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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연 작가, 봉지 속 콩나물은 한국인?

투명하거나 희뿌연 콩나물로 현대인을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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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50호 김대희⁄ 2011.11.29 09:28:38

콩나물은 콩이 햇빛을 못 보도록 하고 어두운 데서 발아·성장시킨 음식이다. 우리 밥상에서 맛있게 먹는 음식이지만, 콩나물 입장에서는 비정상적인 성장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식물은 햇빛을 쐬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하찮은 사람들의 무리를 ‘콩나물 대가리’라고 표현하는 데서 이런 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소연 작가가 유리로 만든 콩나물을 CNB갤러리에서 12월 8~21일 전시한다. CNB저널의 표지작가 공모전에서 뽑힌 작품들이다. 그녀가 만드는 콩나물은 조금씩 다르다. 투명한 것도 있지만 창백하게 희뿌연 것도 있다. 오 작가는 “투명한 콩나물은 자신의 색을 잃고 사회에 흡수되면서 맞춰간다는 의미이고, 불투명 콩나물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늦은 저녁 명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오 작가는 유리조형으로 콩나물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제주도에 유리 박물관인 ‘유리의 성’이 있는데 그곳에서 콩나물 3000개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어요. 처음으로 내 이름을 걸고 만드는 거라 열심히 했죠. 그때 처음으로 콩나물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콩나물도 자세히 보니 재밌었어요. 시장이나 밥상에서 봤을 뿐 그 동안 잘 몰랐던 부분까지 알게 됐죠. 모양도 다 다르고 형태도 독특한 게 많더라구요.” 이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자신도 콩나물을 그냥 먹을거리로만 생각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거기서 생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숨쉬는 듯한 유리 콩나물을 만들어냈다. ‘생명’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콩나물을 담는 봉지도 유리로 제작했다. 봉지에 콩나물을 넣어 ‘존재’라고 제목을 달기도 했다. 그냥 씹어 먹는 대상이 콩나물이지만, 한 번쯤은 하나의 존재로 봐달라는 의미도 있다. 콩나물이 나타내는 주된 의미는 작가 자신을 포함한 현대인들이다. 콩나물은 혼자서는 별 의미가 없다. 많은 콩나물이 하나로 뭉쳐 있어야 의미가 있다. 콩나물은 현대사회를 사는 한국인의 모습이며, 콩나물을 담는 봉지는 한국 사회로 볼 수도 있다.

“봉지는 묶여져 있습니다. 그 안의 콩나물 중에는 현실에 만족하거나 희망을 포기한 콩나물이 있을 수 있지만 빠져나가고 싶은, 자유를 갈구하는 콩나물도 있겠죠. 떠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현실적으로 떠나기 쉽지 않은 환경 같은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미술과 만드는 것을 좋아한 그녀지만, 지금처럼 유리 작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환경조형학과를 입학하니 전공이 도자와 유리로 나뉘는데 자신은 유리를 선택했고 지금의 길을 걷게 됐다. 유리 작업은 희소성이 있고 발전 가능성도 많지만 재료가 비싼 만큼 우선 작품 가격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국내에는 유리공방을 쉽게 찾을 수 없어 작업에 어려움이 많은 분야다. 그녀는 유리조형 기법 중 1200도 이상의 뜨거운 유리를 긴 파이프에 말아 공기를 불어넣어 성형하는 블로잉(blowing) 기법, 그리고 막대 형태의 유리를 1300도 이상 고온의 불길로 가열해 성형해내는 램프워킹(lamp working) 기법을 주로 사용한다. 봉지와 콩나물은 블로잉 기법으로 실제 크기와 비슷하게 만들어낸다. 그녀는 보통 한번 작업을 시작하면 12시간 정도 몰아서 한다. 그래야 완성도가 높아진다. 많은 집중이 필요한 작업인 만큼 중간에 쉬면 흐름이 깨지기 때문이다. 이번 CNB갤러리에서의 전시는 그녀에게 의미가 크다. 첫 개인전이기도 하지만 방황하던 시간을 마감하고 다시금 작업을 하도록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부담도 컸고 잘해야 된다는 생각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작업을 보여주려 한다.

“그동안 일도 힘들었지만 누구를 위해 작품을 만드나 하는 고민도 많았어요. 석사 졸업 이후 작업을 하지 않았어요. 작업실에도 안 갈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CNB공모전에 당선되면서 다시 한 번 해보자는 초심을 갖고 작업에 임했어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이번 전시가 내 생각을 보여주는 무대라고 생각해요. 이를 경험삼아 나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과연 내가 하고자 하는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까, 완성도는 높을까, 내 작품을 어떻게 볼까 등 많은 기대가 돼요.” 학교에서는 콩나물 작가로 불릴 만큼 작품을 많이 보였지만 외부에 공개한 적은 없었다. 물론 그녀는 콩나물만 만들지는 않는다. 소주병을 이어 붙여 대나무를 만들기도 하고 유리로 케이크를 만드는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많은 공모전에 참가하면서 공모전에 맞는 콘셉트로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콩나물은 그녀가 하고 싶은 개인적인 작업이면서 가장 재밌게 만드는 작품이다. “콩나물이 옹기 속에 담긴 작품을 보면서 즐거움과 정겨운 지난 추억을 떠올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보람을 느꼈어요.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이 좋았죠. 여기에 의미까지 알아간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말이죠. 콩나물은 내가 좋아서 하는 작업이에요. 작품만 봐도 누군지 알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콩나물 작품을 언제까지 만들지 자신도 알 수 없다는 그녀는 사회와 현대인의 모습이 변해가듯 콩나물도 변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문의 02)396~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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