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7호 최영태⁄ 2012.04.05 11:01:04
숫자가 난무하는 게 한국의 선거철 풍경이다. 새누리당 후보 00.0% 대 민주통합당 후보 xx.x%로 누가 우세하고…. 웃기는 건 같은 지역구의 같은 후보를 놓고 하는 여론조사의 결과가 조사기관에 따라 널뛰기를 뛴다는 것이다.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가 달라도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조사 주체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 여론조사 결과보다 더 웃기는 것은 도대체 여론조사 결과가 맞는 적이 아주 드물다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 선거에서는 출구조사 결과까지 틀려 관련 언론사들에 망신살이 뻗힌 적도 있었다. 외국에서도 이렇게 선거철이면 여론조사 숫자가 난무할까?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미국의 경우를 되돌아보면 그렇지 않았다. 선거철 미국 신문의 특징이라면 각 후보를 자세히 소개하고, ‘신문사의 입장’을 밝힌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라면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를 소개한 뒤 “우리는 이 후보를 지지한다. 이유는 ~~~다”라고 밝힌다. 그리고 유력 언론사의 이런 지지 결정은 거의 선거 결과와 일치한다. ‘양심적인 언론’의 솔직한 결정을 대부분 유권자들이 따르는 현상이다. 선거철 미국 언론에서 A후보 몇%, B후보 몇%라고 하루도 쉬지 않고 여론조사 결과를 쏟아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휘둘리는 유권자를 흔들기 좋은 수단이 여론조사 한국 언론은 왜 이리 선거철 여론조사에 매달릴까? 이유는 두 가지 같다. 하나는 ‘대세론’이고, 다른 하나는 ‘돈장난’ 같다. 우선 대세론은, 한국의 정당이라는 게 유권자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그저 유력 정치인 주변에 모인 ‘자리사냥꾼 집단’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에게 “나는 무슨 당을 지지한다”라는 당성이 분명치 않으니 그때그때 달라요 식의 ‘스윙 보터(swing voter)'가 많고, 이런 상황에서는 대세론이 곧잘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 ‘돈장난’이란 혐의는 여론조사라는 게 돈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자 언론사일수록 더 자주 여론조사를 할 수 있고, 한국의 스윙 보터들에게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말한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원하는 결과를 끄집어낼 수 있다”고. 묻는 방식-순서에 따라 사람의 응답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쉬운 예를 들어 “너, 나 좋아해?”와 “너, 나 좋아하지 않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다. 사랑의 유무라는 동일한 내용을 물었다고는 하지만 결과는 얼마든지 널뛰기를 뛰게 만들 수 있는 게 여론조사의 기술이다. 여론조사가 최대한 현실과 가까우려면 두 가지가 보장돼야 한다. ‘물을만한 질문을 제대로 묻고’ ‘거리낌 없이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이 두 가지 모두가 충족되지 않는 게 현실 아닌가? 이런 마당에 도대체 매일 쏟아져나오는 여론조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선거 때마다 다짐한다. “마음대로 여론조사 하세요. 나는 내 마음대로 투표하니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