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이 처음으로 실시했다는 ‘K-컨슈머리포트’ 덕분에 1등으로 꼽힌 코오롱 등산화 판매가 3.5배나 늘었다고 한다. 좋은 상품을 정부가 선정해, 좋은 상품을 소비자들이 살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래서 미국에는 ‘컨슈머리포트’라는 게 있고, 한국에는 ‘K-컨슈머리포트’가 생겼다. 그런데 ‘한국판 컨슈머리포트’라 불리는 K-컨슈머리포트의 첫 품질평가(등산화를 대상으로 한)의 과정이나 결과를 보면, “이건 좀 곤란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언론들이 ‘K-컨슈머리포트가 첫 번째 품질평가로 등산화를 테스트했으며, 코오롱의 페더 등산화가 1등으로 꼽혔다’고 정부 발표 그대로 평면적 보도를 했지만, 주간지 시사IN은 조금 다른 접근을 했다. 선정 과정을 들여다본 것이었다. 결과는 상당히 실망스럽다. 우선 테스트할 상품 선정부터가 자의적이다. 한 경제신문 기사를 토대로 ‘사람들이 많이 신는 등산화 메이커 5곳’을 선정했고, 각 업체에 연락해 업체당 2개씩 10개 품목을 추천받았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좋게 평가하는 일부 제품이 배제됐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한국소비자원 측은 9일 “각 업체로부터 추천만 받았을 뿐, 해당 품목은 우리가 직접 시중에서 구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진정한 품질 테스트라면 이처럼 ‘업체로부터 천거를 받는 방식’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해당 업체가 입김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사례를 보자. 자동차 전문지들이 도로 테스트를 할 때 업체들로부터 자동차를 제공받는데, ‘시판되는 차와는 완전히 다른 차’를 보내는 게 문제가 되기도 한다. 엔진 튜닝이나 타이어, 실내 장식까지 시판 차와는 다른 ‘특별히 좋은 차’를 만들어 품평용으로 보낸다면 그 차가 아무리 좋은 점수를 받더라도 일반 소비자가 구입하는 시판 차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업체에 연락해 추천받는 방식'으로는 공정성 보장못해 그래서 미국 컨슈머리포트는 테스트 대상이 될 품목을 100% 자비로 사들인다. 그리고 업체에 연락도 않는다. 오로지 발표에서만 업체 이름이 나올 뿐이다. 컨슈머리포트가 ‘기업의 저승사자’가 되는 이유다. 컨슈머리포트는 민간 협회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엄정한 잣대를 적용한다. K-컨슈머리포트는 정부가 운영한다. 정부는 돈도 많고 인력도 풍부하다. 따라서 근본적인 개선책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정부는 ‘재벌 프렌들리’라는 비난을 받고 있지 않은가? 미식가 뉴요커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발휘한다는 신문 뉴욕타임스의 맛집 선정 방법을 보자. 맛집 담당 기자는 한 식당을 전혀 식당주에 연락하지 않고 세 번을 찾아가 시식을 한단다. 점심 메뉴와 저녁 메뉴를 먹어보고, 주말에도 또 한 번 별도로 가본단다. 손님이 적은 주중과 손님이 붐비는 주말 시간대에 맛은 달라지지 않는지, 서비스는 차이나지 않는지를 보고 나서야, 그 결과를 기사로 발표한다는 말이다. 이러니 독자가 믿고, 식당은 꼼짝 못하는 것이다. 이번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품질평가 결과는 매출과 바로 연결되며, 기업의 흥망까지도 좌우한다. 의학 실험을 할 때 부당한 개입을 막기 위해 ‘두 겹의 눈가리개(double blind)’ 방법을 동원한다. 이렇게 조심해도 부당한 개입이 더러 생긴다. 그런데 이번 K-컨슈머리포트의 첫 판정에서는 한 겹의 눈가리개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래서는 공신력을 보장받을 수 없고, 자칫 재벌 기업의 또 다른 ‘꽃놀이판’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