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그랜저 HG의 배기가스(일산화탄소) 실내 유입 문제가 회사 측의 무상수리 결정으로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이를 둘러싼 잡음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가 그랜저를 포함한 국내 출시 차량 17종에 대해 결함 조사를 진행한 결과, 대부분의 차량에서 배기가스가 실내로 유입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 그랜저 HG, 사람 죽이는 ‘무서운 차’? 그랜저 HG의 배기가스 실내 유입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시점은 10월경이다. 8월부터 그랜저 HG 차량에서 일산화탄소를 포함한 배기가스가 실내로 유입된다는 지적이 인터넷 동호회를 중심으로 제기된 후 언론 등을 통해 이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특히 10월 초를 기점으로 국토해양부 산하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 “그랜저 HG 차량 내부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그랜저를 몰 때마다 어지러움, 구토 증세가 있는 걸로 봐서 차내에 매연가스가 들어오는 것 같다”는 내용의 결함 신고를 연달아 접수받았다. 11월21일까지 이 같은 문제로 접수된 결함 신고는 공개된 것만 100여 건이 넘는다. 그랜저 HG 차량을 이용하는 최 모 씨는 결함 신고 글을 통해 “차를 출고 받고 냄새가 심하게 났지만, 처음엔 새 차의 실내 가죽 냄새인 줄 알았다”며 “(나중에 보니) 대시보드 앞쪽, 윈도우 버튼 등 여러 구멍에서 엔진룸의 바람이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머리도 많이 어지럽고 가래가 엄청 심하게 났다. 숨을 쉬면 폐가 따끔거리는 느낌이다”라며 “집에 돌이 안 된 아기도 있어서 피치 못할 상황이 되면 아기를 태우는데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무섭다”고 덧붙였다. 현대차 측은 이 같은 소비자들의 불만 사항을 파악한 뒤 10월부터 환기장치 부품을 개선해 출고하기로 했다. 아울러 개선 전의 차량에 대해서도 AS센터를 통해 부품을 교체해줬다. 그러나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부품을 바꾼 뒤에도 여전히 배기가스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정 모 씨는 “(그랜저 HG) 배기구의 구조 자체가 짧고 범퍼 연결 부위 사이에 틈이 있어 실내에 유입되는 배기가스를 차단하기 힘들다”며 “현대자동차는 개선된 부품 하나 갈아주면서 모든 게 해결된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차체의 구조적 결함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신고 글을 자동차성능연구소에 남겼다. 회사 측이 직접 나서 개선 시연회 진행했지만 이에 현대차는 11월4일 신형 그랜저 HG의 배기가스 유입 문제와 관련된 기능 개선 작업 및 시연회를 개최했다. 이날 시연회는 경기도 시흥의 서비스센터에서 4개의 주요 그랜저 HG 인터넷 동호회 운영자 8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회사 측이 직접 소비자들 앞에 나서 문제 개선 여부를 확인하고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마련된 행사였다. 시연회에 참여한 그랜저 HG 동호회 운영진의 후기에 따르면 실험은 ▲배기부 기능 개선 작업을 하지 않았을 때와 ▲개선 작업을 거쳤을 때의 일산화탄소 수치를 비교하는 방식이었다. 대상 차량은 그랜저 HG 2.4 GSL, 그랜저 HG 3.0 GSL, 그랜저 HG 3.3 GSL 등 3개 차종이었고, 테스트 코스는 서비스센터 주변의 왕복 16km 차도였다. 실험 결과 개선 작업을 하기 전의 차량은 고속 주행할수록 배기가스 실내 유입이 현저히 많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시속 160km를 기점으로 일산화탄소 유입 수치가 급등했다. 배기량이 가장 작은 2.4 모델의 경우 시속 160km에서 23.3ppm까지 일산화탄소 수치가 치솟았으며, 선루프 조작에 따라 시속 180km일 때 34.2ppm까지 높아졌다. 실내 일산화탄소 허용기준치가 고작 10ppm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개선 조치된 차량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의 실험이 진행됐다. 개선 작업은 그간 서비스센터에서 해왔던 것처럼 익스트랙터 그릴 부품을 교체한 뒤, 추가적으로 실리콘과 테이프를 이용해 주변 구멍을 막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2.4모델의 이산화탄소 수치는 모든 속도에서 2.1~2.3ppm 수준으로 떨어졌다(선루프를 틸팅한 경우를 포함). “무상수리 공지 제대로 안 이뤄져” 불만 이처럼 회사 측이 시연회를 거치면서 “배기부 개선 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은 끊이지 않았다. 먼저 회사 측의 공지가 미흡해 소비자들이 배기가스 유입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는 지적이다. 일부 소비자들은 회사 측의 조치를 받은 후에도 배기가스가 실내로 유입된다며 리콜을 주장했다. 홍 모 씨는 11월16일 자동차성능연구소에 “이런 불량을 공개적으로 알리지 않고 나름 대책이랍시고 세워놓은 땜빵질도 소비자가 직접 전화해서 받을 수 있게 하는 방식은 굉장히 구시대적”이라며 “더 큰 문제가 발생되지 않도록 현대차의 공식 답변과 함께 불량 차에 대한 리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개선 전 차량을 보유한 고객들에게 일일이 공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본사는 각 서비스센터에 점검 지침까지 전달한 상태”라고 말했다. 개선 작업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문제를 제기하는 소비자에 대해 현대차 측은 “4일 실험 자료에 의하면 충분한 개선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자체적으로 진행한 테스트가 아니라 공인 기관과 함께 한 실험이기 때문에 신뢰성 있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자동차성능연구소 “다른 차량서도 배기가스 유입”…유해성 판단 후 결함 여부 확정 11월24일 자동차성능연구소는 그랜저의 배기가스 실내유입 문제와 관련된 제작결함 조사를 중간 발표했다. 연구소는 조사 결과 그랜저 HG(2.4 GSL, 3.0 GSL, 3.3 GSL)에서 주행 중 일산화탄소가 12.6~36.7ppm 검출됐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국내 판매 중인 차량 대부분에서 주행 중 차내 일산화탄소 유입이 확인됐다. 조사에 따르면 그랜저 이외에도 국내에 출고된 3년 이내의 차량 가운데 국산차 13종, 수입차 5종을 무작위로 선정해 실험한 결과 대부분의 차량 실내에 일산화탄소가 유입됐다. 환경부의 실내 기준치인 10ppm을 넘어서는 차량은 국산차 가운데 K5 2.0 GSL(21.0ppm), K7 3.0 LPG(17.9ppm), SM3 1.6 GSL(15.9ppm) 등이고, 수입차 중에는 미쯔비시 이클립스(70.7ppm), 벤츠 E350 GSL(25.4ppm) 등이다. SM5 GLS에서는 일산화탄소가 검출되지 않았고, 수입차 중 아우디 A6 3.0T GSL은 1.0ppm으로 검출량이 낮았다. 이번 조사는 자동차 실내 공기조절장치 스위치를 외부공기가 유입되지 않는 내부순환상태로 놓고 시속 100~140km 속도로 약 30분 동안 급가속과 급감속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실내 공기조절장치 스위치를 바깥 공기가 유입되는 외부순환 상태로 설정한 경우에는 일산화탄소가 거의 검출되지 않았다. 또 주행속도 80km 이하의 환경에서도 일산화탄소 유입이 극히 적었다. 교통안전공단은 “향후 의료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자동차 실내에 유입된 일산화탄소의 유해성 여부를 판단한 뒤 12월15일까지 결함 여부를 최종 판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현대자동차는 자동차성능연구소의 중간 발표와 관련, 그랜저에 ‘속도감응형 공기 자동순환 제어장치’를 적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속도감응형 공기 자동순환 제어장치’는 내기모드를 선택한 상태에서 자동차 실내외의 압력차이가 크게 발생하는 120km/h 이상부터 작동된다. 운전자가 외기모드로 전환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실내외 공기 압력차를 줄여줘, 배기가스의 실내 유입을 차단하는 원리다. 현대차는 이 장치를 그랜저 차량에 적용하고 시속 200km/h로 10분간 주행했을 때 일산화탄소 유입량이 0.6ppm이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