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한국화의 기준은 재료나 기법에 있지 않고 한국적인 혼을 그림에 담아낼 수 있느냐의 여부라고 말하는 화가 한진만(63). 그는 산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느낀다. 그는 국내외의 많은 산을 스케치하고 작품화 했지만 그의 마음 속에 살아남아 있는 것은 영산(靈山)이다. 그에게 영산이란 “그리면서 나 스스로가 그 안에 몰입되는 느낌을 받게 되는 산”이며, 그의 가슴 속에는 아직도 금강산, 마이산, 청량산이 살아 있다. 15년 전 그는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마이산과 청량산을 오르며 자신만의 조형성과 표현기법을 화면에 마음껏 쏟아냈다. 금강산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을 그는 “선대 화가들이 가장 즐겨 그린 산 앞에서, 겸재의 금강전도를 사진이 아닌 실제 풍경으로 보면서 그릴 수 있다는 데서 느낀 전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후 그의 작업에는 10년 넘게 우리의 산하가 빼곡히 들어왔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부터 그의 화면에서 금강산, 마이산, 청량산이 없어지고 대신 히말라야와 에베레스트의 산세가 들어온다. 한국 산이 그림에서 사라진 이유를 묻자 그는 우선 허허 웃었다. “없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 산들을 꾸준히 그리며 탐구하던 중 갑자기 내 가슴 속으로 히말라야산맥이 들어왔고,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전했다.
그는 “히말라야의 산들은 신들이 모여 사는 공간으로 보였고, 그 자체가 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산맥의 정상을 감싸는 구름들은 신들의 호흡이 남긴 흔적처럼 보였고, 우주의 숨결을 발견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작품을 바라보니 정말로 산들이 숨쉬는 것처럼 느껴진다. 산들이 큰 원무를 추면서 생명의 호흡을 하고 있다. 이후 그의 산수화 작품에서 흰 부분은 여백이면서 동시에 산의 기운을 표현하는 공간이 된다. 그의 작품에서 산들은 축소된 지구처럼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조성되며, 중심부는 마치 영산이 호흡하는 여백으로서 안개나 강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파도와 바람이 몰아치는 정경으로도 나타난다. “겸재의 금강전도가 눈 앞에 펼쳐진 듯 실물의 금강산을 내 손으로 그릴 때의 전율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 그 때 산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산들의 호흡을 화폭에 담아온 그는 그 간의 여정을 돌아보는 자리를 12월 7~13일 갤러리 그림손에 마련한다. “쉬어가는 자리이니 그렇게 눈여겨보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그에게 진정한 한국화란 무엇인지를 물어 보았다.
“과거의 산수화가 대개 진부하고 실제로 싫증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진 분은 제 그림 세계를 지켜보면서 전통의 산수 작업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내가 추구하는 자연은 순수함과 밀착돼 있으며, 그림은 현실에 대한 순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내 리얼리즘 정신”이라고 말했다. 한진만의 그림에서는 새로운 기법으로 다양한 접근을 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주제보다 표현법에 주력하며, 오직 산수화만을 고집하며 독특한 화법을 구사한다. 그의 산수화는 주관적인 것으로서, 형태와 선 모두가 본질에서 나오는 순수함을 담고 있다. 그는 화면에 조형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대담한 설정을 가하며, 여백은 무한한 힘을 갖는다. 그는 자연을 관념적으로 이상화하려는 전통적인 동양 산수화의 개념을 벗어나 마음으로 느끼는 산을 표현한다. 황토 흙을 그림에 직접 사용하는 점에서 전통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화법의 시도에도 과감하다. 오직 산수화만 고집해온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이나 필법을 이번 전시회를 통해 보여준다. 전통 회화가 외면되는 오늘날 자연에 집중하며 우리 것을 오늘의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한 화백의 작업에서 한국화의 또 다른 이정표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