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여권의 최대 과제였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11월 22일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일단 큰 고비는 넘겼다고 판단하고 그동안 미뤄왔던 각종 현안 해결에 속도를 낼 전망으로 전해졌다. 우선 이 대통령은 비준안이 야당의 격렬한 반대 속에 처리된 데 따른 정국의 급격한 경색을 막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과 야권성향 국민의 민심을 달랠 방안을 모색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지난 15일 국회를 방문해 박희태 국회의장을 비롯한 여야 지도부를 만나 직접 제안한 ‘선(先)발효 후(後)재협상 요청시 수용’ 약속을 지키겠다는 점을 비준안 통과 직후 공식 재확인하는 관계장관 회의를 먼저 마련했다. 이는 이 대통령이 비준안 처리에 앞서 야당과 많은 대화 노력을 기울였다는 대목과, 야당과의 약속을 지키는 국가 지도자라는 인상을 부각시키기 위한 제스처로 해석된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한미 FTA 발효 이후 피해 예상 계층을 위한 후속 대책 마련에 만전을 기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이 대통령이 지난 10.26 재보선 이후 약속한 국정 운영의 기조 쇄신과 청와대 조직 및 참모진 인적 개편도 빨라질 가능성이 있어, 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까지 함께할 막판 진용 구축을 위한 ‘장고’에 들어간 뒤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번 청와대 개편은 지난 10·26 재보선 패배에 대한 반성과 함께 한미 FTA 단독처리에 대한 부담 등을 감안해 ‘쇄신’이라는 상징성을 띠어야 하는 데다 이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할 이른바 ‘순장 내각’인 만큼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는 기조로 신중을 기하면서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12월 초에 청와대 개편이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지만 청와대 참모들은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24일 CNB저널과의 통화에서 “어차피 인적·조직 개편은 하기로 한 일이지만 예산안 등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따라서 정기국회가 끝나는 오는 12월 9일에 맞춰 청와대 개편과 총선 출마자 선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류가 감지되지만, 중순이나 월말로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MB, 한미FTA 통과로 국정운영 탄력 받나? 뿐만 아니라 현 참모진이 새해 예산안 처리를 마무리해야 하는 과정에서 한미 FTA 기습 처리로 정국이 급랭하면서 예산안 통과가 법정 시한을 넘길 가능성이 매우 커진 만큼 개편 시기를 다소 늦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와 같은 경색 국면에선 한 박자 쉬어가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재보선 이후 이미 사의를 표명한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백용호 정책실장은 이번 개편을 통해 물러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 대통령실장에는 이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송정호 청계재단 이사장과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등이 유력한 후보군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중앙대 총장을 지낸 박범훈 교육문화수석비서관도 거론된다. 그동안 꾸준히 하마평에 올랐던 박형준 청와대 사회특보는 부산 수영구 출마로 가닥을 잡았다는 후문이다. 임 실장은 대통령실장 사퇴 이후 내년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설에 대해 최근 지인들에게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만일 백 정책실장이 물러난다면 현재의 ‘대통령실장-정책실장’으로 이원화된 조직을 대통령실장 단일 체제로 전환해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정책실장직을 없애는 조직 개편을 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하지만 홍보 기능의 강화도 조직 개편의 주요한 키워드로서, 홍보수석실에 일부 정책홍보 관련 부서를 편입하고 대변인실을 강화하는 동시에 정무수석실 인력을 보강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한미 FTA 비준 이후 한때 검토했던 대국민담화나 기자회견은 전날 긴급 관계장관 회의 때처럼 관련회의 석상이나 내주 비준동의안 서명식 등에서 자연스럽게 한·미 FTA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방식이 낫다는 판단에 따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국정 쇄신과 관련해서는 다음 달 이 대통령이 별도의 입장을 발표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내각의 경우 개각으로 부를 만한 수준의 개편은 검토되지 않고 있으나 현재 공석인 특임장관 자리를 채울지 여부, 그리고 ‘FTA 공신’인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의 이동 여부 등이 주목되고 있다. 여야, 거센 정계개편 후폭풍에 휩싸여 한편 여야는 한미FTA 비준안의 기습처리 과정에서 과거 미디어법 처리, 2010년 말 새해 예산안 처리 때와 같은 거센 몸싸움은 가까스로 피했지만 거세게 충돌함으로써 ‘타협의 묘’를 살리는 정치적 진전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치권 전체에 거센 후폭풍이 몰아치리란 예상이다. 더욱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정 사상 처음으로 최루탄이 터지는 ‘난장판’을 연출했고, 본회의장으로 진입하는 통로의 대형 유리문을 깨뜨리는 폭력상을 재연했다. 비준안이 여당의 주도로 일방 처리되는 과정에서 여야간 고함과 욕설, 삿대질이 오가는 후진적 장면이 고스란히 되풀이돼 ‘폭력 국회’에 대한 정치권의 반성을 스스로 공염불로 만들고 말았다. 특히 여야간 격한 충돌이 예상되자 여당이 일방적으로 본회의를 비공개에 붙인 것은 과거 밀실정치를 연상케 하는 대목으로, 구태 중의 구태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10·26 재보선 후 정치쇄신에 대해 목소리를 드높였던 여야 정치권은 이번 FTA 비준을 계기로 또다시 여론의 야유를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미칠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치권에 대한 비난이 비등해지면서 현 정치지형의 재편 가능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우선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FTA 비준안 강행처리를 ‘의회 폭거’로 맹비난하면서 모든 국회 일정을 중단하고 국회 본회의장에서 항의 농성에 돌입한 가운데 이를 고리로 반(反)여권 캠페인을 총선까지 밀어붙일 기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한미FTA가 국가와 국민의 민생을 위해 반드시 통과돼야 하는 불가피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폭력국회’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야는 당장 코너로 몰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조속히 내년 총선 체제로 전열을 정비하고 민심에 대한 구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당내 온건파의 중재안이 제시된 이후 민주노동당으로부터 FTA 정책연대 파기라는 반발을 샀지만 비준안이 강행처리 되는 바람에 역설적으로 “한나라당과 타협하려 한다”는 민노당의 의심과 비판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고도 볼 수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쇄신론이 다시 분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11월 29일에 열릴 ‘쇄신 연찬회’에서 대토론의 장이 펼쳐지면서 10·26 재보선 이후 입지가 다소 위축된 홍준표 대표가 대대적인 쇄신안으로 반격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쇄신론은 지도부 개편, 당명 개정, ‘물갈이 공천’을 포함한 공천의 원칙과 폭, 새 인물 영입 문제 등으로 가히 전방위적이 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 이 대통령 탈당 얘기까지 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정책 쇄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가 ‘정치 쇄신’으로 행보를 옮겨 여권에 총체적 쇄신을 주도할지도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공천 문제로 세력간·계파간 파워게임이 노골화될 경우 자칫 여권의 대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고 이 경우 파장은 가늠키 어려울 정도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 정가에서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신당설과 함께 여권 내 일부 인사가 이들 신당에 합류하거나, 별도의 신당을 만드는 시나리오까지 거론되는 상황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