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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문화 산책]패션, 최고의 외교관

미셸 오바마·다이애나에게 배우는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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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53호(송년) 박현준⁄ 2011.12.19 11:22:32

2011년 10월,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미국을 방문해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고 거수경례를 한 데에 대한 미국 의회와 언론, 국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 어느 때에도 보기 어려웠던 광경을 볼 수 있어서 참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더욱 좋았던 것은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가 만찬장에서 입은 보라색 드레스였다. 그동안 언론에서는 미셸 오바마가 마치 미국의 대표 모델이나 되는 것처럼 패션 감각을 높이 사왔지만, 나는 솔직히 동의하기 어려웠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부인인 카를라 브루니나 영국 왕세자비인 케이트 미들턴 같은 경우에는 나도 동의했지만, 어쩐지 미셸 오바마의 경우에는 그녀가 미국 대통령 부인이 아니었다면 칭찬받을 수 있었을까 싶었다. 미국 대통령 부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칭찬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입은 보라색 드레스는 사실 그녀의 결점을 너무나 잘 보완해주는 스타일이었다. 운동으로 단련된 상반신의 건강미가 잘 드러나면서도 흑인 특유의 풍만한 하체의 단점이 툭 떨어지는 드레스 잔주름(드레이퍼리)에 감춰져 정말 우아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보색인 초록색 비드 벨트를 해서 비비드 룩이 대세인 트렌드도 멋지게 소화해내 ‘이 옷, 금방 새로 만든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2009년 1월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입었던 영부인의 의상 역시 한동안 언론에 회자되었지만, 그 의상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던 나는 이번 만찬 드레스만큼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번에 미셸 오바마의 드레스를 만든 디자이너는 두리 정. 지난 2004년 ‘보그(Vogue)’가 선정한 유망디자이너 10인에 꼽혔고, 2005년에는 미국 뉴스위크로부터 '2006년에 주목할 인물'(패션 부문)에 선정됐으며, 2006년에는 미국패션협회 신인 디자이너 상을 받을 정도로 각광받는 한국 디자이너다. 그런 디자이너의 옷을 미국 대통령 부인이 한국 대통령 내외를 맞이하는 만찬 드레스로 선택했다는 사실이 감동스러웠다. 나는 이번 대통령의 방미 기간 동안 미국이 보여준 그 어떤 성의보다도 영부인의 디자이너 선택이 가장 탁월한 외교였다고 평가한다. 지금으로부터 한 20년 전이나 되었을까, 나는 한 서점에서 다이애나비의 사진집 ‘다이애나에게 옷 입히기(Dressing Diana)’라는 책을 구입한 적이 있었다. 공식 석상에서 찍은 그녀의 사진을 소개하고 그 옷의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소품은 어느 브랜드 것인지를 알려주는 책이었다. 문득 그녀의 사치 행각이 몇 번 언론을 장식했던 기억이 났지만, 나는 그 사진집을 보고 다이애나비가 정말 패션으로 외교를 한몫 단단히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책에서도 역시 다이애나비를 ‘우아한 스타일(패션) 대사(An Elegant Ambassador of Style)’라고 명명했다.

그 사진집을 통해 한 나라의 중요 여성의 패션이 얼마나 많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얼마나 중요한 외교관의 역할을 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국내외의 영국 군대를 방문할 때에는 제복 색과 분위기에 맞는 옷을 입었다. 군인들은 비록 왕세자비가 군복은 입을 수는 없었지만, 군복을 입고 온 듯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슬람 사원을 방문할 때는 시폰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 마치 모슬렘 여인들의 히잡과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이집트 유적을 방문할 때에는 사파리 룩의 낙타색 원피스를 입어 이집트 모래밭의 유적지에 서 있는 모습이 배경과 같은 톤으로 그림같이 잘 어울렸다. 고 다이애나 비가 일본을 찾아 흰 바탕에 빨간 도트 무늬가 있는 드레스를 입었을 때 일본인들은 얼마나 열광했을까. 다이애나비의 패션 중 백미는 일본 방문 중의 사진이었다. 일본 국빈 방문에 다이애나비는 흰색바탕에 빨강 도트 무늬가 있는 원피스를 입었다. 바로 일장기의 도안이었다. 그 차림 위로 일본 측에서 마련한 화려한 기모노 가운을 입는 사진도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열광했을까. 보지 않아도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

그 책에는 1992년 한국 방문 때 입었다는 초록색 투피스 차림의 사진도 있었다. 하지만 특별히 한국의 대표색이 무엇인지를 연구한 기미는 볼 수 없었다. 그 대조되는 두 컷의 사진만으로도 나는 괜히 심술이 나고 기가 죽기도 했었다. 2009년 국제교류재단에서 주최하는 한·중·일 차세대 포럼에 참석한 적이 있다. 때마침 3국의 정상이 베이징에서 만나게 되어 우리 일정도 그에 맞췄다. 베이징에서 공청단원을 예방하거나 중요한 회의나 행사에 갔을 때 나는 의도적으로 빨간색 옷을 입었다. 국민들이 격식을 차릴 때 빨간색을 입는다 하고, 손님이 빨간색을 입고 오는 것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빨간 옷을 입었다고 설명하니 그들은 더 반색했다. 마침 베이징 공사 참사관으로 있던 사촌언니는 얘기를 듣더니 자신은 중국 고위 관리를 만나는 날에는 빨간색은 물론, 중국 자수가 들어간 옷이나 소품을 꼭 지닌다고 했다. 그러면 상대방이 정말 예의를 다했다고 여겨 극진하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경험을 매번 한다고 말했다. 말로써, 행동으로써, 아니면 어떤 대가를 치르며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노력과 자원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힘도 들게 마련이고. 하지만 이렇게 옷 한 벌, 소품 하나로 상대방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배려했다는 흔적이 보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이는 저렴하게 또한 광속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길 아닌가. 패션은 최고의 외교관이라는 말, 정말 틀리지 않는 말이다. - 조윤선 의원(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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