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미술품 복원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어요. 아직 걸음마 단계로 볼 수 있죠. 수리와 복원은 비슷할 수 있지만 다른 개념이에요. 원래 모습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치는 것이지만 사실 처음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죠. 오래된 작품만 복원한다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에요. 최근 작품도 많아요. 운송 사고도 있고 요즘에는 작품 노화가 더 빨리 진행되는 문제도 있기 때문이죠.” 국내에는 아직 미술 작품 복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실정이다. 미술 작품 소유가 대중화돼 많은 작품들이 거래돼야 복원도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아직 소수의 컬렉터들 사이에서만 작품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서울 평창동 미술품 보존 복원 연구소 ART C&R 사무실에서 만난 김주삼 소장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품 복원과 보존을 공부했다. 그는 특히 회화 부문을 전문으로 하는 복원가로서, 야외 조각 복원도 조금씩 병행한다. 근현대 미술을 중심으로 국내 작가의 서양화에 대한 치료를 맡고 있다. “미술품 복원 시스템도 병원과 비슷해요. 한국화, 서양화, 조각, 유물, 문화재 등 전문적으로 나뉘어 있죠. 요즘에는 사진 작품이 늘어나면서 국내엔 아직 많지 않지만 해외에선 사진작품 전문 복원가도 있어요. 여기에 미디어아트에까지 복원가가 생기면서 점점 세분화되는 추세죠.” 해외와 비교할 때 국내의 미술품 복원은 아직 초창기 단계로 “거의 황무지”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관련 공부를 하는 학생은 늘지만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현재는 애매한 상황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소리도 된다. 그는 수리와 복원의 차이를 강조했다. 둘은 완전히 다른 의미인데도 복원을 수리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수리는 용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원래 물건이 제대로 역할 못하면 수리를 한다. 반대로 복원은 외형을 그대로 재현해 놓는 개념이다. 그는 복원에 대해 일반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몇 가지를 얘기했다. 먼저 “복원은 오래된 것만 한다”는 상식에 대해 그는 “아니요”라고 답했다. 작품이 오래 되면 물감이 떨어지고 훼손된다. 하지만 오래된 작품뿐 아니라 최근 작품들도 이런 노화 현상을 겪는다. 환경오염 탓인지 요즘 작품들은 더 빨리 노화가 진행되는 편이다. 옛 작품 뿐 아니라 최근작도 쉽게 노화 최근 들어 작가의 창작 의도가 보존성보다 강조되면서 작품 재료가 다양해지고 있다. 작품의 노화가 빨리 일어나는 원인이다. 또한 작품 운반 때 사고나 보관의 잘못으로 훼손되는 경우도 많다. 보관의 중요함이 아직 제대로 인식돼 있지 않기 때문에 자연적인 노화보다는 사람의 실수 탓에 복원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가 더 많다. 또 다른 잘못된 상식은 “복원하면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대답은 “아니요”다. 원래대로 돌아온다기보다 작가가 작품을 그렸던 원래의 의도대로 돌려준다가 더 맞는 대답이다. 처음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국내에 미술품 복원가가 거의 없는 만큼 수입이 꽤 높을 것이라는 짐작도 해 봤지만 그렇지 않다고 김 소장은 말했다. 작업하는 시간에 비하면 큰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동시에 여러 작품을 한꺼번에 작업하기 때문에 한 작품에 1년이 걸리기도 한다. 작품을 복원하기 전에 수많은 테스트를 거치며 신경 쓸 일도 많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그는 “즐기면서 일하고 작품을 복원했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며 “하고 싶었던 열망이 큰 만큼 내 적성에 맞는 것 같고 직접 현장에 뛰어드니 재미있고 좋다”고 말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연구하고 새로운 경험이 쌓일 때, 그리고 생각대로 일이 진행될 때 신기하고 통쾌하다”고도 했다. 그는 국내에 미술품 복원이란 개념이 생소했던 때 프랑스에서 공부를 마치고 국내에 돌아와 삼성미술관 리움의 복원?보존연구실에서 14년 동안 실장으로 일했다. 리움이 내부적으로 복원연구실을 만들면서 서양화 파트에 스카우트 됐다. 최근 그는 오랜 기간 몸담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만의 열정을 더 키우기 위해 개인 연구소를 시작했다.
화학을 전공한 그가 미술품 복원을 시작한 계기는 특별했다. 그림도 그리며 미술을 좋아했던 그는 한 미술 잡지에서 ‘복원을 위해 국내 작품을 일본으로 보낸다’는 내용을 읽었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정보를 찾아 헤맨 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현재에 이르렀다. 사실 복원은 유명하고 비싼 작품들이 주 대상이기 때문에 리스크가 크다. 100억대가 넘는 작품들도 들어오는데 복원 도중 각종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처리 과정 중에 더 악화가 되면 안 되기에 최고의 신중을 기한다. “사실 물감이 떨어져나가는 등 훼손이 심한 작품이 더 쉬울 수도 있어요. 오히려 깨끗할수록 더 어렵죠. 그리고 색상이 알록달록 할수록 티가 덜 나기 때문에 손쉽죠. 단색이 쉽지 않은데 국내 작가 중에는 유영국 작가의 작품이 어려워요. 나이프로 그리는데 잘 떨어지고 색 맞춤이 힘들죠.” “미술관에 걸린 명작들은 거의 모두 복원 전문가의 손길받은 작품들. 병든 뒤 치료보다 병 걸리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더 중요” 구체적인 작업 과정에 대해 그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지만 특히 닦아내기가 제일 고난도 작업 중 하나”라면서 “색을 제대로 표현한다는 것도 절대 쉽지 않아요. 많은 작가들이 색을 섞어서 만들기 때문이죠. 보통 색 맞춤으로 완성도를 따지는데 이는 부수적인 겁니다. 위험성으로 보자면 색 맞춤은 위험성이 높지 않으니까요”라고 말했다. 국내 주요 고객에 대해 김 소장은 “애프터서비스 역할이 커요. 다른 곳에서 망친 걸 다시 복원하는 일이 많으니까요. 복원을 하면서 정말 수많은 명작들을 봤죠. 쉽게 접하기 힘든 작품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아요”라고 털어놨다. 작품에 손을 대는 일 없이 그냥 현재의 작품 상태를 조사하는 일도 맡는다. 대규모 해외 유명 작가의 전시에 앞서 작품에 이상이 없는지 미리 확인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직업병 탓에 작품을 보면 전체적인 감상을 하기보다는 복원, 보존 상태라는 세부 사항을 먼저 보게 된다고 했다. “복원 잘했네” “이건 좀 아니다”라는 혼잣말을 하는 증상이다. 그는 앞으로도 작업을 계속 키워나가 미술품 복원의 종합병원 같은 걸 만들고 싶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액자 관련 일도 할 생각이다. 액자 때문에 작품이 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끔 의뢰가 들어오면 액자를 만들어 주기도 해요. 전문적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일반 액자와는 다르게 만들죠. 고가의 작품을 구입하면서 액자에는 비용도 안 들이는 분들이 많아요. 어떤 액자를 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최근 한국화 작품이 많이 들어오는데 이유를 보니 종이의 보존이 까다로운 점과 함께 액자에 문제가 있더군요. 액자는 작품의 보존에 영향을 미칩니다.” ‘문화재의 보존과 복원’이라는 책을 출간한 그는 박수근 및 이중섭 작품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논문을 비롯해 10여 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국내 복원 시장이 발전하려면 미술 작품의 저변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국내 미술 시장의 규모는 해외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다. 작품 가격에서부터 해외와 차이가 크다”며 “국내에도 진정한 미술 애호가가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