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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가 국민 품에 안기기까지 과정을 안다면 정부가 할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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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1호 왕진오⁄ 2012.02.13 11:12:00

문화예술 특히 미술 분야의 공공성은 이미 경제학에서조차 공공재로 다루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문화예술 특히 미술품은 ‘공공의 것’이 아니라 ‘공공의 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미술품의 ‘교환가치’와 ‘투자가치’에만 집중해서 본 결과다. 하지만 이런 미술품의 속성은 부분일 뿐 전체가 아니다. 우리는 부분을 전체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미술품은 거리의 벤치처럼 공공재다. 누군가가 앉아 있다면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미술품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여기서 거리의 벤치는 공공장소에 놓여 있는 까닭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지만 같은 공공재라도 미술품은 그런 영역에 아직 들어와 있지 못하다. 우리 정부나 자치단체는 여전히 경제가 발전하면 당연히 문화예술도 발전한다는 생각을 철학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민의 당연한 권리인 문화 복지를 제한당하고 있는 셈이다. 미술품은 인류 그리고 국민과 민족의 것 우리가 사유재산으로 치부하는 미술품의 최종 종착지는 공공기관인 미술관이다. 물론 테오필 토레(Theophile Thore) 같은 진보적 계몽주의자들은 미술관을 “미술품의 공동묘지”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미술관이 문화적 자산인 미술품의 수집과 보존에 주력해야 하는 것은 숙명 같은 것이다. 특히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가 지적했듯이 현대의 ‘변화 가속화’ 경향은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자는 욕구를 극대화함으로써 오늘날 미술관 건립을 더욱 활발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미래의 문화유산인 오늘의 미술까지 포함되면서 결국 모든 미술품의 최종 종착지는 미술관이 되었다. 따라서 미술관은 역사 속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은 물론 오늘을 사는 인류 공동체가 향유하는 공간이 됐다. 미술관은 오늘을 읽고 내일을 써나가는 역사의 보관소이다. 우리가 사유재산이라고 생각하는 미술품은 사실 그것이 대한민국 영토 안에 있는 한 ‘우리’의 것이다. 미술품은 그 특성상 비록 개인이 소장하고 있을지라도 우리의 것이라고 인식할 만하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문화재이고 대한민국의 자산이지, 단순히 사유재산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석굴암이나 다보탑, 석가탑이 불국사의 소유 또는 조계종단의 재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이 법적으로 불국사 재산이라 할지라도 임의로 처분하거나 없앨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국민의 소유물인 동시에 인류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술품이나 문화재를 소장한 개인이나 미술관은 사실 일시 점유하고 있을 뿐이다. 제대로 보존• 보관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경비를 감당하면서 말이다. 우리가 자랑해 마지않는 추사의 세한도(歲寒圖, 1844년, 종이에 수묵, 23x69.2cm)가 오늘날까지 흘러온 궤적을 보면 미술품이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추사가 유배 생활을 하던 제주도에 찾아 온 제자 역관 이상적(李尙迪, 1804~1865년)에게 그려준 작품이다. 이후 이상적의 제자 매은 김병선(梅隱 金秉善)과 그의 아들 소매 김준학(小梅 金準學)의 손을 거쳐 하정 민영휘(荷汀 閔泳徽, 1852~1935)와 그의 아들 민규식(閔奎植, 1888~?)의 수장품이 됐다가 이후 어찌된 일인지 베이징의 골동상으로 흘러들어갔다. 이어 일제 강점기 경성대학교 교수이자 추사 연구가인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 1879~1948년)의 눈에 뜨여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서예가 소전 손재형(素筌 孫在馨, 1903~1981년)의 노력으로 고국으로 되돌아왔고 이근태의 손을 거쳐 손세기(孫世基)의 수장 목록에 들어 현재는 아들 손창근이 수장하고 있다. 현 소장가인 손창근은 개인 소장품인 세한도를 각종 국공-사립 박물관의 기획전이나 특별전에 출품해 국민들에게 안복을 누릴 기회를 제공하다 2010년 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함으로서 결국 국민의 품에 안겨주었다. 그는 세한도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를 비롯해 겸재의 북원회수도첩등 문화재를 다수 소장한 대수장가로 몇 년 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미술사 연구기금으로 1억 원을 쾌척한 바 있다. 또한 그의 선친은 약 2천 점의 미술품을 서강대학교에 기증해 서강대학교 박물관의 모태가 됐다.

국보급 작품이 세계를 돌고돌다가 결국 개인 수집가를 거쳐 ‘국민의 소유’가 된 과정을 돌이켜 본다면 정부가 왜 미술관의 ‘소장 기능’을 지원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이처럼 미술품의 최종 종착지는 대부분 미술관이나 박물관이고, 개인은 미술품을 일시 점유하고 있는 셈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미술품의 최종 목적지가 미술관은 아니다. 적어도 시대를 대변하고 당대를 반영하는 충분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야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다. 이렇듯 미술관이 어떤 작품을 소장하느냐 하는 점은, 오늘날 우리의 삶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동시에 미래의 미술 문화를 결정짓는 척도가 된다. 오늘날 한국 미술이 노정하고 있는 문제점인 관객과의 소통이라는 화두가 ‘재미’로 오도되는 현상도 실은 공적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과도하게 민간의 미술시장에 의존하는 시스템에 있다. 결국 우리의 척박한 미술관 문화가 이런 사태를 만든다. 공적인 ‘담론’이 아닌 사적인 ‘농담’은 세상을 천박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 미술관들은 이런 현실을 충분하고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실천할 여력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미술관이라는 공공의 영역 대부분 지탱하는 민간 미술관의 경우 대개가 개인의 노력과 희생을 전제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라 그들에게 더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설립-운영하는 국공립미술관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이런 현상이 만연하게 된 것은 미술관이 제대로 가능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런 점에서 한국 미술관들의 분발, 그리고 정부의 개입과 투자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공공의 지원 특히 국가적인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 미술품의 최종 목적지인 미술관들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작품 소장은 대개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한국 미술은 커다란 잠재능력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의 취미와 기회에 봉사하는, ‘재미’를 추구하는 미술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좀 더 지속된다면 한국 미술 문화의 발전은 고사하고 변변하게 후대에 물려줄 제대로 된 문화유산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한 선조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미래의 한국사에서 우리 시대가 가장 비문화적이었던 시대로 기록될까 두렵기까지 하다. 이런 때문에 미술품을 민간이나 시장에 맡겨 두기만 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미술관을 지원하고 육성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술관은 문화의 기본 인프라다. 하지만 미술관에 대한 지원과 육성은 투자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민간의 열정과 사명감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국가 차원에서 미술의 공공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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