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랜만에 한가하게 TV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다 사자의 습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사자는 10~20마리가 무리를 지어 살며, 사냥할 때 일부 무리는 사냥감을 추격하고 나머지는 잠복했다가 덤벼드는 합동사냥을 한다. 낮에는 나무그늘에서 쉬고 주로 야간에 사냥한다. 한 무리에 숫사자는 1~2마리이고 나머지는 전부 암사자다. 숫사자의 주요 임무는 사냥이 아니다. 무리의 영역을 확보하고 안전을 지키는 게 수컷의 주임무다. 늙고 힘이 없어진 숫사자는 외부에서 쳐들어오는 젊고 힘찬 숫사자에게 왕좌를 물려주고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노년을 지내게 된다. 사냥 성공률이 낮은 늙은 숫사자는 심지어 하이에나 등에 쫓기면서 자존심을 구기는 노년을 보내다가 마지막에는 자신이 살아온 밀림에서 눈물을 흘리며 생을 마감한다. 숫사자가 왕처럼 행세하지만 실제로 사자 무리는 모계사회라는 게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이다. 이 방송을 보니 며칠 전 지인과 식사를 하기 위해 들렀던 한적한 교외 맛집에서 들은 우스갯소리가 자꾸 클로즈업 됐다. 당시 옆방의 여성들이 유난히 깔깔거리며 웃어 무슨 말인가 들어보니 “집에서 한끼도 안 먹는 남편은 영식씨, 한끼 먹는 남편은 일식씨, 두끼 먹는 남편은 두식이지만, 세끼 먹는 남편은 삼시쉐끼, 세끼 먹고 간식까지 달라는 남편은 간나쉐끼, 세끼 먹고 간식 먹고 야식까지 먹는 남편 종간나쉐끼, 시도 때도 없이 먹는 남편은 십쉐끼, 세끼 먹고 간식 먹고 마누라는 쳐다보지도 않는 남편은 쌍노무쉐끼”라는 소리였다. 그냥 웃어넘기면 그만이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은 내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남자이기 때문일까. 마음 속에 기억된 아버지의 모습은 대개 이렇다. 가족 부양을 위해 무한 책임감에 희생하지만 나이 들고 힘 떨어지고 수입이 줄어들면 무리에서 쫓겨난 숫사자 신세가 되는 식이다. 한국 남자들의 노후 상황은 암울하다. 회사를 다니는 기간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평균수명은 빠른 속도로 길어지고 있다. 막대한 사교육비를 감당하느라 노후를 준비할 기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100세까지 산다는 ‘호모 헌드레드’ 시대는 결코 축복만은 아니다. 길어진 노후가 걱정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막상 준비는 쉽지 않아 막연히 “어떻게 되겠지”라며 실행을 미루는 게 대부분이다. 첫째 건강, 둘째 소일거리, 셋째 돈 이런 딜레마를 깨려면 노후설계를 통해 노후에 필요한 자금 규모를 대략적이나마 파악하고, 제2의 인생을 위한 직업과 취미, 건강관리 등에 대해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건강관리다. 건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소일거리, 즉 일이다. 한국의 아버지 또는 가장들은 새벽바람을 맞으며 일터로 나가는 이유가 대개 일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가족 부양을 위해서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은 가슴속 깊이 묻어두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두 번째 사는 인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은퇴 이후에 할 일은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아 취미 삼아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준비할 것이 있으니 돈 즉 힘이다. 젊고 힘 있을 때 조금씩 아끼고 저축해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도 연금으로 말이다. 은행 예금이나 적금은 노후 준비가 아니다. 살다보면 분명히 급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예금이나 적금은 이때 반드시 지출하게 된다. 그러나 연금, 그것도 종신연금으로 설계를 해놓으면, 일단 연금이 개시된 뒤에는 중도해지가 쉽지 않기 때문에 노후보장 용도가 된다. 이렇게 미리 준비해 놓으면 불쌍한 사람을 만나 베풀 수 있고, 손주를 보면 용돈 한 푼 줄 수 있어 품위를 지킬 수 있다. 다시 말해 노후 품위 유지비 정도는 반드시 자신의 명의로 연금을 가입해 둬야 가족에게 용돈을 타 쓰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젖은 낙엽’ 또는 ‘쌍노무쉐끼’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다. 거창하게 은퇴설계, 노후설계가 아니라도 좋다. 노후를 대비해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그리고 필자는 보험사 직원이 아니다. -이유섭 기업은행 시화공단PB센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