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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철, 무지갯빛 색채 입은 조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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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6호 왕진오⁄ 2012.03.19 10:39:30

조각가 최성철은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재료의 물성을 감추기 위해 작품 표면에 채색을 한 후 하단에는 스테인리스 스틸이 주는 거울 효과를 내는 작업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뤄내고 있다. 작가가 이탈리아 카라라에서 돌아와 석조에 채색을 할 때만 해도 그의 조각은 미술계에 상당히 낯설게 다가왔다. 전통 조각의 이단자로 비쳐질 수 있었다. 그가 단순히 폭넓은 방법에 의한 채색만을 강점으로 하는 작가에 머물렀다면 이야기는 단순해진다. 거기에 덧붙여 작가는 소재와 재료, 색채 표현 등을 통해 신화적, 상징적 문맥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는 초기 작업에서 재질의 표면을 감추기 위해 색을 이용했는데, 지금은 색을 채우기보다는 동양화의 여백의 미처럼 공간미를 살려 색과 조화를 이루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이다.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아직까지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난하고 삶이 순간순간 고단하지만 그래도 꿈이 있기에 살며시 웃을 수 있습니다.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꿈은 시원한 바람입니다. 눈물 찔끔 나는 겨울 밤 하늘의 별입니다.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꿈은 배 아플 때 먹는 시큼한 매실주입니다.”

최 작가의 초기 작업에는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한국의 전통색인 오방색(적, 청, 황, 흑, 백)을 기본으로 원색적인 색들이 작품에 사용됐다. 이 다섯 색감에 기초한 원색들의 조합은 몬드리안이나 칸딘스키의 작품처럼 선과 면으로 조합된 기호들의 집합체와 비슷하게 나타난다. 스테인리스 표면에 미세한 흠을 내며 착색 스테인리스 표면에 채색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채색 면을 먼저 갈아내 표면에 미세한 흠집을 내야 도료가 확실하게 정착한다. 그 상태에서 작가가 정성스럽게 하나하나를 수작업으로 채색해나가는 것이다. 붓을 잡고 채색하는 바로 그 과정을 작가는 가장 행복하게 생각한다. 이런 채색을 통해 질료의 차원을 넘어서 의미의 차원으로서 성취를 이뤄낸다. 이러한 과정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채색이 대부분 부분적으로만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재료가 가진 본래의 물성을 있는 그대로 살리는 것 또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작가의 작품에서 강조되는 것은 물성의 차원을 넘어 개체들의 전체적 구성, 그리고 그러한 배열이 주는 경험의 차원이다.

최근 그의 작업에서는 원색들의 조합 사이에 중간색 계통이 추가돼 더욱 화려한 연출을 보여준다. 조각은 시각에 호소하고 몸으로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조각은 크기, 중량, 촉각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최성철의 조각은 재료의 성질, 조각적 구조가 중요시되기보다는 화려한 색채가 우선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그가 만들어낸 물질적인 표면에 색채를 얹혀 놓는다. 촉각적 성질과 바탕면의 질감, 공간 사이의 관계보다는 색상이 우선적으로 우리의 시선에 다가와 자리를 잡는다. 최 작가는 익숙한 조각 재료인 대리석이나 철 위에 원색의 색상을 무지갯빛으로 칠해 놓는가 하면, 기하학적 구조들을 연속적으로 채워나가면서 선으로 경계를 만들어 스테인드글라스제 인테리어 소품을 보는 듯한 디자인을 연상케 한다. 작품의 색채는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품의 의미를 더욱 부각 시키는 데 중요한 요소다. 그의 작품은 수많은 색의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여정을 엿보게 만든다. 작품에 색을 더하는 것은 표현하려는 대상의 실제 모습과 가까워지고 닮아가기 위한 경우도 있지만, 최성철이 작품에 색을 집어넣는 이유는 이것과는 다르다. 작품 자체의 본질과 감상자의 관계에서 더욱 친밀한 관계를 성립시키려는 의도가 나타난다. 작품의 원래 재질이 무엇인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면서도 작품을 감싸는 색의 조합은 마치 화려한 새의 깃털처럼 작품에 활기와 생명력, 그리고 의미있는 서사구조를 담는다. 그의 작품이 늘 맑고 경쾌한 느낌을 전달하는 이유다.

근작에서 선보인 형상 가운데는 알 모양의 반구체가 있다. 작품 '여름날의 오후'에서 달팽이 주변에 함께 놓인 반구의 알록달록한 알 형태는 대지로부터 솟아오르는 생명력을 표현한다. 평면에 그리는 그림과, 입체로 그리는 그림 최 작가는 각박한 현대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생명경시 현상을 안타까워하면서, 자기 역시 그런 삶의 어둡고 무서운 이면을 변경할 수는 없지만 작품을 통해 해소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알', '구' 형태에 더욱 강렬하고 화려한 색상을 가미해 등한시되는 생명이 아닌, 소중하고 강인한 생명력을 세상에 탄생시킨다. 작가의 작품의 형태와 색은 특정 이미지에 구애받지 않는다. 자연과 사람, 우리 삶 속의 요소들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관찰하고 자유롭게 재해석해 자유롭고 유쾌한 형태로 펼쳐 놓는다. 그의 마음처럼 그의 작품은 삶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부분을 일깨워주려는 의지를 담는다. 현대 사회의 무미건조한 공간 속에서 그의 작품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작품에서 나오는 기운을 통해 삶 속의 여유와 즐거움,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다. 최성철 조각의 표면에 가해진 그림을 캔버스에 펼쳐낸다면, 그 나름의 회화적 표현이나 구성, 완성도 면에서 회화 작품과 충분히 견줄 만하다. 물론 평면에 그린 그림을 단순히 조각의 표면에 입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평면에 그려질 것과 입체에 그려질 것에 대한 공간적 차별의 구사 능력은 물론이고, 아울러 조각 공간을 적절히 해석하는 능력이 가미되었다는 점에서 최성철의 진가가 돋보인다. 최성철 작가는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미술원(Accademia di Belle Arti di Carrara) 조각과를 졸업하고, 인하대학교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04년 신세계갤러리, 2007년 미술공간현, 2008년 롯데갤러리, 2009년 금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서울오픈아트페어, 아트밸리작가들, 대구아트페어, 화랑미술제 등의 기획 그룹전을 통해 작업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들은 이탈리아 미누치아노 시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렉스필드 컨트리클럽, 송은문화재단, 인천문화재단, 크라운해태그룹 등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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