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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규 “옹기는 과거형이라고요? 집안 그릇을 보세요”

전통 방식 고집하며 만드는‘현대 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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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53호(송년) 김대희⁄ 2011.12.19 11:13:27

편리한 플라스틱 그릇과 김치 냉장고 등의 보급으로 전통 옹기는 이제 거의 역사적 유물 정도로 생각되기 쉽다. 이런 가운데서도 고집스레 전통 방식으로 옹기를 구우며 전시회까지 여는 작가가 있다. 옹기는 질그릇(진흙만으로 반죽해 구운 후 잿물을 입히지 않아 윤기가 없는 그릇)과 오지그릇(질그릇에 잿물을 입힌 뒤 구워 윤이 나고 단단한 그릇)을 총칭하는 말이다. 작은 종지에서부터 큰 항아리까지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옹기는 과거 한국인의 생활필수품 중 하나였다. 옹기는 만드는 과정에서 작은 숨구멍을 품고 있는데, 그 구멍으로 공기가 드나들기 때문에 곡식이나 장류를 신선하게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기계로 만드는 산업 도자기들이 만연한 가운데 전통 방식으로 제작되는 옹기가 설 자리는 계속 좁아지고 있다. 하지만 옹기장이 허진규는 무모하리만큼 비생산적인 전통 방식을 고집하며 자신만의 옹기를 오늘도 만들어내고 있다. 자부심과 노력, 열정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작업이다. 그의 옹기 전시회가 12월 12일 시작됐다. 울산 무형문화재 4호로서 지난 30년간 옹기쟁이 외길을 걸어온 허 작가가 선보이는 옹기들은 만드는 방식은 옛날 그대로지만 모양도 옛날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현대적인 생활방식과 쓰임새에 맞게 다양한 형태와 크기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전시회에는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그만의 노력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회가 열리는 우리그릇려와 얼갤러리의 박은숙 대표는 “전통 제작방식에 현대적 디자인을 고집하는 우리그릇려의 철학과, 허진규 선생의 전통 옹기 제작 방식이 맞아떨어졌다”며 “그와 함께 한 세월이 벌써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박 대표는 “이번 전시의 오프닝 행사에는 곧 없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전통 목물레 위에서 옹기를 만드는 모습을 허 선생이 직접 시연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허진규의 옹기 전시회는 12월 12일부터 서울 신사동 우리그릇려와 얼갤러리에서 동시에 열린다. 얼갤러리 전시는 12월 31일까지, 우리그릇려 전시는 2012년 1월 21일까지 계속된다.

뚝딱 만드는 것 같지만 어느새 50분이 30년간 옹기쟁이 외길 걷는 울산 무형문화재 4호 “전통 옹기를 현대에 맞춰 만들면서 동시대인들에게 다가가려고 합니다. 옹기 시장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만드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죠. 앞으로도 끝까지 전통옹기를 계승해 널리 보급하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그는 전통 목물레 위에서 옹기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빙빙 돌아가는 판 위에서 ‘순식간에’ 옹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시계를 보니 벌써 50여 분이 지나간 뒤였다. 긴 작업이 짧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보는 이를 집중시키기 때문이리라. 허 작가의 이마 땀에서 작업의 고됨을 볼 수 있었다. 울산 무형문화재 4호이자 울산 옹기골도예 대표인 허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옹기를 보며 자랐다. 14살 때부터 옹기 만드는 법을 배워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당시 주변에는 옹기를 배우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너무 힘든 일이기에 누구도 배우려하지 않았고 아무도 시키려 하지 않았어요. 저는 가업으로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요. 제가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죠.”

그는 옹기에 대해 “자연을 빌려오는 일”이라고 말했다. 흙으로 만들어지는 옹기에는 인간의 기술이 추가되지만, 불이라는 자연의 원초적 힘이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다. 그에게 옹기는 없어서는 안 되는 그릇이다.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등 우리 고유의 발효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가정집에는 아무리 적어도 1~2점은 옹기가 있을 거예요. 우리 문화와 떨어질 수 없는 대상이죠. 옹기라면 흔히 항아리를 연상하지만 사실 밥그릇 등 식기류에 쓰이는 옹기가 가장 많아요. 식기 문화에 있어서 대세는 옹기입니다. 기계로 만드는 식기는 대량생산되므로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반대로 전통 옹기는 대부분 주문 제작이에요. 사회의 양극화는 나쁘지만 옹기에선 이런 양극화가 어떤 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옹기는 작품성과 실용성으로 평가된다. 허 작가는 “전통 고수도 중요하지만 전통 옹기를 현대에 맞추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대성을 갖춰야 전통 옹기를 더 널리 보급하고 옹기 전통을 지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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