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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화 작가 “사람은 없고 빌딩만 화려하니…”

건물에 소외 당하는 한국인의 마음속을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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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49호 왕진오⁄ 2011.11.21 13:25:31

어둠이 내린 도시의 풍경에는 삶의 애환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뒤섞여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화려한 네온사인, 꼬리를 이어가는 자동차의 불빛들은 하루를 마감하는 현대인들에게 잠시의 여유와 내일을 위한 안식을 준다. 옛 선인들은 도시가 아닌 자연의 경치를 화폭에 담은 산수화를 즐겨 그렸다. 산수화에 담긴 자연은 당시 조상들의 눈앞에 펼쳐진 경관이지만, 그들이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던 오늘날의 도시와 유사한 풍경을 보여준다. 이미화(27)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풍광을 화폭에 담고 싶어 한다. 눈을 들어 바라본 곳에는 조상들이 보았던 산과 강과 나무도 있지만 높다란 위용을 드러내며 서 있는 건물들과 빼곡하게 들어선 주택들, 모양과 색이 제각각인 자동차와 불빛, 거리들이 있다. 옛 선인들이 자연을 체험하면서 그 안에서 느낀 정서와 이상을 산수화에 표현했다면, 이 작가는 다종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건물들로 가득한 도시의 외면과 내면을 캔버스에 담아낸다. 건물의 윤곽이 도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덩어리인 건물 자체가 조합되면서 도시를 이루어내듯, 화면에 등장하는 건물은 선으로 구축되고 색으로 형상화된다. 그런데 건물을 완성하는 색은 다시 건물 너머로 확산되면서 하나의 도시 전체를 아우르게 된다. 이것은 마치 전통적인 산수화에서 여백을 통해 산과 강과 허공이 중첩되면서 하나의 깊이를 지닌 공간을 어우러지듯 도시와 연결된다. 한국화에서의 여백은 그려진 세계보다 더 많은 것을 내포하는 정신적 공간이자 ‘비움/생략’을 통해 ‘채움/가득함’을 드러낸다. 여백은 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해주는 중요한 공간으로, 옛 선조들은 아무것도 그리지 않아 바탕을 그대로 남겨두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 작가의 작품에서는 색으로 물들어 있다.

마치 먹이 화선지 위에 스며들듯이 건물과 여백 모두가 색으로 이어지면서 비어 있는 듯 채워진, 채워진 듯 비어 있는 여운을 제시한다. 이처럼 표현된 여백은 무한한 공간감과 함께 정지된 느낌을 유발하는 함축된 공간이다. 색으로 채워진 여백을 통해 관람자가 상상할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작가가 바라보는 도시의 화려한 외관과 공허한 내면은 도시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이상이 투영된 것이다. 동시에 자신이 창조한 것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고독과 두려움이 교차되면서 드러나는 도시에 대한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다. 이러한 감정은 도시의 외관을 통해 내면을 드러내는 이 작가의 그림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도시의 화려함은 은박이라는 소재를 통해 드러난다. 작품에 배어 있는 은박은 화면에서 재료의 물성을 통해 시각적인 효과와 함께 평면성, 그리고 이미지로서의 의미를 담아낸다.

이 작가가 바라보는 도심은 무엇일까? 그는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이상세계를 표현하려 했다”며 “현대 도심 속에 만들어진 유토피아의 세계를 그렸다”고 말했다. 전통 산수화처럼 선과 색이 스며든 한국의 빌딩들. 건물이 만드는 도시 풍경에 나무들은 숨어 있고 여백은 짙은 의미를 품고 도시 위에 떠 있으니… 그런 이 작가에게 도심 풍경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도심의 외면은 화려하지만 그 내부에는 공허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도시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제 작품의 주요한 대상으로 나타난 것 같다”며 “인간의 공허함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대상인 것 같았다”고 밝혔다. 넓게 펼쳐진 여백 위아래에 위치한 도시는 고층건물과 자동차로 채워져 있는 듯 하지만 그 안에는 실제보다 더 많은 나무가 있다. 물리적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는 도시에 나무라는 소재를 통해 자연의 생명력을 담아 도시의 근원인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염원을 담아내고 있다.

이를 위해 사실적인 표현을 자제하고 선으로 화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 많은 집과 건물, 그리고 자동차가 모두 텅 비어 있다. 건물과 거리들 사이에 인기척 하나 없는 공허함을 표현함으로써 화려한 도시 속에서 공허한 내면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심적 태도를 반영했다. 이미화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지금까지 맹목적으로 작업을 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화가로서 시작 단계에 서있는 내가 지금의 자리에서 한 단계씩 발전해 올라간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해보고 있다”며 “시간이 흘러 내 모습을 보았을 때 작업 면에서나 내적으로 많이 성숙해져 지금보다 많이 발전하고 성숙한 작가가 되어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아직까지 도시를 그리는 작업을 통해 제 자신이 풀어내야 할 숙제 같은 것이 남아 있는 것 같다”며 “항상 노력하고 연구하고 변화를 거듭해 지금 자리에 만족하고 머무르는 작가가 아닌, 발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작품에 어려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그림만으로도 대중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작업을 펼쳐 보려 한다”고 그는 향후의 작업관을 밝혔다. 전시 문의 02-396-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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