주치기도 하고 무대 뒤쪽에서 뛰어나갔다가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과연 이 사회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지, 그 자격을 박탈한 잔인하고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고발하는 ‘주인이 오셨다’는 서울 용산구 백성희장민호 극장에서 9월 16일부터 10월 2일까지 막을 올린다. 고연옥 작가가 집필하고 김광보 연출가가 연출했다. 공연 관련 문의는 02)3279-2233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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