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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선 작가, 거칠지만 따뜻한 남자의 손길

도시인의 현재에서 역사까지 그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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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2호 왕진오⁄ 2012.02.20 11:50:29

서용선(62)의 화면을 가득 채운 풍경과 인물들은 요즘의 화사한 그림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거친 필치에서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따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중진 작가로서 그의 작품에는 밀도 있고 구축적인 평면, 그리고 시각을 향해 덤벼드는 듯한 색채, 도전적일 정도로 거친 질감이 표출된다. 인간 실존의 문제를 특유의 조형 언어로 승화시킨 결과다. 그가 화면에 등장시키는 대상들은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다. 단종, 한국전쟁, 중국 신화 등 인간과 역사에 주목한다. 의식의 저편에서 역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옛 이야기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역사화의 새로운 지평도 열었다. 단종 관련 주제에 대해 서 작가는 “한국 역사에서 단종 사건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 권력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전쟁이나 신화에 대한 내용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이런 생각들의 연장선상”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전쟁에 대한 주제는 “민감한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데 위축된 감성이 지배적인 한국에서 비극적인 한국전쟁에 대한 작가주의 관점에서 그려내고 싶은 그림들”이다. 세상 속으로 들어와 피부로 느낀 감성을 그만의 시각으로 풀어낸 결과물이다. 서 작가는 독일 여행을 하면서 전쟁이란 역사적 짐을 가진 독일인들이 아픈 과거를 예술작품을 통해 후대에 전달하려고 노력을 펼치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에 비한다면 우리는 비슷한 역사의 짐을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시각’으로 이런 짐을 감당해 내려는 노력이 드문 편이니, 자신이 나서서 ‘나만의 지배적 시선’으로 작업을 해나가는 셈이다.

“우리의 지나온 과거와 그 연장으로서의 현재 삶의 공간은 연속돼 있다. 그것은 기억을 통해 연결된다. 우리의 삶과 역사는 기억과 그것의 실천적 활동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역사와 신화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우리와 상관없는 아주 특별한 것으로 여긴다. 우리의 비극이 여기에 있다. 망각은 인간에게 치유와 동시에 불행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화가로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궁극적이고 숙명적인 질문을 던지는 행위다. 물론 정답은 없다. 단지, 실존이란 상황 속에서 우리는 살아갈 뿐이다. 뉴욕도, 베를린도, 그리고 서울도 실존과 상황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서 작가가 도시 풍경을 통해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개념과 생각보다는 본능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도시의 모습이다. 도심 속 사회인들은 사회생활을 위해 어디론가 무의식적으로 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조차 현대 사회의 인공적인 모습이란 점을 그려내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90년대 청계천 일대와 지하철은 어설프고 재미난 공간이었다. 당시의 고가 차도들은 도시의 삶을 정확히 보여준 공간”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런 기억 때문일까. 그의 작품들은 그의 이러한 생각을 더욱 세밀하게 보여준다. 외국의 도시와 서울을 비교한 결과이기도 하다. 서울과 뉴욕에 대해 그는 “서울의 지하철은 타일로 깔끔하게 덮여 있어요, 뉴욕보다 깔끔하게 보이죠.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서울의 지하철은 공중목욕탕처럼 외형에 치중한 것 같은 느낌이 강하지만 뉴욕의 지하철은 어둡지만 부드럽고, 실용적인 느낌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지하철에 매료된 것은 사람의 몸에 흐르는 핏줄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피의 흐름 속에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인 모두는 쇠로 만든 지하 전철을 기다린다. 그 시간들은 우리 몸을 싣고 달리는 운송차량, 움직이는 공간, 공기 저항을 뚫고 양 가닥으로 뻗쳐진 철로를 이탈하지 않은 채 햇볕이 비추지 않는 어두운 땅속을, 주어진 시간표에 따라 숨 가쁘게 달려가 다음 정차 역에 서는 동안의 시간들이다. 우리들은 다음 장소로 우리의 몸을 옮겨 가기 위해 다음 공간에 있을 우리를 생각하며, 우리의 몸과 감각을 쇠로 무장된 힘의 속도 안에 밀어 넣는다.” 그의 그림은 화려하거나 예쁘지 않다. 그러나 사람 냄새 나는 정감이 배어나온다. 그의 작품을 ‘도시 풍속화’라고 부르는 이유다.

자신의 작품을 도시 풍속화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그는 “도시 풍속화라는 개념이 정확히 정립된 상태는 아니지만, 서양 미술과 달리 자연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적 정서에서 느낌으로 그려낸 그림이 그렇게 명명되어지는 것에 거부감은 없다”고 말했다. 풍경과 삶의 대한 그림으로 21세기 신풍속화를 담아내다 인물의 신체와 얼굴 속에 깊은 성찰을 담아내면서, 서 작가는 인간이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지적활동의 결정체로서 조형예술에 대해 강한 신념을 보여준다. 주제에 관한 인문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진중한 탐구와 연마를 통해 거장의 문턱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성실한 작가로서 그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유다. 거치면서도 인간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은 그의 인생에 뿌리를 두고 있다. 30살이 넘어 대학에 들어간 그는 “학과에 연연하는 세태에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는 “재료와 정신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순수 미술의 경계가 없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1951년 서울 출생의 서 작가는 서울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어린 시설 어려운 시기를 보내면서 전쟁의 역사를 마음속에 새겨 둔 것 같다는 그는 민중의 애환을 담은 강렬하고 과감한 필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으며, 제1회 중앙미술대전 특선에 입상해 화단에 등장했다.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를 역임한 그는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전을 비롯해 3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20여 년 동안 서울대에서 후학을 가르친 그는 2008년 작업을 위해 교수직을 그만뒀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서울대학교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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