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차의 종주국’ 독일에서는 매년 ‘자동차의 오스카 상’이라 불리는 상이 시상된다. 지난 1년간 출시된 차 중에서 최고를 가리는 행사다. 독일의 일간지 ‘빌트’와 산하의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 빌트’가 주최하며, 독일다운 정교한 심사평가 방법으로 유명하다. 상의 이름은 ‘황금 핸들’(Goldene Lenkrad)이며 지난 1976년 시작돼 올해로 36회째를 맞았다. 최고의 자동차를 뽑는 상은 많지만 대개 자동차 전문가 또는 전문기자들이 선정의 주체가 된다. 그러나 ‘자동차의 오스카 상’은 그렇게 간단히 최종 우승 차를 뽑지 않는다. 우선 심사위원단은 네 그룹으로 나뉜다. 유럽 전역에서 각 나라 언어로 발매되는 ‘아우토 빌트’의 편집장들이 제 1그룹이다. 제2 그룹은 자동차기술 전문가이며, 3그룹은 자동차 경주 선수들, 그리고 마지막 4그룹은 저명인사들이다. 1-2그룹의 편집장들과 전문가들은 차의 전반적 성능에 대해 점수를 매기며, 3그룹의 자동차 경주 선수들은 핸들링 능력, 엔진 성능, 브레이크 성능 등에 점수를 매긴다. 그리고 마지막 4그룹의 사회 저명인사들은 차의 안팎 디자인, 안락함 등을 채점한다. 이 점수를 모아 △중형-고급차 △콤팩트 카 △소형차 △컨버터블(지붕을 덮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자동차) 등 4개 분야에서 금-은-동상 자동차를 선발한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독자 참여투표를 통해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특별상 △스포츠 카 특별상을 뽑는다. 올해는 유럽 21개국에서 26만1335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전문 평가단이 평점을 매기고, 여기다가 ‘대국민 투표’까지 더해 최종 승자를 가려내는 방식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선발된 자동차에 대해 지난 11월 베를린에서 시상식이 열렸다. 유럽권 자동차 업체의 회장님들이 대부분 참석한 성대한 행사였다. 올해 행사에서 종합 1등을 꼽는다면 단연 메르체데스 벤츠였다. 컨버터블 부분과 SUV 부분에서 최고상을 받았음은 물론 콤팩트카, 중형-고급차, 스포츠카 부분에서 각각 2위에 올라 가장 많은 상을 받았다. 독일 신문 빌트 사가 주최하는 ‘골데네 렝크랏’은 다양한 채점 방식과 심사위원단-독자들의 참여로 명실상부한 ‘유럽차의 오스카 상’ 위치에 올라 BMW는 올해 새로 내놓은 1시리즈가 영원한 맞수인 벤츠의 B클래스를 이기고 1등에 오른 것에 만족해야 했으며, 아우디 역시 중형-고급차 부분에서 신형 A6가 벤츠의 C클래스 쿠페를 이기고 1등에 오른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올해 심사위원단에는 랄프 슈나이더 등 유명한 F1 그랑프리 드라이버들, 보리스 베커(테니스 선수), 카트리나 비트(피겨스케이팅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 저명인사들이 참여했다. 다음은 각 부분별 최종 시상 결과다. ■컨버터블 금: 벤츠 SLK (801점) 은: BMW 6시리즈 카브리오 (798점) 동: 벤츠 E클래스 카브리오 (789점) 컨버터블 부분은 ‘고급차 중에서도 고급차’의 대결이라 할만하다. 차 지붕을 자동으로 덮었다 젖혔다 할 수 있는 형태로, 지붕을 젖히면 경쾌한 오픈카가 되고, 지붕을 덮으면 외부와 완전 차단되는 성능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2인승으로 가벼운 차체에 주행성능을 최대한 강조하고, 디자인도 최고 수준이어야 하므로, 흔히 ‘간지 차(멋있다는 의미)’, ‘작업 차(이성 유혹에 좋은 차)’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올해 컨버터블 분야는 벤츠와 BMW의 치열한 한판 승부였다. 벤츠에선 SLK(스포츠 성능을 강화한 쿠페, SLK는 독일어로 스포티, 경쾌, 단신의 약자다)와 E클래스 카브리오가, BMW에선 신형 6시리즈 카브리오가 나와 한 치 양보가 없는 경쟁을 벌였다. 결과는 SLK가 801점으로 1등에 올랐고, 단 3점 차이로 BMW 6시리즈(798점)가 2위에 머물렀다. BMW의 신무기 6시리즈 카브리오는 여러 분야에서 1등에 올랐지만 자동차경주 선수들이 평가한 달리는 재미(driving fun) 분야에서 27점으로 SLK의 29점에 다소 밀렸다. 6시리즈의 결정적 약점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점이었다. 가격 대비 성능 항목에서 6시리즈는 아예 1-2-3등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전반적인 성능에서는 6시리즈가 벤츠를 더 많이 눌렀지만 가격 대비 성능에서 점수차가 벌어지면서 단 3점 차이로 6시리즈는 2위에 머무르는 아쉬움을 남겼다. 벤츠 SLK는 자동차경주 선수단과 사회명사들로부터 시승감 분야에서 모두 최고점수를 받아 성능을 과시했다. 아우토빌트는 “시승을 마친 사람들의 얼굴에는 큰 미소가 남아 있었다”는 표현으로 SLK의 우월한 시승감을 전했다. 벤츠 E클래스 카브리오는 품질, 안락함, 안전성 등 전통적인 벤츠의 장점을 고루 갖춘 것으로 평가되면서 3등에 올랐지만, 2등과 점수 차이가 많이 나는 3등이었다. 쉐보레 카마로와 폭스바겐 골프 카브리오는 최종 결선에 올랐지만 4, 5등에 그쳤다. 전통의 명가 벤츠, ‘오픈 카’ 분야와 SUV에서 1등. 소형차 대결에선 BMW 1시리즈가 벤츠 누르고, 중형차에선 아우디 A6가 벤츠 C클래스 눌러 ■중형-고급차 금: 아우디 A6 (850점) 은: 벤츠 C클래스 쿠페 (805점) 동: 오펠 암페라 (723점) 아우디의 신무기 A6가 압도적 표 차이로 금상에 올랐다. 2등 C클래스 쿠페와의 점수 차이는 무려 45점. 아우토 빌트의 기사는 “A6에 팡파레를!”로 시작한다. 그만큼 좋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4그룹으로 나눠진 심사위원단 중 3그룹이 A6를 최고로 뽑아 거의 만장일치 판정이랄 만도 하다.
특히 명사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복싱 선수 비탈리 클리치코(우크라이나 출신)는 키가 2미터 2센티나 되는데도 운전석에 편안하게 탈 수 있어, A6의 차내가 넉넉함을 보여줬다. 은상에는 벤츠 C클래스 쿠페가 큰 점수차의 2위에 올랐지만 엔진, 기어변환, 안전성 등 세 항목에선 A6보다 점수가 좋아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3등에는 GM의 전기차 볼트(유럽에서 GM의 자회사 오펠이 ‘암페라’로 발매)가 역시 2등과 큰 점수 차이를 내며 올랐다. 기아의 K5(현지 브랜드명 옵티마)도 결선에 올랐지만 4등에 그쳤고, 푸조 508은 5위였다. ■컴팩트 카 금: BMW 1시리즈 (769점) 은: 벤츠 B클래스 (749점) 동: 폭스바겐 비틀 (739점) 올해 BMW와 벤츠가 각각 새로 내놓은 1시리즈와 B클래스의 대결에서는 BMW가 승리를 거두었다. 승부를 가른 것은 달리는 맛 채점이었다. 이 분야에서 벤츠 B클래스는 아예 3등 안에도 오르지를 못했다. 반면 폭스바겐 비틀이 1등에 오르고 1시리즈가 2등에 올랐다. ‘고급차’로 통하는 BMW-벤츠와 ‘보통 사람들이 타는 차’인 폭스바겐의 주행감 대결에서 폭스바겐이 승리한 결과로 특히 눈길을 끌었다.
달리는 맛 심사에서 자동차 경주 선수인 마티아스 엑스트룀은 1시리즈를 최고로 쳤다. 그러나 비틀의 인기도 만만치 않아 사회명사와 자동차경주 선수들의 채점에서 1등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새 BMW 1시리즈는 여러 부분에서 최고 점수를 보였으며, 특이한 점이라면 BMW가 전통적으로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던 분야인 연비-환경친화성 부분에서도 큰 점수 차이로 단연 1등에 올랐다. 세계 경제 침체로 소형차와 연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는 추세에 BMW도 대응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2등에 오른 벤츠 B클래스는 편안함, 안전성, 주행보조방치 등 분야에서 최고점수를 받으면서 2등에 올랐다. 금-은-동에 오른 독일차 사이에 점수차가 크지 않은 반면, 4등 포드 포커스는 653점, 5등 시트로엥 DS4는 605점으로, 메달권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보였다. 소형차 분야에선 폭스바겐-현대기아가 치열한 한판 승부. 폭스바겐의 가장 작은 차 ‘업’이 1등에 올랐지만 자동차 편집장들은 “현대-기아차가 최고” 한목소리 ■컴팩트 카 금: 폭스바겐 업 (726점) 은: 토요타 야리스 (706점) 동: 기아 리오 (703점) 소형차 분야에서는 이 분야 전통의 강자 폭스바겐이 역시 1등이 올랐다. 폭스바겐 차 중 가장 작은 업(Up)은 자동차기술 전문가들의 진단에서 품질 측면에서 1등에 올랐고, 디자인 측면에서도 카트리나 비트로부터 최고 점수를 받는 등 품질-디자인이 모두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업의 이러한 성과는 엔진이 75마력으로 아주 작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연료비가 비싼 시대에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등은 토요타의 소형차 야리스가 올랐으며, 특히 자동차경주 선수들과 자동차기술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폭스바겐과 전세계에서 대결을 펼치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도전도 간단치 않았다. 우선 기아 리오는 당당 3위에 올라 소형차 분야에서 한국차가 강세라는 점을 증명했다. 현대의 소형차 ix20도 4등에 오르는 좋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유럽 15개국의 아우토빌트 편집장들은 8개 심사 분야에서 리오 또는 ix20를 1등에 올려 한국 소형차를 가장 높게 평가했다. ■특별상: 스포츠카 금: 포르쉐 911 (28.4% 득표) 은: 벤츠 SLS AMC 로드스터 (27.1%) 동: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11.8%) ■특별상: SUV 금: 벤츠 M클래스 (31% 득표) 은: 레인지로버 이보크 (26.9%) 동: 아우디 Q3 (22.6%)
스포츠카와 SUV 분야 특별상은 독자 투표로 결정됐다. 스포츠카 분야의 포르쉐 911과 벤츠 로드스터의 대결에선 근소한 차로 포르쉐 911이 승리했다. SUV에선 벤츠 M클래스가 가장 많은 득표를 얻었지만, 영국의 레인지로버 이보크가 2위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특별상: 그린 카 금: 푸조 3008과 시트로엥 DS4 은: 아우디 밸런스드 모빌리티 동: 폭스바겐 파사트 블루모션 환경친화적인 그린 카 심사분야에선 프랑스 차가 1등에 올랐다. 이는 푸조 3008과 시트로엥 DS4에 적용된 ‘디젤 하이브리드’ 엔진 덕분이었다. 디젤 엔진은 연비가 좋아 최근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 가운데 푸조-시트로엥은 디젤 하이브리드 엔진(일명 하이브리드4)을 이들 차량에 적용해 연비를 획기적으로 높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2-3등에는 아우디-폭스바겐 그룹이 올라 연비 분야에서 강세를 보였다. CN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