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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전시는 미술 대중화 위한 새로운 대안?

“지나친 상업성 추구” 비판에 미술관들 “순기능부터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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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6호 왕진오⁄ 2012.03.19 10:37:36

미술관들이 대중 친화를 도모하는 과정은 전시 형식과 내용에 큰 변화를 가져 왔다. 그 가운데 최근 특히 부각된 전시 형식으로 블록버스터 전시를 꼽을 수 있다. 보다 폭 넓은 관객을 타깃으로 하는 대형 전시는 미술관들이 변모된 기능을 수행하는 데 효율적인 방법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최근 몇 년 새 미술계 화두로 등장할 정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샤갈, 로댕, 반 고흐, 피카소, 클림트…. 세계 미술사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작가의 작품들이 최근 수년 간 한국에서 대형 기획 전시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최근 2년 사이 개최됐던 전시만 해도 앤디 워홀, 키스 헤링, 로댕, 샤갈, 피카소와 모던아트, 베르사이유 특별전 등 숫자 면에서도 상당하다. 특히 이들 전시는 국내 국-공립 미술관에서 진행하고 있어, 좋은 미술 전시를 보다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과 함께,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앞세워 기획사와 미술관이 수익 사업에만 전념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의견도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미술관들이 이들 대형 전시를 주요 행사로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는 뭘까? 최근 많은 미술관들이 학문적 연구를 중시하는 한편으로 다양한 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복합문화 공간을 제공하는 체제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과거 미술관이 대중들이 잘 모르는 유망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엘리트주의적 심미안과 감상 능력을 고취시키는 공교육 장소였다면, 오늘날 미술관은 대중과의 소통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문화 촉매 장소로서의 기능을 중시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블록버스터 전시, 즉 대형 전시가 대중에게 교육과 오락을 제공하기 위해 학문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최 미술관에게 명예와 이익을 가져다준다면 그건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블록버스터 전시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며, 교육과 오락은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막대한 홍보 비용과 과대 선전은 소비주의와 연결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미술관들이 선호하는 블록버스터 전시가 미술의 대중화를 이끄는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형 전시 탓에 국내 작가들의 전시 기회가 잠식되는 위험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들의 유명세에만 의존해 내실 없는 성과 위주로 전시가 진행된다는 점도 미술계 안팎의 불만 요인이다. 미술관 본연의 학술적 기능에 충실하기보다 상업주의에 치중한다는 비난을 벗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다수의 관람객에게 해외의 유명 예술작품을 만나도록 해 예술적 가치의 공유 기회를 만들어주면서, 수익도 창출해야 하는 공공 미술관의 당면 과제도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현실론도 있다. 또한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더라도 좋은 작품을 국내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고, 외국 미술관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 국내 큐레이터가 선진 미술관의 시스템을 익힐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불록버스터 전시의 실적과 과제 한국에서 블록버스터 전시 성공의 신호탄을 올린 것은 지난 2000년 열린 한-러 수교 100주년 기념 ‘러시아 1000년 삶과 예술 전’(덕수궁미술관)이었다. 총 예산 25억 원의 이 전시는 당시 철의 장막에 가려졌던 러시아 미술의 진면목을 보여줬고, 12만여 관람객을 동원하며 흥행 기록을 달성했다. 이 전시에 앞서 1970년대 이후 1990년대까지도 대형 전시가 시도됐다. 그러나 1997년 6월 덕수궁미술관이 개최한 ‘고대 이집트 문명 전’이 25~30억 원이란 대형 예산을 투입하고도 흥행에 실패하면서 한동안 대형 전시가 기피됐지만 ‘러시아 1000년 전’이 이 한계를 깼다. 이후 △2000~2001년 덕수궁미술관의 ‘오르세 미술관 걸작전’ △2002~2003년 서울시립미술관의 ‘프랑수아 밀레-서울전-밀레의 여정’ △2003년 덕수궁미술관의 ‘위대한 회화의 시대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 △2004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살바도르 달리 전’ △2004년 서울시립미술관과 부산시립미술관의 ‘색채의 마술사-마르크 샤갈’ △2005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의 ‘서양 미술 400년 전’ △2005년 덕수궁미술관의 ‘20세기로의 여행-피카소에서 백남준으로’ △2005년 서울시립미술관의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 화가들’ △200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르네상스 바로크 걸작 회화’ 등의 대형전시가 이어졌다. 2004년 샤갈 전의 경우 서울 50만, 부산 16만 명을 포함해 총 66만 명이 관람해 입장 수익만 35억 원에 달했다. 당시 작품 대여료, 운송비, 보험료 등 유치 비용에 20억 원 이상이 소요됐지만, 미술관에게 명예와 이익을 가져다줬고, 블록버스터 전시가 붐을 이루는 계기가 됐다. 블록버스터 전시 기획은 평균 2년여가 걸린다. 최소 1년간 기획, 정보 수집 등의 사전 준비에 이어 1년 간 작품을 빌려오고 작품을 설치하며 홍보 교육 등의 과정을 거친다. 총 예산의 최소 35% 이상을 협찬금으로 충당해야 하며, 70일 이상의 전시 그리고 1만 원 이상의 관람료를 책정해야 투여 경비를 회수할 수 있다는 산술적 계산이 나온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가장 많은 대형 전시를 유치-진행하며 2010년 ‘가고 싶은 미술관 1위’를 차지한 서울시립미술관의 경우 국내외 미술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한편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거장들의 작품을 유치해 시민의 문화 향수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취지 아래 2002~2003년 ‘프랑수와 밀레-서울전-밀레의 여정’, 2004년 ‘색채의 마술사-마르크 샤갈전’, 2005~2006년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 화가’ 등에 이어 2006년 ‘위대한 세기 피카소 전’을 개최했다. 이후 매년 2차례 이상의 대형 전시를 열어 국내 블록버스터 전시의 메카가 됐다. 이러한 블록버스터 전시들에 대해 일부 미술 비평가들은 “전시품의 수량, 관람객 규모, 필요한 비용 그리고 결과적으로 남는 이익들이 현저하게 강조되면서 전시 자체보다는 관련 상품의 판매가 더 중요해지면서 미술 작품 감상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방해-분산 효과를 만든다”고 지적한다. 작품 해설을 담은 전시 도록이 기념품으로 전락한 현상도 문제로 대두됐다. 블록버스터 전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요인으로는 기업과 언론사가 미술관에 블록버스터 전시에 적극 투자한다는 사정도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미술 문화는 자본주의 논리에 종속되고, 중·소규모 전시 공간의 운영이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대중들에게 명화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순기능을 갖는 블록버스터 전시를, 앞으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어떻게 지속해 나갈 것인지가 미술계의 과제로 남겨져 있는 셈이다. 블록버스터 전시란 국어 사전에 블록버스터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서 만든 대작, 특히 대작 영화를 이름’이라고 정의돼 있다. 초대형 영화에 쓰이기 시작한 이 말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서 열리는 스펙터클한 대규모 전시를 지칭할 때도 쓰이고 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산드라 밀러킨은 블록버스터 미술 전시에 대해 “블록버스터란 강한 충격이 있다는 의미로서, 본래 예술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미술 전시의 형태를 설명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1996년 이후 막대한 효과를 가져 온 블록버스터 전시는 웅장하고 인기있으며 돈벌이가 되는 전시로서, 미술계에서 수익, 명성 획득의 중요 자원이 돼 왔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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