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호 심원섭⁄ 2011.10.25 14:58:40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2007년 대선 이후 4년 만에 선거지원에 나선 10·26 재보선 지원 과정에서 과거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친화력과 적극성을 보여주는 등 확연히 달라진 모습으로 ‘대중 속으로’ 다가가 눈길을 끌었다. 박 전 대표의 이러한 모습이 가장 잘 나타난 장면은 10월 14일 부산 동구청장 지원유세를 위한 방문 때였다. 이날 수정 재래시장 내 만두 가게를 찾은 박 전 대표는 사진기자들 앞에서 맨손으로 집은 만두를 덥석 한 입을 베어 문 뒤 만두가게 주인에게 “정말 맛있네요. 몇년이나 하셨어요”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과거 같았으면 ‘작위적’이라며 스스로 고사했을 장면이었다. 물론 ‘수첩공주’라는 별명을 가진 박 전 대표는 과거에도 시장상인이나 자영업자들을 많이 만났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서민과 접촉면을 대폭 넓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강도(强度)도 강화한 것이다. 10월 19일 인제 재래시장에서는 빨간 고무통에 교자상을 얹은 ‘임시식탁’에서 3천원짜리 올챙이국수를 먹으면서 상인들과의 ‘눈높이 맞추기’에 주력했으며, 함양 재래시장에서는 “아무 것이나 잘 먹는다”며 6천원짜리 순댓국밥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올챙이 국수, 호떡, 순댓국밥…‘눈높이 맞추기’ 박 전 대표는 격식 파괴에도 나섰다. 소공동 지하상가 상인이 서울시 행정의 부당함을 호소하자 먼저 “가게로 들어가 이야기하자”고 했고, 이날 점심시간에는 북창동의 한 낙지센터를 찾아서 젊은 직장인과의 소통에 적극 참여했다. 물론 지방유세 때처럼 박 전 대표에 대한 열렬한 환영 분위기는 없었지만, 박 전 대표 스스로 각 테이블을 돌며 점심메뉴 등을 물어보며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나중에는 의자 하나가 빈 한 테이블로 다가가 “앉아도 될까요”라고 양해를 구한 뒤 동행 취재 중이던 기자들을 내보내고 직장인 유모(26)씨 등 3명과 합석해 이들이 주문한 낚지복음과 조개탕, 계란말이에 자신이 먹을 공기밥 하나만 추가로 주문해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점심값 3만3천원은 한 시민이 미리 계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는 식사 후 기자들과 만나 “내는 세금에 비해 혜택이 적은 것 같아 세금의 투명성을 얘기했다. 청계천이나 버스시스템처럼 마음에 와닿는 (대선) 공약이 없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정부 2.0을 통해 예산을 투명하게 하는 시스템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면서 ‘대선공약’에 대한 지적에는 “잘 들었다. 참고하겠다”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박 전 대표는 명동 지하상가를 방문해 비좁은 옷가게 안으로 들어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30년전 보증금만 받고 여기에서 나가라고 했다”며 울먹이는 의류상인의 얘기를 듣고 “당시 (보증금) 1천500만원을 받고 나가라고 하는건 말이 안되죠…”라며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라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그리고 박 전 대표는 북창동·명동 거리에서도 일본인 관광객 및 고교생들과 폰카찍기와 악수를 하는 등 스킨십 쌓기에 주력했으며, 명동의 한 호떡가게에서는 “좋아하는 호떡인데 돈을 안가져왔다”며 동행한 이학재 의원에게 2천원을 빌리려고 했지만 상점 주인이 한사코 돈 받기를 사양하자 “고맙다”며 ‘호떡 선물’을 받기도 했다. “모두 살기좋은 나라 꼭 만들어보고 싶다” 박 전 대표는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카페에서는 게임개발자·작곡가·패션디자이너·방송작가·브랜드마케터 등 전문직 종사자 5명을 만난 뒤 “콘텐츠를 만드는 분들이 제대로 대우 못 받는 것은 잘못된 것인데 연구를 더 해보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정치에서 어려운 일도 ‘내가 이걸 꼭 해내야겠다’는 그런 열정으로 이기고 있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하시게끔 살기 좋은 나라를 꼭 만들어 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진실이 아닌데 진실처럼 부풀려지는 게 많을텐데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질문에는 “어쨌든 살아남은 거 보면 극복한 거 아닌가요”라고 웃고, “즐겨보는 방송 프로그램은 뭐냐. 혹시 조카분이 나오시는…”이라고 한 참석자가 묻자 “1박2일, 그것도 봤다. 이 시대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진정성인데 그걸 공유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표의 달라진 국민과의 ‘거리 좁히기’ 행보는 이것만이 아니라 10월14일 부산 동구 노인복지관내 치매 노인들이 모인 방에 들어가서 주저 없이 딸처럼 이들의 손을 붙잡고 얘기를 듣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박 전 대표는 한 노인이 악수를 많이 해서 퉁퉁 부은 자신의 손을 세게 잡자 “아야…”라며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힘이 넘치시니 감당이 안되네요”라며 농을 던지기도 하고, 오른손 대신 왼손을 대신 내밀기도 했다. 과거 같았으면 통증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빼거나 가끔은 악수를 고사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또한 박 전 대표는 10월 15일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의 지원을 위해 영등포 타임스퀘어를 찾은 자리에서는 자신의 자서전을 사서 가져온 한 시민에게는 호주머니에서 도장을 꺼내 QR코드(스마트폰용 격자무늬 코드)를 자신의 사인 밑에 찍어주면서 “이걸 휴대전화로 찍으면 제 홈페이지로 연결된다”면서 ‘자기 PR’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노량진 고시촌을 찾은 자리에서는 공부에 지친 취업준비생들을 위로한다며 “식인종이 밥투정할 때 뭐라고 하는줄 아느냐. ‘살맛 안난다’는 것”이라며 ‘썰렁 유머’를 던진 뒤 “조금 더 참고 노력해서 힘내면 살맛나는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대중과 ‘거리 좁히기’의 한 방식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된 박 전 대표가 서민의 삶과 거리가 있다거나 너무 점잖아 다가서기 어렵다는 세간의 ‘오해’를 불식하는데 주력하겠다는 의중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박 전 대표는 이번 재보선 지원유세를, 오랜 기간 준비해 왔으나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한 자신의 각종 정책을 자신감 있게 선보이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도 뒤따르고 있다. 이번 재보선에서 처음으로 지원한 10월 13일 박 전 대표는 구직자 등을 만나 일자리 창출에 대해 꾸준히 다듬어 온 구상들을 펼쳐보였고, 10월 14일에는 노인 문제와 지역경제 발전 등과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자신있는 어조로 전달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여겨지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지자체와 관련된 것은 후보에게 전달하고 국가적으로 챙겨야 할 일은 제 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것은 이런 정책구상을 추진하기 위한 적극성과 자신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으로 평가되고 있다. 선거지원 방식도 대규모 유세나 후보들과 손을 맞잡고 ‘화이팅’을 외치지도 않는 등 기존 선거방식과 구별되는 특징으로 관심을 모았다. 기존 선거방식이 유권자들에게 “우리 후보를 찍어 달라”고 주입하는 것이었다면, 박 전 대표는 낮은 자세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가 얘기를 듣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박근혜 바람’ 지방서 서울로 ‘북상’ 여부에 주목 이는 자신이 언급했던 ‘정치권 전체의 위기’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박 전 대표도 자신이 주도해 선거운동 방식이 바뀌지 않았느냐는 자부심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는 10월 20일 충주 지원 유세에서는 우선 노인복지관을 찾아 재취업과 교육·복지 문제에 대한 노인들의 건의사항을 일일이 청취하면서 “국가와 사회가 노후를 편안하게 지내도록 뒷받침하는 게 도리다. 필요한 부분이나 애로사항을 잘 챙겨 어르신에게 보답하겠다”고 몸을 낮추기도 했다. 이처럼 박 전 대표가 이번 재보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지원 활동에 나서면서 그 효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선거의 여왕’, ‘재보선 40대 0의 신화’의 주인공인 박 전 대표가 이번 선거에서도 영향력을 과시할 지는 향후 대권가도에서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위상을 점쳐볼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 전 대표가 ‘칩거’를 깨고 4년 만에 선거 지원에 나서면서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지만 이 현상이 박풍(朴風)이 되면서 표로 연결될 지는 정치전문가마다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사회과학전문 출판사 ‘후마니타스’의 박상훈 대표는 “박근혜 효과는 당연히 있다. 현재로서는 효과를 낼 가장 유력한 상수”라며 “박 전 대표까지 선거 지원에 가담하면 보수 쪽은 있는 힘이 다 들어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도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유권자의 1~2%는 박 전 대표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움직임에 따라 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박 전 대표 때문에 마음이 움직인 사람은 투표장에 가겠지만, 안 원장 때문에 마음을 바꾼 사람이 투표장에 갈지는 의문”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박 전 대표와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의 표가 다르다면 영향력이 클텐데, 그동안 보수세력이 결집해왔던 중이었기에 수치적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다른 견해를 보였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이택수 대표 역시 “박 전 대표의 지원에 따른 영향은 이미 반영이 됐고, 안 원장의 경우 아직 반영이 되지 않았다”면서 “표본여론조사를 보면 안 원장이 지지하면 야권 후보에 투표하겠다는 유보층의 움직임이 박 전 대표 지지층보다 훨씬 강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박 전 대표가 서울보다는 지방 선거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더 크며, 이 경우 선거 막판 ‘박풍’이 서울까지 북상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고 박사는 “‘박근혜 효과’는 지역에 따라 다를 것”이라면서 “서울 유권자 대다수도 순수 토박이가 아닌 만큼, 박 전 대표가 지역에서 바람을 일으키면 그게 돌아 서울까지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부산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박근혜 바람이 세다. 언론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거론하는데, 부산 사람들에게는 문 이사장이나 박 전 대표 모두 이명박 대통령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며 “특히 부산 동구청장 선거는 박빙인 만큼,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영향력을 내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같은 전망 속에 이번 재보선이 박 전 대표에게는 내년 4월 치러질 총선과 12월 대선에 얼마만큼의 효과를 가져올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