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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주 “레고 작가에서 이제 벗어납니다”

버려진 장난감과 거친 붓터치로 작품 변화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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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45호 김대희⁄ 2011.10.25 14:02:55

미술 작품을 보면 그림인지 사진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사실적인 화면에 놀라는 경우가 있다. 하이퍼 리얼리즘 또는 극사실주의라 불리는 이 장르는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회화와 조각의 새로운 경향이다. 극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리얼리즘으로 특히 팝 아트의 강력한 영향으로 일어난 운동이다. 극사실주의는 팝 아트와 같이 매일 매일의 생활, 즉 우리 눈앞에 항상 있는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지만 팝 아트와는 달리 아주 억제된 것이어서 아무런 코멘트 없이 그 세계를 현상 그대로만 취급한다. 아이들의 장난감으로도 친숙한 레고를 사실적이면서도 경쾌한 팝아트 풍으로 그려내 귀엽고 깜찍한 화면을 만드는 배주 작가를 만났다. 마치 실제 장난감을 사진으로 찍은 듯한 화면을 보여주는 그는 하이퍼 리얼리즘 작가로도 불리지만 그보다 먼저 레고를 떠올리게 된다. 일명 ‘레고 작가’로 통하는 그의 모든 작품에는 레고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2011년 5월 서울 평창동 가나 컨템포러리에서 3년 만에 2번째 개인전을 가졌었던 그는 “지난 전시까지는 개인적 욕망에 대한 것을 다뤘지만 최근 개인전은 사회 활동을 하면서 느껴지는 사회구조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작품에 표현했다”고 말했다. 또한 “무엇보다 새로운 작업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연결고리가 된 전시였다”고 밝혔다. 그의 작품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친근한 레고 장난감이 주로 등장한다. 우연히 들어간 장난감 가게에서 필연적인 느낌을 받고 장난감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에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장난감을 소재로 작업해왔다. 이렇게 그림을 그려가면서 장난감들이 현대인의 모습과도 닮았다는 확신을 하게 됐고, 자신이 하고픈 얘기와도 연결됐다고 한다.

이처럼 귀엽고 예쁘기만 한 그의 작품은 사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작품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밝은 그림과 달리 쉽지 않은 냉소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대학 시절부터 인간과 동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궁금해 하기도 한 그는 인간의 동물적 본능을 생각하며 그 느낌을 작업으로 표현하기를 원했다. 인간의 동물적 본능이나 욕망 등에 대해 시작했지만 그 범주가 개인에서 점차 넓어지고 있다. “레고가 가진 매끈한 형상과 대량 생산의 구조적인 점, 하나하나의 표정들이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들과 닮았다고 느꼈어요. 처음에는 레고에 내 이미지를 넣었지만 지금은 현 사회를 담아 이야기하고 있죠.” 최근에는 그의 작품에서 레고가 점점 사라지면서 붓터치의 느낌을 살린 작업이 등장했다. ‘레고 작가’라는 타이틀이 초기에는 자신을 인식시키는데 좋았지만 오히려 한 가지에 고정돼 버리는 점이 부담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버려진 장난감을 주워오거나 사진으로 촬영해 그리고 있다. 레고는 매끈거리는 모습으로 속을 감추는 역할을 했지만 버려진 장난감들은 껍데기는 사라지고 속만 남은 형태를 표현하게 된다. “기존의 감추고 있던 매끈한 느낌에서 이제는 거친 느낌으로 작업하면서 욕망을 표출해내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껍데기들이 다 사라지고 낡고 허물어져가는 모습을 표현했어요. 앞으로 더 연구해 나가야하는 부분이죠. 레고도 점점 사라질 예정이에요. 6년 정도 그렸으니 많이 그렸죠. 아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지만 레고로 모든 걸 담아내기는 어려웠어요.”

또한 작품에 동물이 등장하는데 야생의 동물들도 인간의 손길이 많이 닿으면 진정한 동물성을 잃고 인간화되는 느낌을 표현했다. 그가 특별히 사실주의적인 표현을 하는데도 이유가 있다. 눈에 보이는 사실 그대로를 표현하는 사진과는 다르다. 그림은 개인의 감정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기에 감추려고 하지만 이내 드러나게 된다. 하이퍼 리얼리즘은 사실도 아닌 그렇다고 거짓도 아닌 그림이지만 사진처럼 감출 수 있는 이러한 점이 현대사회를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형식과도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림을 접하는 순간 쉽고 재밌게 감상하게 되지만 내용을 알면 많이들 놀라기도 한다는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줬으면 한다는 바람도 들었다. 이에 작품 제목을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어떤 나라’ ‘난장판’ 등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만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사람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는걸 알게 됐죠.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힘든 일과 고민들을 어느 정도나마 해소할 수 있는 청량제 같은 작품이 됐으면 좋겠어요.”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작품에 변화를 꾀하는 배주는 새로운 방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가장 급선무라며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다 거칠게 그리니 더 재밌고 자신과 잘 맞는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자신이 잘하는 게 그림이었기 때문에 미술 작가가 된 점에 대해서 다행으로 생각한다는 그의 얘기에서 다음에는 어떤 작품과 이야기가 나올지 사뭇 기대감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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