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생활자들’. 제목부터 음습한 기운이 몰려온다. 하지만 공연은 야외에서부터 사물놀이를 하며 흥겹게 시작된다. 저절로 어깨를 들썩거리는 생생한 라이브 연주가 처음부터 눈길을 끌며 나른한 오후의 졸음을 확 깨게 만들었다. 국립극단이 먼저 선보인 연극 ‘주인이 오셨다’가 엄숙한 분위기로 시작됐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치열한 경쟁을 하며 남들 위에 서고 싶어 하는 현 사회에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지하생활자들’이다. 연극 ‘지하생활자들’은 아래에서 위에 있는 사람들을 지탱해주고 있는 그들에게 주목한다. ‘지하생활자들’은 우리나라 전래민담 뱀신랑설화를 모티브로 한 창작극이다. 뱀신랑설화는 뱀신랑을 찾아 지하세계로 내려간 여인이 자신을 잊어버린 뱀신랑을 지상으로 데려오기 위해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함께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지하생활자’에 등장하는 기억을 잃어버린 여인 역시 뱀비늘남자를 찾기 위해 지하로 내려간다. 그렇게 지하로 내려가는 도중 여행을 하는 부부, 관습에 얽매인 군인, 누군가 자신을 이끌어주기를 바라는 창녀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여인이 만난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피처를 찾는다는 것이다. 도피처를 찾아 지하세계로 내려온 그들은 일순간 위아래가 없는 그곳에서 모두 평등해진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뱀비늘남자를 우상시하며 스스로를 낮춰 다시 계급을 만드는 오류를 범한다. 현실에서 올라갈 수 없는 위 세계에 절망하고 분노하던 그들이었지만 역시 그 굴레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극은 배우들이 직접 아프리카 전통악기 진보아, 썬더드럼, 바이올린, 거문고까지 연주하며 활기를 띄운다. 뱀비늘남자 역을 맡은 조정근과 여인 역을 맡은 김지성이 극의 중심을 끌어가는 가운데 다른 배우들의 익살스런 연기가 활력을 준다. 특히 남동생, 소년, 애인 등 다양한 역으로 등장하는 배우 이철희는 때로는 과장스런 연기를 보여주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재밌으면서도 내용을 이해하기엔 좀 어렵다. 상징적인 대화들이 계속 오고가기 때문에 매 순간 집중을 해야 한다. 김광보 연출이 이번 연극을 집필한 고연옥 작가에게 권고했듯 좀 더 쉽게 풀어내는 작업이 필요할 듯하다. 열린 무대에 대해서도 조금 의문이 든다. 김광보 연출은 이번 ‘지하생활자들’에서 관객이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 받는 것이 아니라 함께 추임새도 넣고 이야기할 수 있는 형태의 열린 연극을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직접적인 소통은 적극적으로 이뤄진 것 같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배우들끼리의 소통은 자연스럽게 이뤄져 흥미를 돋운다. 김광보 연출. 조정근, 김지성, 이기봉, 김학수, 한갑수, 윤가현, 김정영, 정나진, 강학수, 김정환, 이철희, 변민지 출연. 공연 관련 문의 02)3279-2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