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6호 최영태⁄ 2012.03.28 10:45:16
김종인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위원이 22일 마침내 사퇴를 발표했다. 작년 12월 비대위가 출범하면서 짜여진 ‘박근혜+김종인 복식조’가 깨진 것이다. 김종인의 사퇴는 현재 박근혜의 스탠스(위치 선정)를 잘 보여준다. 김종인 비대위원이 참여하면서 새누리당의 정강정책에서 ‘보수’ 단어를 삭제하는 논란, 재벌개혁으로 대표되는 경제민주화 가능성이 거론돼 왔지만, 22일 김 비대위원의 사퇴에 따라 복식조는 이제 갈라섰고, 새누리당의 재벌개혁 가능성에 대한 논란 역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 단계에서 생각나는 발언이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소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2010년 출간된 ‘박근혜 현상’에서 이런 진단을 내린 바 있다. “(박근혜는)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취임 초기에는 개혁적 보수노선을 내걸었지만 강한 보수노선으로 전환하는 데 불과 몇 달이 안 걸렸다. 박근혜의 보수 대표성과 강한 이념적 보수성은 선천적이 아니라 이념적 포지셔닝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2004년 이른바 ‘탄핵 정국’에서 한나라당이 완전 궤멸 위기에 빠진 상태에서 당 살리기에 나선 박근혜는 당시 ‘개혁적 보수’로도 보일 수 있는 스탠스를 취했지만 곧 이어 당시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이른바 ‘4대 악법 개정’에 맞서며 강한 보수노선으로 회귀했다는 진단이다. 2004년 천막당사에서도 정강정책에 '개혁' 삽입했었지만… 2004년 천막당사로 들어가면서 박근혜의 한나라당은 정강정책에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발전적 보수는 이제 부정부패와 지역주의 등 과거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는 자기혁신과 정치개혁을 철저히 추진한다”는 문장도 추가됐다. ‘합리적 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개혁적 보수주의를 천명하고 나선 것이다. 작년말 한나라당 정강정책의 ‘보수’ 논쟁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올해 총선과 대선의 화두는 소극적으로는 복지, 적극적으로는 재벌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복지야 이제 보수-개혁-진보 나눌 것 없이 모두 실시를 공언하고 있는 만큼 당별 차별성이 많이 줄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벌개혁 문제는 다르다. 복지보다 훨씬 첨예하게 각 당별 입장이 갈라지며, 정치의 계절을 맞아 유권자의 관심사는 ‘복지에서 재벌개혁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재벌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서민들이 다 죽게 생겼으며, 복지 역시 제대로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여망에 맞았기에 ‘박근혜-김종인 복식조’의 인기가 쑥쑥 올라갔던 것인데, 이제 그 복식조는 깨졌다. 더구나 새누리당의 공천에서 친재벌적 시각을 가진 인사들이 비례대표 등에 포진함으로써 “새누리당의 공천 결과를 보고 재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는 진단까지 나온 상태다. 올해 선거도 '경제 선거'가 될 것이며 그 핵심은 재벌개혁인데… “올해 선거 국면에서 중요한 것은 정권교체가 아니라 경권(經權)교체”라고 주장하는 책(‘문제는 경제다’)이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1, 2위를 다툰다는 점에서도 재벌개혁에 대한 폭넓은 관심사를 읽을 수 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공주’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만큼 귀족이란 소리다. 귀족은 재벌개혁을 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이기도 하다. 재벌 위에 올라선 입장에서 “당신들 이런 것은 잘못하고 있잖아. 당신들이 어떻게 기업을 시작했는데…”라고 꾸짖으면서 “이런 걸 고치지 않으면 당신들도, 우리도 모두 공멸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스무스한 재벌개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김종인 환상 복식조’의 인기가 올라갔던 근거 중 하나다. 그러나 이제 그 복식조는 깨졌고, 박근혜 혼자서 경기에 나서는 단식 경기 양상이 됐다 . 더구나 새누리당 공천 양상은 “새누리당은 재벌개혁에 아무 생각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2004년의 ‘좌클릭 뒤 순식간에 우클릭’과 비슷한 양상이다. 유권자들이 이를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