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치솟는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을 발표한지 두 달이 훌쩍 넘었다. 당국은 은행들에게 가계대출 자제를 요구했고 이에 은행들은 대출 심사를 엄격하게 하는 등 기준을 강화했다. 그러나 은행 대출이 어려워지면서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을 찾는 고객들이 늘었고, 실제로 대출을 필요로 하는 실수요자들의 부담도 커졌다. 은행의 갑작스런 대출 중단…서민들은 발만 ‘동동’ 앞서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주문에 따라 신규 대출을 전면 중단했다. 대출 실수요자들에게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지난 달 농협은 주택담보대출, 모기지론, 주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 모든 가계대출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농협 관계자는 “가계부채 종합대책 발표 후 대출 증가세를 막으려고 노력했으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고객 불편을 감수하고 어쩔 수 없이 특단의 대책을 취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한은행도 지난 달 금리안전모기지론(기본형)과 비거치식 분할상환방식을 제외한 주택담보대출, 모기지론, 신용대출 등 대부분의 신규 가계대출을 전면 중단했다. 우리은행도 가계대출에 대한 본부 심사기준을 강화해 생활자금용 주택담보대출, 주식담보대출 등의 신규 대출을 사실상 중단하기도 했다. 또 객관적인 상환능력이나 자금용도 등이 증빙되지 않는 신용대출과 부동산담보대출에 대한 심사도 강화해 이 부문의 대출도 엄격히 제한하기로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주택 구입이나 전세 등 구체적인 자금용도가 없는 단순 생활안정자금 등의 대출은 심사를 강화해 규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의 이 같은 고강도 대책은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압박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은행들이 대출을 전면 중단하자 고객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고 금융당국은 “(대출의) 전면 중단을 철회하라”고 주문했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당국이 목표치를 제시했다고 은행들이 그렇게 경직되게 운용해 대출을 확 늘렸다가 갑자기 닫아버리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은행들이 내부적으로 세밀한 지침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당국은 은행들이 대출자의 상환능력이나 대출목적 등을 따져 실수요자 중심으로 대출하도록 당부했다. 이에 은행들은 대출 전면 중단을 철회하고 ‘실수요자 중심’의 대출로 방향을 전환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키로 했다. 하나-국민-우리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에도 소득증빙서류를 요구한다. 재직증명서, 근로소득원천징수 영수증 등을 은행에 제출하면, 은행은 해당 고객의 채무상환능력을 평가해 대출 자격을 심사한다. 농협의 경우 실수요 대출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기존에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심사 요건이 까다롭지 않았지만, 지금은 담보 이외에 개인의 채무상환능력을 평가하고 더불어 실수요자가 아닌 경우 대출이 불가능하다. 자금용도가 불명확한 생활자금용 주택담보대출이나 주식담보대출, 마이너스통장 개설 등은 현재 시중은행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이처럼 대출에 대한 심사가 강화되자 고객들에게 요구되는 증빙자료 등이 이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깐깐해진 심사 탓에 대출 승인을 받지 못한 일부 고객들은 “대출을 해준다면서 왜 안 해주냐”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은행 대출 어려워지자 곳곳에 ‘풍선효과’ 발생 은행 대출이 어려워지면서 마이너스대출의 규모가 증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가계신용 잔액은 876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분기 중 가계신용은 전분기보다 18조9000억원 늘면서 1분기 중 증가폭(10조4000억원)을 크게 웃돌았다. 가계신용은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카드사 및 할부금융사 외상판매)을 합한 수치다. 이에 가계대출은 전분기보다 17조8000억원 늘어난 826조원, 판매신용은 1조1000억원 늘어난 50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분기 가계대출의 확대는 마이너스통장 대출 등 기타대출이 1분기 -9000억원에서 2분기 4조1000억원으로 크게 확대된데 따른 것이다. 제 2금융권도 마찬가지다. 비은행예금취급기관 대출은 주택담보대출 증가폭은 1조9000억원에서 2조5000억원으로, 기타대출 증가폭은 9000억원에서 3조9000억원으로 확대됐다. 이에 따라 2분기 예금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444조3000억원, 비은행예금취급기관 잔액은 173조6000억원, 기타금융기관 잔액은 208조200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카드사들의 카드론 규모도 지난 8월 중 크게 늘었다. 신한카드는 1800억원에서 2400억원으로, 삼성카드는 1030억원에서 1620억원으로 각각 뛰었다. 현대카드는 989억원에서 1400억원, KB카드는 1870억원에서 1907억으로 각각 늘었다. 특히 카드론 대출이자는 최고 연 20%에 달할 정도로 높고 상환일이 길어지면 취급 수수료도 3%까지 높아져 상환 부담이 크다. 은행 대출이 힘들어지자 서민들은 비싼 이자를 통해 대출을 할 수 밖에 없고, 이에 가계부담은 2배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대출 줄이라니까 예금금리는 낮아지고 대출금리만 올려 금융당국의 주문에 따라 대출이 힘들어지자, 시중은행들은 이를 핑계로 대출 금리를 올렸다. 금융당국과 은행들 싸움에 고객의 등이 터지고 있는 실정이다.
시중은행들은 공식적으로는 대출금리를 올리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과거 대출금리 범위의 낮은 쪽을 적용했던 고객들에게 무려 1%포인트 이상 증가한 높은 금리를 물리고 있다. 실제 적용되는 대출금리는 전보다 1%포인트 이상 높아진 것이다. 실질금리가 높아지자, 은행을 찾은 대출 고객들은 가계부채 억제 정책 이전의 약 4~5%의 금리에서, 신용도가 아주 우수한 고객을 제외하면 대부분 6%대의 높은 대출 금리를 부담하게 된다. 주택담보대출금리도 마찬가지다. 은행들이 대부분 형식상으로는 4%대 중반에서 5%대 중반의 범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 대출을 받을 때에는 5%대의 금리를 적용받게 된다. 실제로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 상담을 받으러 온 한 고객에게 “조금 일찍 오셨으면 금리를 지금보다 낮게 적용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며 “우대받을 수 있는 금리도 전부 없어졌다”고 밝혔다. 한편,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올리고 있는 가운데 제2금융권의 금리도 함께 오르고 있어 서민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달 저축은행의 대출금리는 연 17.50%로 전월보다 2.43%포인트 급등했다. 신용협동조합과 상호금융의 대출금리도 각각 전월 대비 0.13%포인트, 0.07%포인트 오른 7.35%, 6.25%다. 시중은행의 대출이 어려워 제2금융권으로 발걸음을 돌린 고객들은 높은 금리에 다시 한 번 한숨을 짓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은행대출에 익숙해 있던 고객들은 2~3금융권 대출에 대한 정보가 낮아 고금리 대출영업에 먹잇감이 될 수 있다”며 “자신의 상황과 금융사들의 상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만이 피해를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가계 빚은 매월 최고치 경신…“저축은 꿈도 못 꿔” 금융당국의 ‘은행 옥죄기’로 예금은행과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을 포함한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증가폭이 전월에 비해 다소 축소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은 전월보다 4조4000억원이 늘었다. 이는 6월 증가폭(5조6000억원)보다 다소 축소된 수치다. 주택담보대출 증가폭은 전월 1조8000억원에서 7월 1조9000억원으로 늘었지만, 마이너스통장 대출 등 기타대출은 1조70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여전히 비은행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은 주택담보대출이 8000억원, 기타대출이 1조4000억원 증가했다. 한은 관계자는 “6월 말 발표된 가계부채 종합대책으로 가계대출이 다소 억제된 영향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은행 대출은 줄었지만 서민들의 팍팍한 살림살이는 여전하다. 올해 2분기 가계 빚은 876조3000억원으로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900조원에 바짝 다가섰다. 이를 통계청이 추계한 올해 전체 가구 수(1737만9667가구)로 나누면 가구당 5042만989원씩 빚을 진 것으로 계산된다. 추계 인구 수(4898만8833명)로 나누면 1인당 빚은 1788만7750원이 된다. 특히 한 가구가 연간 내는 이자는 100만원을 넘어섰다. 통계청이 집계한 전국 2인 이상 가구당 월평균 이자비용은 올해 2분기 8만6256원으로 이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한 가구가 한 해에 내는 이자는 103만5072원에 달했다. 금융당국의 노력으로 은행 대출은 줄었지만 가계 빚은 여전히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여기에 은행들이 대출금리까지 올리자 가계의 이자부담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더불어 저축률도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OECD가 최근 발표한 경제통계를 보면 올해 우리나라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률 전망은 3.5%로 24개 국가 중 21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보다 가계 저축률이 낮은 국가는 덴마크 -1.4%, 체코 1.8%, 핀란드 2.3% 등 세 나라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가계 저축률은 2008년 2.9%에서 2009년 4.6%로 올라섰으나 2010년 4.3%, 2011년 3.5%로 다시 내려갔다. 2005년 7.2%에서 불과 6년 만에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올해 미국의 가계 저축률 전망은 9.9%로 우리나라와 3배 가까이 격차를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