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3호(송년) 왕진오⁄ 2011.12.20 09:01:23
‘롯데’라고 하면 건조한 유통 대기업이 연상될 뿐, ‘문화에 앞서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는 미약한 편이다. 그러나 미술계에서 보면 롯데그룹은 삼성-신세계 등 이른바 ‘범삼성가’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나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우선 전국의 롯데백화점이 보유한 미술 전시공간만 현재 10군데로 내년엔 13군데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갤러리 규모는 사립 미술관 중에서는 국내 최대라고 할 삼성미술관 리움에 거의 육박하는 수준이다. 롯데백화점에 미술 갤러리가 생긴 것은 1979년 서울 본점을 시작으로 현재 영등포점, 청량리점, 일산점, 안양점, 부산본점, 광복점, 대전점, 광주점, 파주아울렛점 등 현재 10곳이며 내년에는 잠실점, 노원점 등 3곳에 새롭게 갤러리가 오픈될 예정이다. 이처럼 전국에 형성된 롯데 갤러리 규모와 그 운영인원은 상당한 수준이지만 일부 화랑 전문가들은 “중앙 사령탑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삼성 관련 미술관들에 비교한다면 롯데 갤러리들은 중앙 통제기구 없이 각개격파 식으로 운영되는 것 아니냐”는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신세계백화점이 별도의 미술관 팀을 운영하는 데 비해 롯데백화점은 이런 팀 없이 마케팅 부문 산하의 문화 사업팀이 갤러리 관련 사업을 각 지점별로 운영한다는 데서도 차이는 드러난다. 백화점 고객의 요구에 응하면서 문화-미술에 대한 관심 키워. 공개적인 미술품 구입보다는 조용한 구매, 인테리어 차원의 렌트-구입에 치중하는 편 롯데백화점의 이런 입장 탓인지 백화점 관계자는 "전문 미술관으로서의 확장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지만 현재로서 특별한 계획이 없다. 고객 서비스 차원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고객의 요구 수준이 높아져 기존의 백화점 서비스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 문화인 것 같다. 내방 고객들이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아직 미술품을 판매하지는 않는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영역이지만 좀 더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소장품 측면에서도 롯데와 삼성은 크게 대비된다. 신세계가 600여억 원 상당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롯데 갤러리들 중 주목받는 작품을 가지고 있는 곳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격호 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 미술품에 관심이 많아 개인적으로 구매를 하고는 있지만 수십~수백억 원대의 작품 구매는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례로 작년에 신영자 사장이 자신의 호텔에서 개최된 전시회에서 8000만 원 상당의 한국 작가 대형작품을 개인적으로 구매한 것과, 올해 5월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새 집무실을 꾸미면서 추정가 5억 원대의 미술품 12점을 구입한 것을 두고 화랑가 일각에서는 “롯데백화점의 갤러리 숫자를 늘리는 것과 관련있는 것 아니냐”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 5월 신동빈 회장실을 꾸밀 당시의 고가 그림을 구입한 과정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사례를 보더라도 롯데그룹의 미술품 구입이 얼마나 폐쇄적으로 진행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당시 롯데 측은 복수의 미술품 거래 업체에 작품이 놓일 공간의 조감도와 평면도를 제공한 뒤 여러 작품을 제안 받았고 그 중 일부를 선택했다. 작품성보다는 가격에 맞추는 경향도 신세계와 차이를 보이는 점이다. 당시 부회장 집무실에 넣을 그림 구입을 담당하는 부서는 갤러리를 담당하는 문화 사업팀이 아니라 인테리어 관련 부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미술품 구매가 아니라 단순히 인테리어 물품으로 구입했다고 할 만하다. 이를 두고 화랑가에서는 신세계의 미술품 거래는 일정 부문 공개된 반면 롯데의 경우는 소리 없이 구매를 하며 알려지는 것조차 쉬쉬하는 모양새라고 입을 모은다. 복수의 화랑가 관계자들은 “신세계백화점 측이 정기적으로 그림 구입을 하는 한편, 롯데 측은 횟수는 적지만 그림 구입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초고가 그림을 구입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큰손 대접을 받고 있다. 구입하기보다는 인테리어 차원에서 렌트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특징”이라고 전했다.
아트마케팅에서도 신세계와 티격태격 롯데 ‘키스 해링 전’ vs 신세계 ‘제프 쿤스 전’ 한판대결 아트 마케팅에서도 롯데와 신세계는 경쟁 관계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창립 80주년을 맞아 물경 300억 원대의 해외 유명작가 작품을 들여왔으며, 그 작품을 전시하고 관련 이벤트를 벌여 매출 증대를 이루는 아트 마케팅 성공 사례를 기록했다. 반면 롯데백화점은 한국 작가의 작품을 활용해 쇼핑백과 증정품을 만드는 수준에 그친 편이다. 롯데는 지난 2005년 3월 명품관 애비뉴엘을 개관하면서 일본의 대표적 원로작가 세이지 후로시로 초청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쇼핑백과 광고 이미지 등에 세이지의 작품을 적극 활용하는 아트 마케팅이 화제를 모았다. 롯데의 최근 아트 마케팅 사례로는 2010년 하반기 작가 키스 해링과 아토마우스로 이름을 알린 이동기의 작품을 VVIP 고객을 위한 사은품, 쇼핑백 등에 활용한 바 있다. 2011년 5월에는 사랑의 달, 선물의 달 마케팅의 일환으로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의 대규모 전시를 열어 아트마케팅을 펼치려 했지만 경쟁사인 신세계가 미국 작가 제프 쿤스의 무려 300억 원대 조각품을 사들이는 마케팅에 밀려 빛을 발하지 못했다. 신세계 측이 외부에 적극 알리는 아트 마케팅을 펼치고 있지만 자존심 강한 롯데 측은 외부에 알리는 활동보다는 오너 중심으로 그림을 구입하고 국내 작가 중심의 아트 마케팅을 전개해 대조를 이룬다. 지속적 아트 마케팅 펼치고 있지만 해외 작품에 대한 대규모 투자 등에서는 두 업체가 큰 차이 롯데그룹은 재계 서열 5위의 거대 기업으로 국내 유통산업에서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롯데백화점은 ‘문화백화점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취지 아래 1979년 서울 본점에 다양한 전시를 진행하기 위한 갤러리를 오픈했다. 고객 서비스의 확장 수단으로서 미술이 활용된 사례이며, 미술 문화를 발전시키겠다는 취지는 미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트 마케팅을 통해 고객의 감수성에 부응함으로써 매출과 이미지를 높인다는 전략은 최근 여러 기업에서 추구하고 있다. 백화점의 주요 고객들에게 상품이 아닌 문화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기업 측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고 하지만, 미술 관계자들은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문제가 많다”는 입장을 일부 피력한다. 경쟁적으로 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아트 마케팅이라며 사들이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도 미술을 예술로서가 아니라 판매 수단의 하나로 전략시키는 측면도 없지 않다는 불만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나치게 해외 작가에만 자본이 투자되고 국내 작가는 뒤로 젖혀진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미술부터 음악까지 문화활동 지원 전국의 문화홀-문화센터 통해 ‘포지션 후원’ 롯데백화점은 갤러리를 통한 미술 전시와 함께 백화점 산하 문화센터를 통해 여러 문화 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것도 특징이다. 2010년 6월 개최된 ‘문화재청과 함께하는 전통공예 미래 전’은 애비뉴엘 전층과 본점 갤러리를 활용해 진행된 대규모 전시회였다. 무형문화재 전수자들이 직접 소비 시장에 참여해 자생력을 키우자는 문화재청의 정책에 따른 행사로, 중요 무형문화재 전승자 98명이 참여했다. 롯데백화점과 문화재청은 ‘한문화 한 지킴이 협약’을 체결한 상태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1979년 이래 31년간 환경을 주제로 한 미술대회를 개최해 청소년 및 어린이 미술대회 중 하나로 입지를 굳혔다. 롯데 측 관계자는 “미술에 소질이 있는 어린이를 조기 발굴하고, 전공 학생들에게는 지속적인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국 규모의 대형 행사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백화점을 개설하면서 롯데는 부산 최초의 뮤지컬 전용극장인 ‘부산 MBC 아트홀’을 설립해 문화 후원 사업을 시작했다. 이 극장에 롯데백화점은 지난 5년간 지속적으로 후원하면서 홍보 프로그램 공동기획 등 다양한 지원을 했다. 백화점 고객을 위한 광고매체(직접우편 또는 신문 전단지) 등을 활용해 공연 내용을 지역 사회에 적극 알렸다. 또한 주요 교통수단인 도시철도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시작한 ‘시가 있는 도시철도 운영지원’ 사업을 벌여, 부산 도시철도 모든 역의 스크린 도어, 안전 펜스, 벽면 등 약 2000 곳에 시 관련 게시물을 제공하기도 했다. 하루 평균 75만 명에 달하는 부산 도시철도 이용객에게 문학의 여유를 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림 사고파는 활동은 아직 하지 않지만 서울시립교향악단미술 지원 등으로 활동 넓혀 롯데백화점은 현재 청량리점, 일산점, 광복점, 영등포점, 중동점 5곳에 문화홀을 운영 중이다. 고품격 문화서비스 공간을 지향하는 이들 문화홀에서는 클래식음악, 뮤지컬, 연극, 댄스, 발레, 강연 등 공연이 펼쳐진다. 2010년 연간 공연 실적은 180여 차례에 달했다. 이런 공간을 이용해 동대문구 청소년 작품발표회, 부산 청소년 문화축제 등 지역 행사를 지원하기도 했다. 문화홀보다 규모는 작지만 전국 29개점에 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1998년 잠실점의 문화센터 오픈을 시작으로 연간 80만여 명이 각종 강좌를 수강하거나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또한 새로운 형태의 ‘포지션 후원’을 국내에서 처음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롯데백화점의 포지션 후원의 첫 수혜자는 서울시립교향악단으로, 미술 뿐 아니라 음악 쪽으로 지원을 확대하고 있기도 하다. 롯데백화점 마케팅부문장 정승인 상무는 “앞으로도 문화단체에 대한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후원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문화 백화점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