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살인’ 즉, 현대사회에 이유 없는 무차별 살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은 살인자를 손가락질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녕 그 사람만의 잘못일까? 그 사람이 속해있는 사회에는 결코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인지 사회에 손가락질을 해보는 작품이 있다. 고연옥 작가가 집필하고 김광보 연출가가 연출한 국립극단의 세 번째 레퍼토리 ‘주인이 오셨다’가 서울 용산구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9월 16일부터 10월 2일까지 그 막을 올린다. ‘주인이 오셨다’는 연쇄 살인마로 변해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킨 연극으로 4월 초연 당시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극의 주된 무대는 이름도 없고 간판도 없는 볼품없는 작은 식당이지만 사회의 단면을 함축해서 보여준다. 이 식당 주인인 ‘금옥’은 포주를 피해 식당으로 도망온 흑인 여자를 구해주고 ‘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처음에는 순이를 따뜻하게 감싸주지만 금옥의 아들 ‘종구’가 순이를 임신시키자 금옥은 순이를 가족이 아닌 종으로서 아들과 결혼시키고 소유하려는 잔인한 면모를 보여주게 된다. 특히 금옥은 순이에게 말을 가르치지 않고 소통을 막으면서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닌 ‘소유물’로 부리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태어난 순이의 아들 ‘자루’는 순이와 다른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동년배들은 이를 철저히 외면한다. 사회에 섞이기 위한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자루가 느낀 절망은 점차 분노로 바뀐다. 그리고 자루는 이 모든 것이 순이로부터 비롯된 굴레라고 느끼며 죄책감 없이 순이를 죽이기 위해 연쇄살인을 시작한다. 단지 소수에 속하는,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루를 철저히 고립시키는 인물들의 모습은 혹독한 사회 안에서 갈 길을 잃고 방황하며 이내 분노에 이르게 되는 일명 ‘묻지마 살인’을 떠오르게 해 씁쓸함을 자아낸다. 이 연극은 연쇄 살인이 결코 용서받을 수 있는 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이 온전히 그 사람에게서 발생한 것인지, 사회는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 주목한다. 중간에 갑자기 등장하는 철도역 신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수도 있다. 기차역의 노숙자처럼 보이는 두 인물은 모든 것을 잃고 밑바닥으로 떨어진 인간을 상징하는 것으로 소통하고 싶으나 소통할 수 없는 인간관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묵직하고 부담스러운 이야기를 김광보 연출은 특유의 상황적 유머와 감각적 전개로 풀어내며 타자에 대한 사회적 폭력성을 일상적 장치들과 연합해 보여준다. 더불어 우리도 무의식중에 가해자일 수 있음을 보여주며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조은경, 이기돈, 문경희, 한윤춘, 천정하, 김송일, 권택기, 문호진, 안준형, 심원석 등 출연. 공연 관련 문의는 02)3279-3233으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