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경찰청장은 수원 성폭행-토막살인 사건에 대한 대국민사과문을 9일 발표했다. “112 신고센터와 경찰서 상황실 운영체계를 전면 바꿔 나갈 계획”이란다. 그러나 112 신고 체계를 바꾼다고 이런 사건이 안 일어날까? 그렇지 않다는 데 진짜 문제가 있다. 이번 사건의 수수께끼는 경찰서 112 신고센터의 ‘기본 인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핸드폰을 통해 성폭행의 현장이 ‘중계’되는데도 불구하고 신고센터의 경찰들은 “부부싸움 같은데~”로 판단했다고 9일자 한국일보가 보도했다. 전화통 건너편에선 피튀기는 살인극이 벌어지는데, 전화통 이쪽 편에선 “부부싸움인가 봐”라며 한가하게 듣는 상황이다. 무대를 바꿔보자. 만약 미국에서 911(비상 신고 전화번호) 신고가 이뤄졌고, 집안에서 남자가 여자를 폭행하는 목소리가 중계됐다면 미국 경찰은 5분 대기조를 현장 출동시켰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에선 가정폭력을 최고 중범죄로 치기 때문이다. 설사 ‘성폭행 현장’의 끔찍한 비명을 미국 경찰이나 한국 경찰이나 모두 “부부싸움인가 봐”라고 잘못 듣는다고 해도, 대응은 180도 달라질 것 같다. 미국 경찰은 부부 싸움에 즉각 출동이고, 한국 경찰은 "왠 부부싸움"이라며 한가하게 듣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필자가 미국 살 때 말썽 피우는 아들 녀석을 혼낼라치면 이 녀석은 바로 전화통을 붙잡았다. “때리기만 해봐. 911을 눌러버릴꺼야”라는 게 이 녀석의 대처 수단이었다. 학교에서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단다. 911을 눌러 경찰에게 “아빠가 때려요” 한 마디만 하면 5분 대기조 출동에다 아빠는 확실하게 감방 신세를 져야 한다. 가정폭력은 미국에서 중범죄 중의 중범죄이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한국에선 다반사, 미국에선 중범죄 오죽하면 재미 교포 사이에 “아들을 꼬여서 일단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내린 다음에 먼지 나게 두드려 팬다”는 우스갯소리 아닌 실제 상황이 회자되고 있겠는가? 미국에선 가정폭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가정폭력, 부부싸움을 신고하면 경찰이 발칵 뒤집히지만, 한국에선 가정폭력을 신고하면 경찰의 “아줌마, 왜 싸우고 그래?”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번 수원 사건에서도 경찰은 마찬가지로 대응했던 것 아닐까? “이 사람들, 부부싸움 세게 하네~”라며. 그래서 출동이 늦었고, 출동하고 나서도 사이렌을 울리지 않은 것 아닐까? 조현오 총장이 아무리 112 신고체제를 바꾼다 해도, 경찰의, 국민의 ‘가정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전에는 헛손질이 되기 쉽다. 당장 오늘 밤에라도 한 여자가 “여기 가정집인데요, 저 폭행당하고 있어요”라고 소리를 질러도, “이 아줌마, 부부싸움을 또 신고하네”라고 경찰이 생각한다면 수원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별것 아닌 가정폭력을 왜 미국에선 최고 중범죄로 칠까? 집안에서, 항상 붙어사는 사람이 폭력을 가한다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자. 그게 수원사건의 재발을 막는 한 방법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