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8호 최영태⁄ 2012.01.25 15:03:08
‘부러진 화살’은 확 잡아끄는 맛이 있는 영화였다. 대부분의 영화가 중간 어느 지점에서는 졸린 순간도 있는 법인데, 이 영화를 보면서는 그렇지 않았다. 최근 한국의 법조계에 대한 분노가 너무 크기 때문일까? 이 영화가 제기하는 질문들 중 하나는 ‘법으로 법관을 심판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판사가 석궁 공격 또는 위협을 받았을 때, 화살을 쏘았느냐 쏘지 않았느냐 하는 팩트와는 상관없이, 판사를 공격/위협했다는 사실 그 자체로(왜 그런 공격/위협이 일어났는지의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판단하지 않은 채), ‘사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므로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결정을 한국 사법부는 당시 내렸다. 그리고 그런 사전 결정에 따라 재판이 엉터리로 진행됐다는 게 이 영화의 요지다. 이 영화가 현실과 얼마나 부합하는가가 논란이 되는 모양이지만 그런 논란과는 별개로, 영화가 대박 조짐을 보인다는 사실은 최근의 국내 정서의 반영이다.
법은 근본적으로 보수적이지만 법이 지배층에 무조건적으로 복속해서야… 이 영화를 보면서 법은 무언가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김욱 저 ‘마키아벨리즘으로 읽는 한국 헌정사’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그는 이 책에서 ‘법은 마르크스의 관점대로 지배 계급의 의지일 수만은 없다. 지배계급의 의지이면서 동시에 지배 계급의 의지가 아닌 것이다. 이것이 희망이다’라고 썼다. 그의 논지는, 우선 법은 지배자, 있는 자들이 만든다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들어, 횡령을 처벌하는 법을 보자. 회사 돈을 빼돌리는 횡령은 자본가, 사회 지배층, 자본가에게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자본가의 생명이랄 돈을 함부로 빼돌리다니! 엄벌에 처해야 한다. 그래서 횡령을 형사범으로 엄하게 처벌하는 법이 만들어진다. 바로 여기서 ‘법이 희망’이라는 김욱의 논리가 떠오른다. 자본가가 아랫것들을 단속하기 위해서 횡령 법을 만드는 순간, 그 자본가도 횡령 법의 단속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 자본가가, 회장님이 어느 순간 회사 돈을, 주주가 맡긴 돈을 마음대로 빼돌렸다가 걸리면 그 자본가 역시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 만든 엄한 형사법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법치의 정신이다. 또한 이렇게 지킬 건 지킨다는 게 아마도 보수의 정신일 것이다. 보수주의가 때로 굉장히 좋을 수 있는 이유다. 있는 사람이 〃지킬 건 지키자〃고 나서니까. '걸리면 죽는‘ 미국과, 걸려도 되는 한국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국과 미국(많은 한국인들이 전범으로 생각하는)이 갈리는 것 같다. 미국에서도 있는 자들을 법관들이 봐주는 일이 가끔 크게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보도되는) 현상만을 보면, 한국과는 달리 법이 만인에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미국의 직전 대통령 조지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 시설 주 청사에서 차를 몰고 나오면서 과속을 하자 주 경찰이 그를 세우고 부시가 “나 주지산데, 몰라?”라고 아랫사람에게 겁을 주지만, 경찰은 “그건 당신 사정이고 벌금은 내슈”라고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또한 한국적 기준으로 보면 죄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할 수 있는(일부 미국 전문가들은 범죄가 아니라고 했다) ‘엔론 분식 회계’에 대해, 미국 법원은 사장에게 200년이 넘는 '울트라 빅 징역'을 내렸다. 이런 판결은 그냥 “감옥에서 죽어라”는 명령이다. 이런 걸 보면, 아무리 돈이 최고라는 미국이지만 일단 법에 걸리면 그야말로 인정사정없이 법 조문이 적용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 사는 데 가장 중요한 상식은 '절대로 걸리지 말아야 한다'다. 일단 걸리면 인생의 종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횡령 법은 자본가를 위해 만들었지만 자본가가 횡령 법을 어기면 그 역시 처벌받는다 한국에선 이런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조그만 횡령(수백만원 짜리)은 엄벌에 처해지지만 회장님들이 저지르는 큰 횡령(수천억 단위)은 거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 시늉뿐인 처벌을 하더라도 곧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을 참작해’라는 문구와 함께 쉽게 석방된다. 법으로 법관을(또는 법을 만드는 데 배후조종을 한 인물을) 처벌할 수 있는 차원까지 우리가 나아가지 못했다는 결론이다. 나라 운영을 대통령, 국회가 다 하는 것 같지만 이는 평소 사정이고, 나라의 흐름을 가르는 중대한 결정은 사법부가 내리는 경우가 많다. 도저히 합의할 수 없는 사항은 결국 법원으로, 헌법재판소로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법부의 양심과 중립성이 나라의 흐름을 좌우한다. 그러나 한국의 일부 법조 인사들에선 이런 책임감, 즉 “내가 최종 심판관이고, 나를 넘어서면 더 이상 심판할 사람이 없다”는 절박감이랄까, 책임감이랄까가 부족한 것 같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법을 법의 전문가인 법조인에게만 맡기면 안되고, '상식으로 심판한다'는 요소를 강제로 개입시키는 시민참여재판, 배심원제 등이 적극 도입돼야 한다. 상식을 가진 배심원단이 참여했다면 영화 ‘부러진 화살’처럼 법관 마음대로 진행하는 재판은 쉽지 않았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