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집에 있는데 집전화 벨이 울린다. 받아보니 녹음 메시지가 나온다. “총선 여론조사이니…”. 바로 끊는다. 이런 ‘정치적 전화’에 대답할 아무 필요를 못 느낀다. 대답하고 싶지 않다. 팟캐스트 방송에서는 민간인사찰 피해자 김종익 씨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신이 사찰 당할 때 그 괴로움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도 모두 미친 사람 취급하고, 검찰에 가서 조사를 받아도 민간인사찰을 한 공무원들보다는 김종익 씨에게 오히려 책임을 묻는 분위기이고…. 그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서워졌을 때 딸만이 나를 꼭 안아줬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2010년 김종익 씨가 민간인 사찰 사실을 발설했을 때 민간인 사찰 문제는 걸러졌어야 한다. 그러나 그냥 2년이 지나갔고, 김종익 씨는 재산과 친지, 친구를 모두 잃었다고 했다. 심지어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했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고서야 겨우 생명의 끈을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런 나라에서 낯선 ‘정치적 전화’가 걸려와 “당신의 정치적 성향은 뭐냐?” “어느 후보를 지지하느냐?”고 묻는다. 무섭지 않은가? 앞으로는 묻고 뒤로는 사람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리는 나라에서 선거철만 되면 여론조사가 난리다. 도대체가 말이 안 된다. 언론 자유를 보장하든지, 정치적 여론조사를 하지 말든지 둘 중에 하나만 해야 할 것 아닌가? 여론조사를 통한 총선 판세분석이라는 게 그래서 한국에선 그야말로 쓸데없는 짓이다. 여론조사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집전화뿐 아니라 휴대폰 소지자도 조사대상으로 포함시킨다고 하지만(그것도 아주 일부 조사에서만) 모두가 다 웃기는 시도다. 대답하기 싫다는데 뭔 수단을 쓰든 조사결과가 제대로 나오겠느냐 말이다. 각 유권자의 머리 속을 스캔하기 전까지는, 제 정신으로 내뱉는 말을 통해 총선 판세분석을 하겠다는 것은 적어도 현재의 한국 상황에서는 어불성설이다. 이런 현실이 반영돼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 때부터 여론조사에 대한 응답률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말이다. 응답 자체를 안 한다는 말이다. 정치적 발언 때문에 다치는 사람이 하나둘씩 나타나는데 그 누가 정치적 언사를 낯선 상대방에게 하겠는가? 이런 과정 모두가 물론 정치 발전의 한 단계일 것이다. 지금은 ‘유력 대권 주자 옆에 몰려든 자리 사냥꾼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정당들이 제 자리를 찾아 정말로 국민 속에 뿌리를 내린 민주 정당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그래서 각 당에 대한 참가율-지지율만 보면 전체 판세를 쉽게 알 수 있는 시대가 이제 곧 한국에도 올 것이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치는 “나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백안시했던 한국인들이 최근 “정치가 정말 중요하구나”라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정당 정치의 정상화’가 곧 한국에서도 꽃필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여론조사로 먹고사시는 분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 한국에서 정치 여론조사는 그저 ‘하는 사람은 하지만, 그 누구도 믿지 않는’ 헛짓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