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그림자’ 여기 마흔 점의 그림, 마흔 편의 이야기가 있다. 그림과 이야기, 그 사이의 그림자를 오가는 이 묶음에는 경계가 없다. 저자는 그 자신이 그리워하는 어린 시절, 즉 소설과 그림 속 세계와 현실을 가르는 벽이 훨씬 부드럽고 투명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었던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그림이란 2차원을 통과해 주섬주섬 이야기의 파편들을 저장한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미술관에, 갤러리에 두고 온 그림들을 상상의 미술관으로 소환해 한 점씩 걸어보고, 이야기의 파편을 하나하나 조각한다. 이 책은 대상을 세심히 바라보고 사람에게, 사물에게 말을 건네는 김혜리의 첫 번째 그림 에세이로 그녀가 주목하는 그림엔 어쩔 수 없이 고독하고 공허한 틈이 많이 엿보인다. 풍경화건 인물화건 그 안에서 어떤 ‘마인드스케이프’ 즉 심상을 한 움큼 잡아내, 책 밖으로 손을 펼치며 공감을 구하는 눈빛을 보내온다. 그 눈빛은 어쩐지 슬퍼 보여, 읽는 이로 하여금 책 속으로 들어가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림 앞과 뒤를 오가게 만든다. 김혜리 지음, 앨리스 펴냄, 1만5000원, 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