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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예술]‘밀본세력’이 장영실도 죽였다?

역사적 인물 내세운 창작 연극 잇달아 무대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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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5호 김금영⁄ 2012.03.12 11:35:18

에비타, 엘리자벳, 모차르트…. 한국 무대에 오른 서양인들이다.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였던 에비타는 뮤지컬 ‘에비타’로 작년 무대에 올랐고,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벳은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현재 공연 중이며,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는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으로 3월말 공연을 앞두고 있다. 모두 해외 라이선스 공연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한국 역사의 숨겨진 인물에 대한 연극도 속속 무대에 오르고 있다. 정치의 해 2012년을 맞아 최근 TV에서 사극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해 방영된 인기 TV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를 보면 세종대왕이 친애하는 과학자로 장영실이 나온다. 장영실은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수많은 과학기구, 활자, 악기 등 발명품을 남겼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갑자기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사대주의라는 기본 입장에 따라 궁궐에서 살인까지 저지르며 막으려 했다는 드라마 속의 이른바 ‘밀본세력’이 장영실까지 내쫓은 것일까? 이런 궁금증에 도전해 보는 연극 ‘궁리’가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4월 24일~5월 13일 공연된다. 이 연극은 장영실의 역사적 실종 사건을 당시 조선을 둘러싼 동북아 국제 정세 속에서 파악한다. 중국을 등에 업은 인문학자들의 사대주의 세력과, 민중을 포함한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세종 중심의 자주 세력은 첨예한 대립을 펼치며, 연극에서 장영실은 이러한 알력의 희생자로 해석된다.

이윤택 연출은 “개국공신이나 양반 출신이 아닌 관노비 출생이고, 서울 도성 사람이 아닌 부산의 지역민이었고, 고려말 원나라 이주민 출신이었던 장영실은 1442년 세종 24년 임금이 탈 수레를 잘못 만들었다는 이유로 태형 80대를 맞고 쫓겨났다는 마지막 기록만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며 “의문투성이의 장영실 실종 사건을 지금 시각에서 재구성해 진정한 지역 자치, 그리고 21세기 다인종 다문화 시대를 열어 나가는 상징적 사건으로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신분 차별화 사회, 출신지에 따라 사람을 나누는 뿌리깊은 지역차별주의, 외국인에 대한 노골적 차별의식 등이 최근 한국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570년 전으로 무대를 옮겨 추리극으로 사태를 풀어보는 데 이 연극의 매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TV에서 사극이 대세이듯 연극 무대에서도 ‘궁리’ ‘조선 청년의 횃불’ 등 역사적 인물 다룬 공연 줄이어 눈길 TV 사극에서는 조선시대의 궁궐이 최고의 주제지만, 연극 무대에서는 조선 패망 뒤 일제 치하의 얘기가 최근 무대에 올려졌다.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와 신시컴퍼니는 2천 명의 독립군을 이끌고 5만 명의 일본군을 대파한 청산리전투를 이끈 김좌진 장군 이야기를 다룬 음악극 ‘백야’를 2월 18일~3월 4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선보였다.

군자금 모금, 독립군 훈련 등 실제 사건이 음악극으로 재구성됐다. 또한 독립운동을 했던 김좌진 장군의 영웅적 행보뿐 아니라 오민호라는 허구 인물을 통해 비극적인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뤄 눈길을 끌었다. 최용훈 연출은 “역사적 인물을 다룬다는 건 그 인물을 통해서 그 당시를 생각하고 지금 이 시대에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라며 “역사를 통해 현 시대의 삶을 돌아보며 공동체를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딱딱하지 않게 풀어내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인물을 다루는 공연이 또 있다. 월남이상재선생기념사업회와 서울YMCA는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독립협회 활동을 펼친 월남 이상재 선생의 이야기를 다루는 ‘조선 청년의 횃불’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재일본한국YMCA회관 한국문화관에서 2월 8일 시작된 이 공연은 3월 말까지 전국 순회공연을 펼친다. 연극 ‘조선 청년의 횃불’은 1919년 일본 도쿄에서 조선 유학생들이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2.8 독립선언 93주년을 맞이해 이번 전국 순회공연에 나섰다. 월남 이상재 선생은 서재필, 윤치호와 함께 독립협회를 창설하고 독립신문을 발간하는 데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표재순 연출은 “일제 강점기 시절, 꿈을 가질 수 없었던 시대에 조선청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고자 일생을 바쳤던 이상재 선생의 삶을 무대 위에 올림으로써 현대를 사는 이 땅의 청년들에게도 다시 한 번 꿈과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고 싶다”며 “이번 연극은 세계 속의 한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정신문화 운동의 모티브를 제공하고자 마련됐다”고 밝혔다. 역사적 인물에 대해 다룬다고 해서 꼭 분위기가 무거운 공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 PMC대학로자유극장에서 시즌2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밀당의 탄생’은 신라의 선화공주와 백제의 서동도령을 둘러싼 ‘서동요’를 다룬다.

실제로 선화 공주는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셋째 딸로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는데 이를 연모한 서동이 선화 공주가 밤마다 남몰래 서동을 만난다는 내용의 ‘서동요’를 퍼뜨려 귀양을 가게 됐다고 전해진다. 귀양 가는 선화 공주를 서동이 나타나 구출해주고 두 사람은 백제로 건너가 결혼한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하지만 ‘밀당의 탄생’에서는 이 이야기를 선화공주와 서동도령이 연애에 능한 선수였다는 가정 아래 코믹하게 풀어나간다. 중점을 이루는 것은 선화공주와 서동도령의 밀고 당기는 기 싸움으로, 랩과 댄스가 어우러지면서 역사에 기록된 이야기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낸다. 그동안 서양의 인물이 공연을 통해 국내에 소개된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이처럼 우리 역사 속 인물에 대해 조망하는 공연이 점차 늘어나면서, 반대로 해외에 한국의 역사에 대해 알릴 수 있는 공연이 많이 선보일 가능성도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한 사례로 20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거사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뮤지컬 ‘영웅’은 2011년 여름에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열어 현지 언론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한국 공연 시장이 해외 작품을 수입하는 데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특유한 소재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해외 시장에서도 각광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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