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욕구)은 끝이 없다고 한다. 하나를 이루면 또 그 이상을 바란다. 그래서인지 욕망은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강하다. 욕망이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이다. 많은 작가들이 인간의 욕망을 그린다. 욕망이 무한한 만큼 작업도 무한히 나올 수 있는 이유다. 욕망을 주제로 하더라도 작가마다 표현방식은 매우 다르다. 장흥1아뜰리에 작업실에서 만난 강세경 작가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의 욕망을 고풍스런 옛차로 표현한다. 배경의 거리는 흑백이다. 그 단색의 거리에서 화려한 고전 명차가 쑥 하고 튀어나온다. 미처 다 튀어나오지 못한 듯 차의 앞 부분은 풀 컬러지만 맨 뒤쪽은 아직도 단색에 몸을 담구고 있다. 확실한 색의 대비다. “요즘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게 뭘까요? 집이 첫째고 그 다음엔 자동차 아닌가요? 클래식한 고전 명차는 긍정적으로 보면 꿈이지만 부정적으로는 욕망이라고 볼 수 있지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오래 전 자동차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표현해 봤어요. 배경은 현실이지만 흑백으로 표현해 감정이 들어가지 않음을 나타냈고, 자동차는 비현실이지만 색을 넣어 현실인 것처럼 꾸몄어요. 욕망이나 꿈이 정해진 틀을 뚫고 나가려 애쓰는 현실을 표현했습니다.” 다채로운 현실 공간을 별 볼일 없는 흑백으로 인식하면서, 욕망의 대상에만 짙은 색깔을 덧칠하는 요즘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그녀의 작품에는 액자가 그려져 있다. 굳이 액자를 그려 넣은 이유는 갇힌 욕망이 현실을 뚫고 나오려 애쓰는 의미를 더욱 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란다. “잿빛 거리를 뚫고 나오는 화려한 옛 자동차들…욕망에 몸을 맡긴 한국인은 현실을 재미없는 단색으로 파악하고, 가망없는 욕망을 좇느라 정신이 없죠” 실제 거리를 사진으로 촬영한 뒤 배경 그림으로 활용하는 강 작가는 처음부터 자동차를 그리지 않았다. 홍대 주변에 살았던 탓에 흑백으로 홍대 거리 풍경을 주로 그리며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 즉,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출발해 오던 중 어느 날 거리를 ‘무식하게’ 달리는 덤프트럭이 그녀를 놀래켰다. “평소대로 거리 사진을 찍던 날이었어요. 삼각대를 세워놓고 거리 사진을 찍는데 좁은 골목에 갑자기 파란 덤프트럭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거예요. 그때 카메라 프레임 속으로 그걸 바라보면서 정말 큰 무언가가 덮치듯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거리에 덤프트럭을 그려 넣었죠. 그러다가 더 멋있는 자동차를 그려 보자 했고 지금은 고전 명차를 그려 넣고 있어요.”
그녀 그림 속의 자동차는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고풍스런 자태의 고전 명차들이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자동차들은 흑백 배경과 확연히 구분된다. 화려한 색에 반짝이는 광택이 입혀져 금방이라도 달려 나올 듯한 기세다. 현실에서 사라진 자동차를 그리기 위해 그녀는 자동차 박물관을 찾거나 인터넷 검색으로 이들 차 모델들을 찾아다닌다. 현실 속의 고전 명차에 그녀의 생각이 더해져 새로 탄생하는 자동차 모양도 있다. 고전 명차만 있는 게 아니라 현대에도 명차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그녀의 답변은 간단했다.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해 안달을 내는 한국인의 요즘 마음을 표현하기엔 손 안에 넣을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고전 명차가 더욱 어울린다는 얘기였다. 앞으로 현대의 명차를 그릴 수도 있겠지만 당분간은 액자 속에 담긴 옛차들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최근 작품에는 물, 구름 등이 추가됐다. 거리, 건물, 자동차, 액자 등은 모두 인간이 만든 물건들이다. 여기에 물, 구름 같은 자연을 넣어 가지려는 인간의 욕망을 더 부각시키고 더 비현실적인 공간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섬세하게 그리는 세밀화인 만큼 작품 제작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그녀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주제나 의도가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제 작품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재밌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간의 욕망에 끝이 없듯 강 작가의 주제 또한 소재가 바뀌더라도 계속 이어지며 발전할 요소들이 많다. 비현실의 자동차가 현실을 밟고 다가오는 그녀의 작품들은 서울 평창동 가나컨템포러리에서 12월 15~29일 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