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에 있어 진위 문제처럼 첨예한 부분도 흔치 않다. 미술품에 진위 시비가 얽히면 뜨겁게 화제가 불타오른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고가 미술품 거래가 이뤄지고 있고, 미술품 거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진 것도 그 요인이다. 진위의 문제와 함께 또 다른 시비 거리는 가격대 산정이다. 진품이라면 과연 얼마에 거래되는 게 적당할지를 누군가, 또는 어떤 기관이든 산정해 줘야 하는데, 한국에는 아직 그런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림 감정에 얽힌 두 가지 큰 문제, 진위 감정과 시가 감정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본다. 한국의 미술 시장이 형성된 지난 1970년대 이래 진위 시비는 주기적으로 나오고 있다. 많은 작품이 이로 인해 명암의 기로에 처했다. 하지만 미술품 감정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전문화의 길이 정착되지 않았고, 감정 기구나 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위작이 극성을 부리는 데 비해 감정 분야에 대한 미술계의 대처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감정학 또는 감정업 분야의 전문성 수립이 결여돼 있으며, 전문 연구소나 전문가의 활동 무대조차 제대로 완비돼 있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 양성기관도 국내에는 거의 없는 셈이다. 이렇기에 한국 미술계에서 감정 분야는 아직도 제 궤도에 올라섰다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전문성의 결여는 위작의 성행을 낳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술계가 예리한 감식안을 다수 확보하고 과학적인 체계를 구비하고 있다면, 가짜 미술품 제조업자들이 지금처럼 횡행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란 진단이다. 사례 1: 1991년 뒤흔든 천경자 ‘미인도’ 미술 시장에서 고가로 거래되는 작품들은 아무래도 근대 미술품이다. 그래서 근대 미술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위작 시비가 나타난다. 악의적인 저의가 개입된 시비가 있는가 하면, 악의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고 유야무야되는 경우도 있다. 선의의 피해자만 낳는 불상사도 없지 않았다. 진위 시비에서 가장 경계할 대상은 근거 제시 없이 가짜 소동을 벌이는 이른바 ‘트러블 메이커’의 활동이다. 감정 기능이 부실하다는 약점을 타고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는 해악적 존재들을 앞으로 미술계가 어떻게 걸러낼지도 과제다. 기억에 남아 있는 대규모 위작 시비는 1991년 4월 미술계를 흔들어 놓았던 천경자의 ‘미인도’ 사건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주최의 ‘움직이는 미술관’에 출품된 복제판 ‘미인도’의 원화에 대해 작가 자신이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면서 사건은 불거졌다. 작가가 부인하는데도 불구하고 한국화랑협회는 “천경자의 진품이 맞다”고 감정했다. 이에 작가는 “자기 자식도 못 알아보는 부모가 있느냐”며 진품설을 부인했다. 생존 작가의 작품까지 진위의 시비가 되는 희대의 사건이 한국에 일어난 결과였다. 의견 차이는 끝내 좁혀지지 않았고 양측은 자존심 싸움을 계속했다. 양측의 주장에 일장일단이 있어 쉽게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도 있었다. 결국 분노한 화가는 미술계에 대한 항의 표시로 예술원 회원직을 사퇴하고 절필을 선언하며 외국으로 떠났다. ‘미인도’ 진위 문제는 미궁에 빠지면서 인신공격에 가까운 발언이 계속됐다.
사례 2: 김환기의 ‘봄소녀’ 사건과 감정위 오판 ‘유명 화가 그림 15억대 위조…화가-화랑대표-중간상 4명 구속’. 미술품 위작 사건에 대한 조선일보의 1991년 2월3일자 기사 제목이다. 이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유명 화가의 가짜 그림을 그려 ‘미발표 작품’이라고 속여 15억 원어치를 판매한 전문 위작단 2개 파 4명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위조범(이태희, 이석근)과 이들의 위작품을 판매한 화랑 대표를 구속하고 또 다른 위조범(권춘식)을 수배했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검찰은 이들 위조범이 제작한 남관, 김환기 등 유명 화가의 위작과 위장 낙관 등 관련 자료 5백여 점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이 사건은 1987년 국내에 저작권법이 시행된 이후 위작-모작 사례로 관련자가 구속된 첫 사건이기도 했다. 보도에 의하면 이들 가운데 이태희는 1987년부터 남관 등 유명 작가의 작품 2백여 점을 흉내내 모두 10억 원어치를 팔았으며, 이석근은 겸재 정선 등의 고화 3백여 점을 흉내내 5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봄처녀’ 사건은 애초 위조 작가 이태희가 문제의 그림을 그린 뒤 서울 낙원동 예일화랑에 5백만 원에 팔면서 시작됐다. 이를 인사동의 종로화랑이 2천만 원에 매입했으며, 이후 대구의 정화랑은 7천만 원에 이를 매입한다. 그리고 정화랑은 1990년 7월 한국화랑협회에 감정을 신청했다. 협회의 감정 결과는 진품이었다. 진품 판정까지 받은 ‘봄처녀’는 결국 마지막 소장가에게 1억 2천만 원에 팔렸다. 가짜가 순식간에 억대 미술품으로 변모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1991년 1월 하순경 서울지검 특수2부는 수사에 들어갔고, 이어 위작 전문가들을 구속하고 이태희 등으로부터 위작 사실을 자백받았다. 이 과정에서 문제의 ‘봄처녀’가 위작임이 드러났다. 검찰은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들을 소환해 조사하기에 이르렀고 감정위원의 오판이 만천하에 밝혀졌다. 감정위원들에게는 치욕적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사건이 대서특필 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전문 감정기관도 진품으로 감정할 정도로 정교하다”는 문장은 아직까지도 한국 미술계에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미술 작품의 진위 문제는 어렵고도 첨예한 관심사다. 미술의 역사는 곧 진위 감정의 역사라는 의견도 있다. 위작 전문가가 크게 늘어나는 반면 감정 전문가는 그만큼 배출되지 않았기에 문제라는 지적이다. 사실 우리 미술계에서는 위작 수량이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르는 실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작이 진품으로 둔갑돼 정성스럽게 대접받은 사례가 이미 일부지만 드러났다는 점에서 진위 문제는 앞으로 계속 시빗거리가 될 전망이다. 학술적 논증과 근거 제시에 의한 보다 차원 높은 진위 감정 풍토가 시급히 요구되는 이유다. 특히 일제시대 작품과 유작이 많지 않은 작가의 경우는 더욱 세세한 진위 감정이 필요하다. 언제 또 다시 가짜 작품이 나타나 한국 미술계를 발칵 뒤집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