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큰 선거가 두 번 있으니 ‘소설’을 써보고 싶다. 이하 얘기는 모두 필자의 사견이다. 우선 4월 총선의 큰 주제는 ‘MB 응징’일 것 같았지만 최근 양상은 그 수준을 뛰어넘는 것 같다. MB 응징과 복지는 당연한 내용이고(집권여당까지도 이 두 가지를 하겠다고 나서니), 논의는 점점 더 재벌 개혁으로 모아지는 듯하다. 현재 여러 당과 대선 주자들이 재벌 개혁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편차가 크다. 새누리당의 보수적인 안부터 진보통합당의 ‘재벌을 쪼개 수천 개의 개별 기업으로 만든다’는 방안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대선 주자들을 보면 현재 가장 뚜렷한 재벌 해결책을 내놓은 것은 안철수로 보인다. 그는 ‘재벌 동물원’이란 표현으로 개혁의 필요성을 말했다. ‘재벌 동물원’이란 재벌이 중소기업들을 동물원의 동물처럼 가둬 두고 있으며, 그 동물들이 동물원을 벗어나는 유일한 순간은 죽어서 쓰레기로 버려질 때뿐이라는 얘기다. 한국 경제의 먹이사슬에서 착취 구조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을’의 경험을 충분히 한 안철수인만큼 중소기업 살리기, 또는 “한국에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혁신적 기업이 태어나고 클 수 있는 토양이 돼야 한다”는 입장은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정치인도 아닌 그가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다. 박근혜의 경제 정책은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를 풀며, 법질서를 세우자)로 표현됐지만, 현재 세계 경제의 흐름과는 다소 괴리가 있는 듯하다. ‘세금을 부자로부터 더 걷어 들여야 하며, 날뛰는 자본을 잡기 위해선 정부의 규제가 더 강해져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유력한 대권 주자 중 하나인 문재인은 아직 경제 문제에 대해 뚜렷하게 안을 내놓은 게 없다. 올해 총선과 대선의 화두가 정의(‘MB 응징’으로 표현되는)와 경제(재벌 개혁을 통한 국민 살리기)라면, 정의 측면에서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가 모두 강점을 갖고 있다. 반면 경제 문제에서는 안철수가 가장 앞선 형국이다. 그래서 지난 번 서울시장 선거 때처럼 올해 대선에서도 결국 ‘안철수가 지목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 아니냐는 상상을 해본다. 안철수가 지목할 ‘이 사람’에는 당연히 그 자신도 포함될 수 있다. 올해는 이른바 ‘2013년 체제’를 여는 해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1987년 체제가 정확히 25년 만에 크게 바뀐다는 의미다. 이렇게 중요한 때를 맞아 아직도 한국인의 삶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조선 왕조 5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볼 만도 하다. 조선 왕조의 큰 변곡점이라면 16세기말~17세기 초의 왜란·호란, 그리고 19세기 초의 세도정치를 들 수 있다. 임진왜란·병자호란을 당했을 때가 바로 조선의 건국이념인 성리학의 완성 시기라는 해석이 있다. 한국인이 지나치게 관념론에 쏠리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이어 조선 망국의 직접 원인은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세도정치가 꼽힌다. 과거 제도를 통해 ‘지식인이 곧 정치인이 되는’ 조선만의 독특한 권력 구조가 ‘안동 김씨’라는 소수의 손아귀에 농단되면서 나라의 기본이 망가졌고 외세를 막을 힘이 없어졌다는 해석이다. 나라의 모든 경제력이 극소수의 재벌 일가 손아귀에 쥐어진 지금 한국의 형국이, 조선말의 세도정치 때와 비슷하다는 상상을 해 본다. 이래저래 흥미진진한 한 해다. - 최영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