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7호 최영태⁄ 2012.03.30 11:43:18
한국 소비자는 그냥 속이기만 하면 된다? 코오롱스포츠의 등산화 광고에서 확인되는 사항이다. 미국의 유명한 제품평가 기관으로 컨슈머리포트(www.consumerreports.org)라는 곳이 있다. 업체의 도움 한 푼 받지 않고 100% 자기 돈으로 물건을 사들여 수십 가지 항목을 검사한 뒤 순위를 매기고, ‘이 상품은 사도 된다(구입 추천)’ ‘이 상품은 사지 말라’고 공표하기에 ‘기업들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곳이다. 컨슈머리포트의 명성이 대단하니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한국판 컨슈머리포트를 만든다’는 구호 아래 스마트컨슈머(www.smartconsumer.go.kr)라는 평가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 첫 작품으로 국내 시판 등산화 품평 결과를 내놓았다. 추천 품목은 코오롱스포츠의 페더 등산화와 블랙야크의 레온 등산화 두 가지였다. 코오롱스포츠가 그냥 ‘스마트컨슈머에서 1등 했다’고 자랑했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코오롱스포츠는 지난 26일 각 일간지에 전면광고를 내면서 ‘그 깐깐하다는 컨슈머리포트가 한국에서 첫 번째 고른 등산화는?’을 큰 글자로 뽑았다. ‘그 깐깐한 미국의 컨슈머리포트가~’는 명백한 거짓광고였다. 미국 컨슈머리포트가 한국 등산화를 품평한 적이 없고, 당연히 그들의 웹사이트에는 ‘코오롱(Kolon)’이란 글자가 들어가는 품평결과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코오롱스포츠는 세계 최고 권위의 컨슈머리포트가 ‘페더 등산화’를 1등으로 뽑은 것처럼 거짓 정보를, 광고란 수단을 이용해 퍼뜨린 것이었다. 사과 한 마디 없이 슬그머니 바꾼 광고가 또 이 문구가 문제되자 코오롱스포츠는 사과 한 마디 없이 나흘 뒤 슬그머니 광고 문구를 바꿨다. 새 광고 문구는 ‘K-컨슈머리포트가 한국에서 첫 번째 고른 등산화는?’이다. 이전의 거짓을 정정한 것 같지만 꼼수는 여전히 숨어 있다. (위 이미지 참조) ‘스마트컨슈머’라는 국내 명칭은 깨알만한 글자로 숨겨놓고는 끝까지 ‘K-컨슈머리포트’라는 지구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기관을 들이민 데다, ‘한국에서 첫 번째 고른’이란 문구를 고집함으로써 ‘미국 컨슈머리포트가 한국 제품 중에서 첫손꼽았다’는 착시 효과를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 광고 문구다. 광고 중간 부분에도 ‘꼼수 변경’은 숨어 있다. 허위광고의 첫 판에서는 ‘한국판 컨슈머리포트’라고 쓴 부분을 두 번째 허위광고에서는 ‘K-컨슈머리포트’로 고친 것이었다. ‘영어를 써야 한국 사람들이 더 잘 헷갈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영어로 속인다’… 어디서 많이 본 수작이다. 이런 광고 작전에서 읽히는 것은 ‘틀린 정보라도 소비자를 속여 물건을 팔기만 하면 된다’는 태도다. 재벌기업은 이렇게 ‘허위 전면광고’를 해도 아무 제재도 당하지 않는 게 한국의 현실이라니 참 할 말은 없다만, 머릿속에선 문구가 뱅뱅 돈다. “재벌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