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퇴근. 공식적으로 정해진 시간이지만 정작 오후 6시가 되면 직장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오전 9시 출근은 꼭 지켜야하는 게 분명한데, 6시 퇴근만큼은 확실히 지키면(?) 따가운 시선이 돌아온다. 상사가 떡하니 자리에 버티고 있는데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하고 나갈 배짱이 없다. 여기서 생기는 직장인들의 공통된 궁금증. ‘사장님과 상사들은 왜 퇴근을 안 할까?’ 그나마 최근 할 일을 끝내고 제 시간에 ‘칼퇴근’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일부 늘었다고는 하지만 내가 그 추세에 가담하기에는 뭔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칼퇴근했다가는 사장 또는 상사에게 미움털이 박히니 일을 않더라도 무조건 뭉그적거리며 앉아 있어야 한다는 직장인 생활백서가 있을 정도니 6시 정시 퇴근은 모든 직장인들의 영원한 숙제라고 할만하다. 그런데 ‘6시 퇴근’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만든 배짱 좋은 직장인들이 있다. 뮤지컬 ‘6시 퇴근’은 반복적인 팍팍한 일상에 음악으로 활력을 불어넣고자 밴드를 결성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그린다.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나무와 물’에서 1월 22일까지 공연되는 이 뮤지컬은 이어 대학로 스타시티 2관에서 4월 15일까지 계속 공연될 예정이다. 회사에서 임원이 되느냐 잘리느냐의 갈림길에 선 노 부장, 아이 뒷바라지를 위해 때로는 후배들을 짓밟고 일어서야 하는 싱글맘 직장인 구성미, 상사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딸랑딸랑 애교를 부리기도 하는 사원 윤지석과 안성준, 당차고 능력 있는 여성 직장인인 최다연, 비정규직이라서 늘 고개숙여 지내는 이종기, 정사원이 되기를 꿈꾸는 인턴 고은호 등 직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캐릭터들이 열연을 펼친다. 극중 진동제과 마케팅 부원들은 신제품 홍보 UCC 제작을 위해 밴드를 결성한다. 처음에는 악기 연주와 노래 등 모든 것이 어설펐지만 갈수록 체계를 갖춰가는 이들은 밴드 활동에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직장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이들에게 열정적인 밴드 활동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하지만 느닷없이 닥치는 정리해고 소식에 이들의 갈등은 커져 간다. ‘6시 퇴근’은 실제로 활동하는 직장인 밴드를 모델로 삼았다. 하고는 싶지만 못 하는 게 더 많은 이 시대 직장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옛 꿈과 열정을 끌어내려는 것이 이 공연의 제작 의도다. ‘6시 퇴근’ 기획을 맡은 나온컬쳐 측은 “이 작품을 통해 과중 업무에 시달리고 고용 불안에 허덕이는 직장인들의 생활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을 것”이라며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또한 그 해결을 위한 조직의 건설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목소리를 높여라’ ‘지금 해라’ ‘견우와 직녀’ ‘리틀맘’ 등을 연출한 박종우 진동창작극발전소 대표가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았다. 네바다#51의 오주와 주붐, 둥, 껌과 김수정, 윤계열, 주보비, 탁성준, 최윤실, 유환웅, 배서현, 이성현, 신승억, 차지은 등이 출연한다.
[공연 리뷰]‘직장인 헤드뱅잉’으로 스트레스 확 공포 이기는 밴드공연 신나지만 돌연… 청년 실업 100만 시대에 회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젊은이들이 많다. 하지만 막상 회사에 들어가면 상사와의 관계, 해고에 대한 두려움,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는 쌓이고 새 고민거리가 생긴다. 뮤지컬 ‘막돼먹은 영애씨’와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 등 직장인들의 애환을 그리는 콘텐츠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뮤지컬 ‘6시 퇴근’ 또한 고생 끝에 회사에 입사한 직장인들이 과연 정말 행복한지 그들의 고민에 초점을 맞춘다. 관람 학생들은 극중 진동제과 마케팅 부원들의 모습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이 시대의 20~50대 직장인들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족을 위해, 생계를 위해 절대로 회사에서 잘릴 수 없어 후배의 고충을 외면하는 상사, 자신이 비정규직이라 정사원인 여인에게 청혼할 수 없다는 비정규직, 회사에 이바지한 공로와는 상관없이 정리해고 대상 1순위에 오르는 비정규직과 인턴의 모습은 씁쓸함 그 자체다. 이런 씁쓸함을 이겨내는 게 바로 신나는 밴드 공연이다. ‘6시 퇴근’은 직장인 밴드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음악이 큰 역할을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부터 티아라의 ‘롤리폴리’까지 다양한 노래들이 록 버전으로 재해석돼 마치 콘서트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공연 막바지에 이르면 뮤지컬을 보러온 건지, 아니면 록 콘서트장에 온 건지 헷갈릴 정도다. 끊임없는 앵콜 요청에 배우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몇 번이나 앵콜곡을 부른다. 실제 기존 밴드에 소속된 배우들과 폭발적인 성량을 지닌 배우들이 모여 뛰어난 연주와 노래를 선보인다. 이들의 공연에 매료된 소녀팬들이 곳곳에 보인다. 현실에서 보고 싶지만 절대 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픽션이라고 누가 그랬나? 정리해고 소식에 진동제과 마케팅 부원들은 인턴과 비정규직을 지키기 위해 전원 사표를 제출한다. 바라지만 절대로 현실에서 없을 것 같은 이 장면이 슬픔을 더한다. 공연은 열린 결말을 지향한다. 신나는 밴드 공연을 보다가 갑작스럽게 닥쳐오는 결말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정리해고 대상에 오른 6시 밴드의 비정규직 사원 이종기와 인턴 고은호의 미래에 먹구름이 끼는 듯한 암시를 주는 노 부장의 통화를 끝으로 신나는 밴드 공연이 펼쳐진다. 처음엔 안개가 낀 듯 명확하지 않은 결말이 이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밝은 미래를 상상할 수도 있어 다행이다. 처음에는 직장인들의 고충을 전면적으로 다루지만 후반에선 점점 밴드 공연에 집중하면서 주제가 흐트러지는 것이 아쉽다. 밴드 공연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직장인들의 모습이지만 극이 끝난 뒤엔 내용보다 노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나 할까?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를 배우들과 함께 신나게 헤드뱅잉 하면서 날릴 수 있는 것이 이 공연의 매력이다. 공연을 보는 시간만큼은 상사에게 손가락질도 하고, 험난한 사회에 욕을 실컷 해도 좋다. 마음속에 쌓아두고 밖으로 빼놓지 못했던 말들도 신나게 털어버리자.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고 욕구도 분출한 다음 다시 사회에 돌아올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도 큰 성과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