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민심이 심상치 않다. 전통적인 새누리당 텃밭으로 불리는 부산에 야풍(野風)이 불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부산저축은행 사태 등으로 부산의 민심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4.11 총선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지난 13일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총선 격전지인 부산을 찾았다. 박 비대위원장이 이날 첫 일정으로 방문한 곳은 부산 연제구에 위치한 KNN 사옥이었다. 사옥 밖에서는 박 위원장의 방문 소식에 한 시민단체가 정수재단 사회환원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갖고 있었다. 박 위원장이 이미 “정수장학회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밝혔지만, 이들은 현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박 위원장의 측근이라는 점을 들어 “부산 민심이 좋지 않다. 환원하라”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이곳에서 ‘9개 지역민방 공동 초청토론’에 참석했다. 패널 중 한 명이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업화를 이끈 과정과 유신체제 아래에서 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고생했다”고 하자, 박 위원장은 주저 없이 사과했다. 그는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분들에 대해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져왔다. 국민들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싸늘한 재래시장의 생선 좌판 할머니 “박근혜고 문재인이고 우리는 관심없다. 부산저축은행 내 돈이나 내놓으라고 해라” 그러면서 그는 “갈등을 완화하고 하나 되는 통합으로 가야한다”며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 간의 화해와 통합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나라를 위해 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 함께 힘을 모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의 사과 소식이 알려지자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눈길을 끌었다. 그는 또한 신공항 문제에 대해 “신공항은 현 정부가 약속을 했다 폐기했지만 미래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꼭 필요한 인프라”라며 “사업 추진에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를 먼저 형성하고, 입지는 객관적으로 전문가들이 결정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부산 민심을 자극했던 신공항을 이렇게 다시 추진할 뜻을 밝히면서 민심을 달랬다. 박 위원장은 이날 ‘문재인 대항마’로 뛰고 있는 정치 신예 손수조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사상구 괘법동에 위치한 손 후보 사무실을 찾았다. 부산 민심이 돌아서고 있다고 하지만, 박 위원장은 여전히 인기가 있었다. 박 위원장을 보기 위해 5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도로 양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박 위원장의 등장에 환호하며 열렬히 환영했다. 손 후보 사무실에 들어간 박 위원장은 한미FTA와 제주 해군기지 문제 등에서 야당이 말바꾸기를 하고 있다며 “불신의 정치를 사상에서 끊어 달라”며 호소했고, 이곳에 모인 시민들도 호응했다. 손 후보와 함께 인근 재래시장인 덕포시장을 방문키 위해 박 위원장은 승합차에 올라탔다. 박 위원장이 차의 선루프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자 시민들도 반갑게 인사했다. 덕포시장 입구는 박 위원장을 보려고 몰려든 시민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결국 박 위원장은 덕포시장에서 상인들에게 인사를 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발길을 돌렸다. 박 위원장의 사상구 방문에서 성난 부산 민심은 온데간데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날 저녁 방문한 부산 중구의 부산 자갈치시장 민심은 또 달랐다. 박 위원장이 부산을 떠난 오후 8시쯤 자갈치시장 현대화건물 입구는 다소 한산해 보였다. 건물 1층 수산물시장의 가게 절반은 문이 닫혀 있었다. 한쪽에서는 “이거 억수로 맛있는 거라. 사이소” “이모, 싸게 줄게” 등의 말을 건네며 손님과의 흥정이 시도되고 있었다. 서울의 노량진 수산시장처럼 2층에는 회센터가 있어 1층에서 주문한 횟감을 요리해주는 식당들이 있다. 2층 식당도 절반은 문이 닫혀 있었지만 손님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손님들이 하는 얘기를 슬쩍 귀동냥했다. 정치 얘기를 하는 테이블은 없었다.
자갈치시장 현대화건물 건너편에는 ‘XX횟집’ 같은 상호를 가진 식당들이 많았다. 식당 앞에는 심하지는 않았지만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 횟집 앞에서 “우리 식당으로 들어오라”는 40대 여성에게 “요즘 장사가 잘 되느냐”고 물었다. 이 여성은 “보다시피 경기가 안 좋아요. 장사도 예전만큼 안 되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낮에 본 장면이 생각나 박근혜 위원장의 인기를 물었다. 그러자 이 여성은 “먹고 살기 바빠서 정치에 관심 없어요”라고 말했다. 더 말 걸기도 미안할 정도였다. 식당 안은 얼핏 봐도 한산한 것이 싸늘한 체감 경기가 느껴졌다. 이날 앞서 토론에서 박 위원장은 “그동안 국가 경제는 성장해도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더 어려워졌다”며 “그래서 정책을 추진할 때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고, 개인의 행복을 높이는 쪽으로 집중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의 말처럼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생각보다 더 싸늘한 듯했다. 박근혜는 “동반성장” 외쳤지만, ‘저희는 공약 지켜요’ 문구 써붙인 핸드폰 가게는 길건너 삼성 대형 매장을 가리키며 “우린 다 죽게 생겼어요. 제발 좀 지키세요” 하소연. 자리를 옮기니 생선을 팔고 있는 60대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장사가 잘 되시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아침에는 좀 팔리고 저녁에는 뭐 그렇지”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박근혜 위원장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대통령 나온다더나?”라고 되물었다. “지금 확정된 거는 아니고 유력한 대선주자에요. 문재인 이사장은 어떠세요?”라고 또다시 물어봤다. “둘 다 대통령 나오나? 관심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윽고 나온 할머니의 발언은 ‘저축은행’이었다. “부산저축은행 돈이나 내놓으라고 해라. 나라가 다 해 먹고 우리는 정치에 관심 없다”라고 말했다. 저축은행으로 흉흉해진 부산 민심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할머니와의 대화를 뒤로 하고 자갈치시장에서 길 건너 부산국제영화제 거리로 향했다. 남포동 거리로도 불리는 이곳에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길거리에는 장사하는 이들도 많았고 한쪽 구석에는 휴대전화 판매 매장이 모여 있는 곳이 있었다. 한 매장 가판대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저희는 공약을 지켜요.” 왜 이런 문구를 넣었는지 궁금해졌다. 매장 안에 들어가니 20대와 30대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있었다. “왜 저런 문구를 썼느냐”고 물어봤다. 이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신뢰 문제니까요.”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는 정치인들 안 믿어요. 국회의원들은 거짓말만 하고. 그래서 쓴 것도 있어요. 쫌 지키라고”라며 씁쓸히 웃었다. 장사는 잘 되는지 궁금했다. 이들은 “힘든 건 사실이에요. 보다시피 앞에 삼성 대형 매장도 생겼고요”라고 대답했다. 바로 앞에는 꽤 넓어 보이는 삼성 모바일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날 토론에서 경제구조에 대해 박 위원장이 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하는 형태로 바꿔 나가겠다”는 말이 퍼뜩 떠올랐다. 몇몇 사람들의 반응을 놓고 부산 민심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격전지인 부산에서 시민들이 절실하게 원하는 건 결국 먹고 사는 문제인 것으로 판단됐다. 부산 시민들에게 누가 당선되든 그건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총선 격전지 부산에서의 최종 승자는, 체감경기를 살려주는 사람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