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이 소요되는 지루한 과정이지만, 겹겹이 얽힌 미세한 감정의 결을 드러내는 대화의 시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서서히 비워내는 심적 상태를, 담을 수도 있고 비울 수도 있는 항아리 이미지를 통해 함축했습니다.” 한지 위에 바느질로 작업하는 김순철 작가는 되새김질을 반복하는 듯한 작업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많은 생각들이 일어난다고 했다. 바느질을 통해 깊은 의식으로 잠행해 들어가는 과정이다. 한 땀 한 땀 이어지는 행위의 흔적들은 일상의 짧고 긴 호흡과 다름없고, 이를 통해 무의식에 감춰지거나 억눌린 상처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김 작가(47)는 “외형적으로 보이는 형태가 아니라 항아리나 그릇에 담긴 실제 마음에 이끌렸고 이런 상태를 상징적 언어로 표현했다”고 자신의 작품을 소개했다. 그래서일까. 작품 하나하나를 보다보면 외부로 뿜어나오는 기운보다는 점점 더 안쪽으로 파고드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쉽게 만들기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을 일부러 찾았다는 작가의 설명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자신이 수놓는 실에 대해서도 김 작가는 “실은 무언가를 연결해 준다. 내면과 외면을 이어주며, 나 자신의 안과 밖을 연결해 주는 것도 같다”고 말했다. 바느질에 대해서도 그는 “느리기 때문에 오래된 경험들과 교감하는 시간이 된다”며 “겹겹이 얽힌 미세한 감정의 결들을 드러내는 대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작가는 마음을 서서히 비워내며 심적 평형에 이르고, 섣불리 풀어내지 못하는 내밀한 속내는 그의 작품에 퍼져 올라가면서 치유(治癒)와 자정(自淨)을 이뤄낸다. 오래된 기억과 만나는 금빛의 꿈들 화면 속에 담긴 도자기의 모노톤에는 어두움이 강하게 드리워져 있다. 같은 톤의 배경을 사용해 주제를 부각시키는 방법이다. 여기에 그녀는 금빛 실을 사용한다. 금은 부귀영화를 상징하지만 김 작가의 금실은 이런 단어적 의미보다는 따듯한 마음의 감성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제 작업의 주제는 주변 환경이 아닌 저 자신입니다. 한 땀 한 땀 작업을 계속하면서 제 안의 깊숙한 곳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저만의 방식이지만 이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고 말했다.
현재 작가가 선보이는 작품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관객과 교류하며 만들어진 결과이기 때문에 한국 문화의 흐름도 감지된다. 일반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그의 작품을 바라보면 그의 작품에서 전혀 색다른 감흥을 받을 수 있다. 작가의 창조적 역량을 확인하면서 작품에 대한 새로운 조망권을 확보하는 기회다. 김 작가는 전통 기법을 매우 색다른 형식으로 현대화했다. 전통 재료인 면실을 시(詩)적인 부드러움을 나타내는 재료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김순철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관훈갤러리, 공화랑, 도올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펼쳤으며, ‘경향신문사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대구아트페어, KIAF, 아트광주, 서울오픈아트페어, 화랑미술제 등의 아트페어와 그룹전 활동을 통해 작품을 알리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미술축제 특별상,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작품 공모 선정, 서울문화재단 지원 작가 선정 등의 경력을 지닌 그의 작품은 삼성생명, 국립원자력병원, 한국마사회, 한국전력 등에 소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