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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 작가 “나도, 저 물질도, 내 그림도 모두 흔적일 뿐”

붓 안 쓰고 흔적만 남기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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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1호 김대희⁄ 2012.02.13 11:16:26

생명이 있든 없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흔적을 남기게 된다. 그 흔적은 때로는 커다랗게 때로는 알 수 없을 정도로 작게 남는다. 관심이 없다면 흔적을 느낄 수 없다.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존재, 필요한 존재 또는 무존재감 등 존재의 흔적을 통해 이야기하는 작가가 있다. “그 동안 이야기 해왔던 주제는 흔적이에요. 다시 말하면 흔적, 공간, 그림자라고 할 수 있죠. 흔적과 그림자는 닮았어요. 모두 사물이 남기는 그림자 같은 거죠. 흔적을 남긴다는 건 존재했다는 의미고, 그림자가 있다는 것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서울 연희동 작업실에서 만난 최철 작가는 물체의 흔적에 관심을 갖고 존재의 의미를 찾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물체가 아니라 그 흔적을 그린다. 아니, 그리는 게 아니라, 흔적을 쫓아간다. 그는 자신의 주제인 흔적으로 오브제(소재)를 말하고, 사람을 표현한다. “우리는 자식을 통해 그 조상을 보잖아요? 자식은 조상이 남긴 흔적 같은 거죠. 그런 면에서 흔적은 다시 태어나려는 욕망도 되죠. 인간은 후손을 통해 자기 존재를 남기고, 물질도 흔적을 통해 자신을 남기죠. 물이 증발돼 사라지는 것 같지만 어디선가는 또 물방울이라는 흔적으로 다시 태어나듯 말이죠. 이런 것들을 찾아보고 생각해보려 해요.”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묘한 기분이 든다. 신비롭다. 평화롭고 고요한 물 속에 있는 듯한 깔끔한 느낌이다. 관람자가 착각하고 놀라는 점은 붓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진 또는 그림처럼 보이는 작품들이지만 모두 에어브러시로 물감을 뿌려서 만든 작품들이다. 뿌리기 또한 여러 번 뿌리지 않고 단 한 번만 뿌린다. 누구나 한 순간에 하나의 흔적만 남길 수 있으므로. 작품 속 오브제는 판화 기법으로 찍어서 만들어 낸다. 쉽게 설명하자면 물체를 놓고 뿌린 뒤 걷어내고 그 걷어낸 자국이 작품의 이야기가 된다는 얘기다. 빛이 비추면 그림자가 생기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가 붓을 쓸 때는 작업 마지막에 사인을 하는 순간뿐이다. 드로잉이 자신과 맞지 않아 뿌리기 작업을 시작했다는 그는 존재감을 나타내는 데 뿌리기 기법이 가장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이런 뿌리기 기법으로 작품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과거 그의 작업은 기계 부품이나 못 쓰는 버린 물품들을 오브제로 주로 사용했다. 그러나 최근 작품에선 애매하면서도 재미있게 보여는 것들로 바꿨으며, 특별히 구분 짓지 않고 작업한다. 바탕도 캔버스에서 켄트지로 바꿨으며, 물이나 붓의 흔적을 주로 다룬다.

“우리 모두는 흔적을 남긴다. 흔적은 그림자 같은 것이지만 또한 다시 태어나려는 욕망이기도 하다” 색감도 일부러 어둡게 해서 묘하고 신비한 느낌을 준다. 공간감으로 입체감을 살려 더 그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붓으로 흔적을 남기는 작업은 붓에 물을 묻혀 찍어낸다. 물감을 적용한 뒤 바로 에어브러시로 뿌려 흔적이 남도록 말린다. 엄밀히 말하면 붓의 흔적은 없다. 붓에서 떨어진 물의 흔적일 뿐이다. 재밌는 점은 색깔에 따라 입체적 볼륨감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사실 알고 보면 물질끼리 만나서 그림이 이뤄지잖아요. 물과 물감이 서로 만나 자기들이 알아서 흔적을 남겨요. 저는 모든 걸 총괄하는 디렉터죠. 마르는 과정에서 조형적 구도를 잡아주고. 그렇다고 형태가 너무 드러나면 읽히기가 쉽기 때문에 애매모호하게 읽히고 보는 사람이 알아서 해석하도록 맡기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바라보면서 차분히 사색에 잠기는 작품인 것 같다고들 그래요.” 쉽고 어려운 것은 상관없고, 재미없으면 작업을 못한다는 그는 평면작업뿐아니라 미디어와 설치 작업도 하고 있다. 회화와 함께 미디어 작업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싶다는 그는 “흔적의 최대 목적은 바로 흔적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작업은 변해가겠지만 그 변화는 작업에서 얻어지는 경험으로 변해갈 뿐 큰 주제는 계속 가져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흔적이나 존재 그리고 삶에 대한 탐구는 계속 이어진다는 얘기다. 재료 및 형태는 바뀔 수 있지만 그가 추구하는 것들에는 변함없음이 강하게 전해진다. 조용히 우리가 지나온 날들의 흔적을 추억하듯 사색의 시간으로 이끄는 최철의 작품은 서울 연희동 CNB갤러리에서 2월 10~24일 개인전으로 전시된다. 문의 02-396-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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