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차와 한국차가 전세계 무대에서 한판 붙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차와, 독일의 ‘국민차’ 폭스바겐(Volks: 국민 + Wagen: 차)의 대결이다. 한국차의 ‘타도 1순위’는 전통적으로 일본차였다. 독일차처럼 화려한 성능은 아니더라도 잔고장 없고 연비-유지비가 저렴하다는 장점 덕분에 미국 등 세계의 대형 시장을 주름잡은 토요타-혼다는 한국차가 부지런히 쫓아가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양상은 올해 일본에 대지진이 발생하고, 일본 엔화 환율이 ‘겁나는 수준’까지 올라가면서 크게 바뀌었다. 가격경쟁력의 하락과 다소 옛스러운 디자인 탓에 일본 차가 주춤하는 사이 독일의 폭스바겐이 순식간에 토요타를 제치고 생산댓수 기준 세계 1위 자리에 올라설 전망이다. 이렇게 잘나가는 폭스바겐이 국제화를 추진하면서 미국-중국-유럽 등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와 폭스바겐이 정면대결을 펼치는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차와 독일차는 ‘노는 물’이 완전히 다르다고 인식됐던 기존의 상식을 돌아본다면 순식간에 새 국면이 도래한 셈이다. 독일차 중에서도 폭스바겐은 특이한 존재다. 세계적 독일 명차, BMW와 벤츠가 고급차‘만’ 생산하는 반면 폭스바겐 그룹은 소형차부터 최고급차까지를 다양하게 생산한다. 폭스바겐의 소형차 ‘골프’는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스테디-베스트셀러다. 폭스바겐 그룹이 90년대 이후 사들인 람보기니, 벤틀리, 부가티는 ‘명차 중에도 명차’라고 할 정도로 정말 최고급 브랜드들이다. ‘과거의 중압감’ 가장 적은 독일차 폭스바겐은 신기술 개발과 파격적 디자인으로 새 흐름 이끌며 토요타 제치고 ‘세계 1위 판매’ 자동차 업체로 올라서 BMW, 벤츠와 아우디-폭스바겐은 같은 독일차이면서도 성격이 많이 다르다. BMW, 벤츠는 고급차라는 명성과 전통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대중적인 차를 만들 수 없고, 디자인의 전통도 유지해야 하는 반면 폭스바겐에는 이런 부담이 없다. 특히 아우디의 경우 ‘과거의 영광’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디자인 측면에서 과감한 도전을 더욱 쉽게 할 수 있으며, 아우디 차의 날카로운 새 디자인 도전은 국제적으로 “고급차의 디자인 기준은 아우디”란 평가를 일부 받고 있다. 아우디의 차내 마감은 독일 국내에서도 “벤츠, BMW를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렇게 세련된 실내 디자인 기준은 낮은 수준의 폭스바겐 차에도 일부 적용된다. 대중차이면서도 고급차의 맛을 ‘일부나마’ 맛보게 하는 데에 ‘요즘 폭스바겐 차’의 매력이 있다고 하겠다.
이런 저력은 세계적으로 폭스바겐의 판매댓수가 늘어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고향 유럽에서 올해 심각한 경제침체 와중에서도 폭스바겐은 올 판매량을 8%나 늘렸으며,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 시장에서는 현지업체와의 합작 생산을 통해 2008년부터 판매1위를 계속 지키고 있다. 또다른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폭스바겐의 위치는 여태까지는 정말 미미한 수준이었다. 중형차 중에서 최고급이라는 ‘파사트(Passat)’ 모델을 공급했지만 가격이 워낙 비싸, 미국의 가장 큰 품질평가 매체인 컨슈머리포트는 아예 파사트 모델을 테스트 품목에서 제외했을 정도다. 폭스바겐의 준준형차 제타(Jetta, 휘발유 엔진)는 품질평가에서 당당 꼴찌를 차지하고 있고, 폭스바겐이 자랑하는 ‘딱정벌레 차’ 비틀(Beetle)은 “정말 고장 많이 나는 차”라는 혹평을 미국에서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양상도 크게 바뀔 전망이다. 멕시코 등에서 폭스바겐 차를 만들어 미국에 공급하던 전략에서 벗어나 ‘미국인을 위한, 미국에서 만든’ 차를 판매하겠다고 폭스바겐 측이 전략에 대수정을 가했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은 올해 미국 테네시주에 새 공장을 완공하고 미국인 구미에 맞춘 전략 중형차 2012년형 파사트(Passat)를 내놓았다. 자동차를 ‘제2의 주거 공간’ 정도로 여기는 미국인의 기호에 맞춰 실내 사양을 대폭 개선하고 독일차가 자랑하는 주행-핸들링 성능까지 더한 데다, 가격 수준을 한국-일본의 경쟁 차에 최대한 근접하도록 낮췄다. 올해 8월까지 미국에서 단지 1700여 대가 팔렸던 파사트를 내년부터 연간 30만대를 팔겠다는 게 폭스바겐의 계획이니 그 야심참을 알 수 있다. 무려 177배 판매증대 목표다. 참고로 같은 기간 미국에서 팔린 토요타의 중형차 캠리는 20만5000여 대, 현대 쏘나타는 15만7000여 대였다. 미국 중형차 시장에서 ‘3차 세계대전’이 펼쳐질 참이다. 이 신형 파사트에 대한 미국 전문가들의 평가도 좋은 편이다. 미국 판매부수 2위의 자동차 전문지 ‘모터 트렌드’는 2012년에 팔릴 현대 쏘나타, 토요타 캠리, 폭스바겐 파사트 3자가 겨루는 실력대결을 시리즈 기사로 내놓고 있다. 10월말까지 1-2차 테스트(1차 저렴한 모델 대결, 2차 테스트는 하이브리드 모델 대결) 결과가 나온 가운데 파사트, 캠리, 쏘나타가 각각 1, 2, 3등을 두 번씩 차지해 파사트가 최고 평점을 받은 상태다. 이 잡지는 곧 이들 세 차종의 ‘6기통 고급모델’을 대결시켜 그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미국에서 폭스바겐 위치 그간 미미했지만 ‘미국에서 설계하고 만든 2012년형 파사트’ 내놓으면서 쏘나타·캠리 등과 한판 벌일 전망 미국에서는 폭스바겐이 현대차에 도전자인 반면 유럽에서는 현대가 도전의 칼을 갈고 있다. 90년대 미국 시장을 ‘접수’한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이 “다음은 유럽”이라며 독일차 타도를 외쳤지만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토요타-혼다의 유럽 시장 점유율이 도합 5%도 안 된다는 점을 돌아보면 유럽차를 대표하는 독일차의 아성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알 수 있다.
현재 7%의 점유율을 달성해 일본차보다는 선전하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폭스바겐을 정조준한 차량을 최근 잇달아 내놓았다. 중형차에선 폭스바겐 파사트, 소형차에선 폭스바겐 골프가 현대의 타겟이다. 강적을 이기려면 우선 강적의 뒤꽁무니를 바짝 쫓아가야 한다. 그래서 현대는 아예 줄자를 이 두 폭스바겐 차종에 들이대고 치수를 재가며 ‘따라쟁이 모델’을 내놓았고, 그 작품이 중형차 i40와 소형차 i30이다. 두 신차를 내놓으면서 현대차는 아예 공개적으로 “i30은 폭스바겐 골프와, i40는 폭스바겐 파사트와 경쟁한다”고 선언해버렸다. “한판 붙자”는 의도를 굳이 숨길 필요조차 없다는 태도다. 현대차가 이렇게 나오자 곧이어 폭스바겐그룹 회장이 직접 줄자를 대고 현대차의 치수를 재는 별난 광경도 연출됐다. 지난 9월 세계 최대의 자동차 쇼인 푸랑크푸르트 모터쇼의 현대차 부스엔 진풍경이 벌어졌다. 폭스바겐그룹의 마르틴 빈터콘 회장 등 머리카락 허연 임원진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전시된 신차 i30에 줄자를 들이대면서 “현대가 하는 걸 우리는 왜 못하냐”고 아래 임원들에게 질문 공세를 펼쳤다. 모터쇼의 최고 VIP 귀빈이자 폼나게 인터뷰 정도나 하는 게 보통인 회장님이 직접 줄자를 들고 달려왔으니 화제가 될만도 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한 언론은 “기자 또는 관람객을 가장해 현대차 부스를 돌아본 폭스바겐 쪽 사람이 ‘우리 차와 똑같은 현대차가 나왔다’고 보고하자 빈터콘 회장이 ‘가자!’고 임원들을 인솔해 현장에 나왔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현대차가 폭스바겐의 직접적 맞수라는 사실을 회장님이 직접 몸으로 보여주신 격이다. ‘폭스바겐 모방 모델’에 대한 유럽의 평가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독일의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 빌트는 i40에 대해 “조립은 한국에서 하지만 개발은 독일 오버우르젤의 현대차 개발센터에서 이뤄졌으므로 사실상 독일차”라면서 “여태까지 나온 한국 차 중 i40만큼 독일차에 근접한 모델은 처음”이라고 칭찬했다. i40는 그 뒤 스코틀랜드 기자협회의 ‘올해의 왜건’ 상, ‘2011년 유로 카바디 어워드’ 상을 받았다. 최근 현대-기아차는 중국의 소형차 시장에서 폭스바겐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는 보도자료를 국내외 언론에 돌렸다. 중국 내 전체 판매댓수에서는 아직 폭스바겐이 1등이지만, 소형차 부분에서 폭스바겐을 따돌렸다는 점을 부각시킨 보도자료였다. 이렇게 놓고 보면 현대-기아차와 폭스바겐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중국, 유럽이란 3개 대륙에서 거의 전면전 형태로 맞붙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두 업체의 경쟁 양상은 국내 자동차 소비자들에게 볼만한 구경거리를 제공함은 물론 독일차의 특징인 코너링-주행감각을 한국차가 열심히 쫓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므로, 이래저래 자동차 애호가들을 즐겁게 만들 전망이다. 중형차 3자대결서 파사트 “단독 선수” 미국 전문지, 캠리·쏘나타와 도로대결 평가 현대 쏘나타가 올해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며 일본차를 위축시켰지만 이런 양상이 2012년에는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을 전망이다. 토요타가 야심작으로 내놓은 2012년형 캠리, 그리고 폭스바겐이 ‘미국 시장 점령을 위한 전략차종’으로 내놓은 2012년형 파사트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2위의 자동차 전문지 ‘모터 트렌드’는 최근 이 세 차종을 세 번에 나눠 실력대결 시키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10월말까지 발표된 1, 2차 테스트에서 순위는 두 번 모두 1위 파사트, 2위 캠리, 3위 쏘나타로 동일했다. “캠리, 성능 좋아졌지만 디자인이 좀…” ◇1차 대결 결과 1차 대결은 가장 대중적인 염가 사양(파사트 SE, 캠리 LE, 쏘나타 GLS)끼리의 대결이었다. 다음은 평가 결과다. 쏘나타 GLS는 가격 대비 성능이 최고였고 옵션-내장도 최고 수준이었지만, △시속 0→60마일 도달 속도가 캠리보다 0.4초 뒤졌고 △기어 변환이 느리며 △핸들링 점수가 가장 낮고 △코너링 등에서 차량 흔들림이 느껴지며 △파사트와 같은 폭이면서도 운전석이 좁고 불편하게 느껴지고 △뒷좌석에 타고 내리기가 가장 불편하다는 등의 단점을 지적받았다.
신형 캠리 LE는 △몸무게가 가장 가벼워 시속 0→60마일 시간이 가장 짧고 △시속 60→0마일 급정거 거리도 가장 짧고 △새 2.5리터 엔진이 우수하며 △핸들링이 정확하고 △연비가 시내 25마일, 고속도로 34.1마일로 최고이고 △조수석 공간이 파사트보다 0.5평방피트 더 넓은 점 등이 장점으로 꼽혔다. 반면 △디자인이 옛 모델을 연상시키며 △코너링에서의 자신감이 파사트에 못 미치고 △가격이 쏘나타보다 비싸면서도 알루미늄 휠이 장착되지 않은 등이 단점으로 지적되면서 간발의 차이로 2등에 머물렀다. 파사트 SE는 독일차의 주특기인 주행성능과 스타일링으로 1위에 올랐다. 모터 트렌드는 장점으로 △시속 0→60마일 도달시간이 세 차 중 가장 느린 등 직선 달리기는 별로지만 일단 코너 길로 들어서면 다른 두 차종의 볼기를 때릴 정도로 우수하며 △가장 스포티하고 핸들링 감각이 최고이며 △서스펜션이 가장 세련돼 ‘드라이버를 위한 차’라고 할 수 있으며 △단순한 듯하면서도 아우디 A8을 연상시키는 고급스런 외부 디자인 등을 꼽았다. 반면 파사트의 단점은 △쏘나타-캠리에 있는 아이팟-USB 음악연결 등 전자기능이 없고 △차내가 아주 고급스럽지는 않다는 점 등이 지적됐다. 하이브리드 쏘나타에 “갈 길 멀다” ◇2차 대결 결과 2차 대결은 세 차종의 하이브리드 모델(파사트 TDI SE, 캠리 하이브리드 XLE, 쏘나타 하이브리) 대결이었다. 2차 대결 결과도 1차 때와 마찬가지였지만, 이제 막 하이브리드 차를 내놓기 시작한 현대는 상당한 질타를 받았다. 모터 트렌드는 쏘나타 하이브리드에 대해 △시속 0→60마일 도달시간이 가장 느리고(쏘나타 7.0초, 캠리 5.8초, 파사트 5.7초) △핸들링이 무르고 △브레이크가 너무 잡아당기며 △엔진분사가 조금 돌발스럽다 △미국 환경청의 연비 측정 결과는 1갤런당 시내 35마일, 고속도로 40마일로 발표됐지만 실제 측정 연비는 27마일에 그쳤다는 점 등을 들어 “뚝 떨어지는” 3등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당장 캠리를 따라가도록 노력해야”라는 충고와 함께였다.
캠리 하이브리드 XLE는 1차 대결에서와 마찬가지로 간발의 차이로 파사트에게 1등을 내줬다. △시속 →60마일 도달시간이 단 5.8초로 빨랐고(쏘나타 7초, 파사트 5.7초) △브레이크가 잘 듣고 △엔진분사가 부드러우며 △핸들링이 가볍고 직접적이라는 점이 장점으로 꼽혔다. 단점으로는 △주행감이 파사트만큼 만족스럽고 인상적이지 못했으며 △계기나 작동버튼이 너무 크고 지나치게 장식적인 점이 지적됐다. 그러나 캠리 하이브리드는 “쏘나타가 개발도상에 있다면, 캠리는 프로 리그”라는 호평을 들으며 2등에 올랐다. 1등 파사트 TDI SE는 △엔진 파워가 좋고 △폭스바겐 특유의 DSG 기어변환 장치가 재빠르고 부드러우며 △도로접지력이 좋고 △핸들링 성능이 1급이며 △서스펜션이 단단하고 활기차며 △하이브리드 배터리가 있음에도 가장 큰 트렁크 공간을 확보한 점 등이 장점으로 꼽혔다. 세 차종 중 가장 보람있고 반응성이 좋은 드라이빙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 즉 “독일차답다”는 점이 최고 평점의 이유였다. 모터트렌드는 앞으로 세 차종의 고급모델, 즉 고급사양을 적용한 V6 모델의 경쟁 결과를 곧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