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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복원 이야기 - 2]“작품 태어날 때부터 복원도 시작돼”

유럽에서 15세기에 처음 시작된 미술품 복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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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2호 김대희⁄ 2012.02.20 11:44:16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 작품들은 모두 진짜인가요?” 프랑스에서 미술품 복원을 공부한 김주삼 복원가에게 주위 사람들이 간혹 묻는 질문이다. 그는 “모두 진품들이고, 이는 복원을 잘 하고 평소 정성스럽게 관리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래도 “진품은 숨겨 두고 정교한 모조품만 전시하는 것 아니냐”고 믿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수많은 사람 앞에 진품을 내놓을 수 있는 용기는 유능한 복원 전문가가 있기 때문이다. 미술품에 사용된 기름, 캔버스, 종이, 안료 등은 노화 과정을 겪게 된다. 전시나 운반 중에 사고나 재해 등으로 작품의 일부가 손상되기도 한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수많은 명화들도 거의 예외 없이 다소간의 손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보면 된다고 김 씨는 말했다. 유럽에서 미술품의 복원 작업은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심지어 어떤 전문가는 “미술품 제작 직후부터 복원 작업이 행해진다”고 규정하기도 한다. 최초의 미술품 복원 기록은 유럽에서 15세기에 발견된다. 당시 대부분의 복원 작업은 화가나 손재주 좋은 사람들이 미술품 표면을 닦아 내거나 손상된 미술품에 덧칠을 하는 정도에 그쳤다. 18세기가 되면 프랑스에서 미술품 복원가가 정식 직업으로 태어난다. 복원 작업은 미술품에 대한 인식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전개돼 왔다. 따라서 손상을 입은 작품을 어떻게 복원해야 하는지, 복원 범위는 어느 정도까지인지 등이 논란이 돼 왔다. 2차 대전 이후부터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와 굴지의 미술관들이 중심이 돼 복원 원칙을 마련했다. 무분별한 복원으로부터 작품을 보호하고 복원가의 자격을 엄격히 제한하기 위해서였다.

고전적인 의미의 복원 작업이란 피해를 입은 작품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안료가 퇴색되거나 균열이 발생하고, 캔버스의 탄력이 약해져 늘어지는 등 자연적인 노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작품을 최초의 상태로 돌려놓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 예로 최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첨단 장비를 이용해 조사한 결과 수차례의 복원 작업을 거치면서 몇몇 성인들의 인상이 그만 변해 버렸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원래 모습에 심각한 왜곡이 있는 상태로 우리는 이 명화를 감상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근래에 마련된 복원 원칙은 복원에 의한 작품의 왜곡이라는 문제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 미관적인 면보다 작가의 표현 의도에 초점을 맞춰 가급적 처리를 최소화하는 데 있다. 또한 미술품을 있는 그대로 후세에 온전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강조되면서 작품이 늙지 않도록 온도 및 습도, 사고안전장치 등의 최적 환경을 제공하는 데 더 큰 무게중심이 주어지고 있다. 이러한 예방 차원의 조치로 작품 변형을 최대한 막는 게, 손상된 뒤 고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점이 인식됐기 때문이다. 복원 처리의 대상이 되는 작품에는 병원의 진료기록처럼 작품상태 조사기록 카드가 따라다닌다. 여기에는 조사 중에 관찰된 모든 정보와 처리에 사용된 재료, 테크닉 등이 사진 데이터와 함께 기입된다. 자외선, 적외선 촬영과 화학 분석장비 등을 이용한 작품 재료의 분석 결과도 첨부된다. 이러한 기록카드는 향후 재수리가 필요한 경우 복원 담당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또한 보관이나 취급상의 주의 지침 역할까지 하게 된다. 이런 카드는 작품에 대한 미술사적 정보까지 제공하므로 미술사 연구가에게는 소중한 자료가 된다. 복원 작업은 미술품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여기서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유화 작품의 복원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유화 작품에 대한 복원은 크게 그림 층과 지지대 층에 대한 처리로 나뉜다. 그림 층의 처리에는 작품 표면의 이물질을 닦아내는 클리닝 작업, 그림 층의 결합력 약화나 다른 재료층 간의 접착력 상실로 인해 그림 층이 들뜨는 현상을 처리하는 접합 작업, 결손이 발생한 부분에 대한 메움 작업, 마지막으로 결손 부위를 감추는 색 맞춤 작업 등으로 구성된다.

“많이 훼손된 작품의 복원이 오히려 쉽고, 살짝 망가진 작품 되살리는 게 더 힘들어. 원작의 느낌 살리려 수술용 칼, 치과 용품 등도 사용” 우선 클리닝 작업은 작품 표면에 묻은 이물질이나 누렇게 변색된 바니스, 덧칠 부위 등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그림이 원래 제 모습을 찾도록 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하지만 여러 가지 화학 약품을 사용해 작품의 표면을 닦아내기 때문에, 작품에 손상을 가할 위험 부담이 매우 큰 작업이기도 하다. 그림 층이 들뜨는 현상은 물감이 떨어져 나가는 박락 현상과 함께 유화 작품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훼손이다. 아교 같은 천연재료와 합성수지를 이용해 접합하면 고칠 수 있다. 접합 작업이 끝나면 결손 부위를 메우고 이를 가공하는 메움 작업이 이어진다. 메움 재료로는 제거가 용이한 백토에 아교 등의 접착제가 주로 사용된다. 붓터치 효과를 살리기 위해 수술용 칼이나 치과용 소도구로 가공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색 맞춤 작업은 그림의 결손부 주위의 색과 마티에르를 고려해 마감을 해주는 작업이다. 이 과정이야말로 그림의 제 모습을 찾아주는 복원 작업의 결산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성공적인 색 맞춤이 되려면, 그림을 감상하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색 맞춤의 원칙은, 첫째 범위를 결손 부위에 국한해야 하고, 둘째 원작 위에 덧그리기를 하지 않아야 하며, 셋째 사용한 재료는 쉽게 제거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원작품이 유화임에도 불구하고 색 맞춤에 수채화 물감 또는 천연수지계 물감을 사용하면 문제가 되므로 최근에는 합성수지 계열의 물감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한편 지지 재료에 대한 작업은 재료에 따라 다양한 처리가 필요하다. 유화의 캔버스가 변형돼 있거나 찢어지면 캔버스가 그림 층을 제대로 지탱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림 층의 평면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작품의 수명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사태다. 캔버스의 손상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배접과 조각 천을 이용한 부분적인 보강이 실시된다. 눈에 보이는 복원 작업의 최종 결과는 클리닝과 색 맞춤이기 때문에 이 작업들이 복원작업의 전부인 양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지지대에 대한 처리는 작품의 수명 연장과 관련해 중요하다. 또한 지지대는 클리닝과 색 맞춤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다. 이상 설명한 것처럼 명화로 불리는 그림들은 이처럼 끊임없는 복원 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늙지 않고 영원한 젊음을 누린다. 오래 된 명작을 감상할 때 이런 측면을 고려한다면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이해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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