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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자’를 피눈물 나게 한 지옥의 9월

수천 억 불법대출에 정지 직전 사전인출까지…“돈 맡기라고 할 때는 언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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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42호 장슬기⁄ 2011.10.04 13:56:37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지난 9월 18일 또 한 번의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가 발생했다. 영업정지가 된 저축은행은 자산 2조원 이상의 토마토(경기)와 제일(서울), 자산 1~2조원대의 프라임(서울), 제일2(서울), 에이스(인천), 자산 1조원 이하인 대영(서울), 파랑새(부산)로 총 7곳이다. 저축은행들의 영업정지 소식에 예금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안전할 것이라 믿고 있던 토마토와 제일저축은행의 영업정지는 예금자들을 패닉상태로 몰고 갔다. 이번 영업정지는 업계 상위권 대형사가 대거 포함됐다는 점에서 파장이 컸고 예금보험공사는 부랴부랴 가지급금 지급을 준비했다. 분노에 찬 예금자들은 “내 돈 달라”며 새벽부터 은행 앞에 줄을 서 기다렸고, 푼돈을 아껴가며 고이 모아둔 노인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부산저축은행의 영업정지 이후 “더 이상의 영업정지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던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한도초과 등 불법대출…저축은행 운영 ‘엉망’ 저축은행들이 영업정지를 당하기까지는 부실을 초래한 허술한 관리에 원인이 있었다. 특히 영업이 정지된 제일저축은행은 고객 명의를 무더기로 도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예금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합동수사단(이하 합수단)은 영업정지 된 저축은행들의 대주주 등 임원 30여명에 대해 출국을 금지시켰고,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합수단의 조사 결과 제일저축은행이 고객 명의를 무더기로 도용해 불법대출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 저축은행 이용준 행장과 장모 전무에 대해 배임과 사전자기록위작(전산조작)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고양종합터미널 건설사업에 대출한도를 넘겨 1600억원 가량을 불법대출했고, 이 과정에서 1만명 이상의 고객 명의를 도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제일저축은행은 대출한도를 넘기자 정체불명의 특수목적법인(SPC)을 비롯한 여러 공동사업자를 차명으로 내세워 우회 대출한 것으로 금융감독원 조사결과 드러난 바 있다.

합수단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제일저축은행이) 전산조작으로 1만 여명의 명의를 도용해 불법대출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또한 합수단은 제일저축은행과 에이스저축은행이 함께 6000억원 이상 불법대출한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 중에 있다. 이처럼 임직원들의 비리가 하나 둘 씩 드러나자, 이에 압박감을 느낀 정구행 제일2저축은행장이 본사 사옥에서 투신자살했다. 불과 며칠 후 영업정지 된 제일저축은행에서 수천억 원을 대출한 건설회사 사장이 자살해 또 한 번 충격을 줬다. 지난 9월 25일 오전 양평군의 한 스키용품점 앞 공터에 주차된 차 안에서 모 건설회사 대표 J씨가 숨져 있는 것을 동네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다. 당시 J씨는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운 것으로 알려졌다. 차 안에서는 그가 두 아들과 아내에게 보내는 A4용지 2장 분량의 친필 유서가 발견됐다. J씨는 지방 소재 한 건설사 대표로, 제일저축은행에서 수천억 원을 부당하게 대출받은 혐의로 합수단의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관계자들은 “합수단이 본격 수사에 돌입하자 J씨가 심한 압박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같다”고 추정하고 있다. 사전인출까지 확인되자 예금자들 분노…“금융당국은 뭐 했나” 앞서 부산저축은행이 영업 정지가 됐을 때에는 정지될 것을 미리 알았던 임직원들의 사전인출이 예금자들을 분노케 했다. 이번 영업정지 때에도 역시 초점은 ‘사전인출 의혹’에 맞춰졌다. 금융감독원의 조사 결과 이번에도 일부 저축은행에서 사전인출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지난 9월 23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저축은행 대주주의 사전인출 가능성을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그런 인출이 극소수로 조금 있었다”고 답했다. 저축은행 대주주나 일부 임직원이 친인척이나 지인에게 영업정지 가능성을 미리 알린 것으로 의심되는 예금 인출이 확인됐다는 것. 특히 영업정지 된 7개 저축은행들이 영업정지 되기 전 2주일간 2900억원 가까운 예금이 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서는 불법인출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전 유출 의혹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예금자들은 “이 지경이 되도록 금융당국은 뭘 하고 있었냐”, “2주 전부터 거액이 인출됐는데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또 다른 저축은행의 추가 영업정지가 있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사전인출과 더불어 분양사기로 얼룩진 사업장에 영업정지 저축은행들이 공동으로 불법대출한 사실이 확인되자 저축은행들은 금감원 쪽으로 화살을 돌렸다. 이 저축은행들은 “금감원이 불법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금감원은 앞서 경기도 일산의 고양종합터미널 건설 사업에 제일저축은행과 에이스저축은행이 함께 6000억원 이상 불법대출한 것을 적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고양터미널 건설에 지난 2002년부터 제일저축은행이 1600억원, 에이스저축은행이 4500억원을 대출했다. 금감원 경영진단에 따른 이 사업의 회수예상 감정가는 1400억원이다. 이들 두 저축은행은 고양터미널 사업에 애초 약 300억원씩만 분양자 중도금 명목으로 대출했다. 하지만 사업이 진척되지 못하고 연체가 쌓이면서 이자가 잘 들어오지 않자 사업비를 증액대출(돈을 빌려줘 기존의 대출 이자를 갚도록 하는 수법)한 것으로 드러났다. 16차례에 걸친 대출로 두 저축은행 모두 금액한도(각 저축은행 자기자본의 20%)를 넘기게 되자 정체불명의 특수목적법인(SPC)을 비롯한 여러 ‘공동사업자’를 차명으로 내세워 우회대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양터미널은 첫 시행사가 분양사기를 저질러 퇴출당하자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대출금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터미널 부지를 50%에서 30%로 줄이고 상업시설 부지를 50%에서 70%로 늘리는 설계변경도 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분양사기 피해자들의 민원을 무마하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불법대출을 저지르도록 금감원이 사실상 묵인했다는 게 두 저축은행의 주장이다. 해당 저축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H법무법인이 ‘금감원에 질의한 결과, 한도초과 대출을 해도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는 법률검토 의견서를 전달해 이를 믿고 대출을 강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축했다. 주재성 금감원 부원장은 “2005년 9월 금감원에 분양사기 피해자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저축은행들에 (피해자 민원을) 원만하게 해결하라고 해 10월 취하됐다”며 “당시 금감원이 나서서 불법을 유도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H법무법인에 구속력 있는 공문서로 회신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으며, 질의에 대한 답변도 정상적인 공동투자약정에 따른 추가대출의 경우 가능하다는 뉘앙스였을 것”이라며 “법률적인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법규심사위원회의 검토를 받고 영업정지 전날까지 고민한 끝에 결정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현 시점에서, 금감원의 해명에도 이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끊이지 않고 있다. 5000만원 초과 예금자들 “우리는 어떡해” 저축은행 영업정지 소식에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예금자들은 얼마 전 실시된 예금보험공사의 가지급금 지급 신청을 했다. 한때 예금자들이 몰려 예보 홈페이지가 다운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금융당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예금자들이다. 예금자보호법 상 저축은행에 예금한 5000만원 이하의 예금은 보호받을 수 있지만 5000만원 이상 예금자나 후순위채권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영업정지 된 토마토저축은행의 후순위채권 투자자와 5000만원 이상 예금자는 얼마 전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신현규 토마토저축은행 회장을 고소했다. 비대위 오창환 위원장은 “영업정지 조치를 당하기 직전까지 신 회장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은행 측은 불과 얼마 전까지도 우리에게 돈을 맡기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후순위채 발행은 금감원의 허가가 필요한 만큼 금감원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금융당국의 저축은행 영업정지 발표로 예금자들의 피해액이 무려 36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이 정지된 저축은행 7곳의 5000만원 초과 예금자는 2만5766명, 후순위채 투자자는 7571명으로 예금을 보호받지 못하는 고객들은 총 3만3000여명으로 조사됐다. 영업이 정지된 제일저축은행의 예금자인 김 모씨(72, 남)는 후순위채권에 7000만원을 투자했다. 그는 문이 굳게 닫힌 은행 앞을 찾아 “내 돈 받을 때까지 한 발자욱도 움직일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번에 영업정지 된 저축은행의 5000만원 이상 예금자들은 대부분 60~70대의 노인들로, 금융지식이 부족하거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은행 직원들의 이야기만 듣고 쉽게 예금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때문에 이번 영업정지에도 5000만원 초과 예금자들의 피해액은 예상보다 컸다. 예금보험공사는 이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지급금 신청과 별도로 영업정지 된 저축은행의 인근 금융기관에서 2500만원 한도로 예금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고 있다. 그러나 예금자들은 비싼 수수료 부담을 지면서까지 예금담보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답답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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