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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례, 생활밀착 창작도예 외길 50여년

원로 도예가가 빚어낸 선현의 숨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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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68-269호 왕진오⁄ 2012.04.09 14:57:33

흙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있다. 그가 사는 집 역시 온통 흙이다. 콘크리트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흙은 화려하지 않다. 이 수수한 흙에 한국 전통의 수수하면서도 화사한 색과 무늬를 얹어 도자기를 만드는 한국 도예계의 대모 황종례(85) 여사를 만나 그녀의 도자기 세계에 대해 들어 봤다. 대학 시절 서양화를 전공한 황종례 도예가는 회화성이 강한 색상의 도자기를 만드는 데 탁월함을 보여왔다. 그의 작품에는 선과 면, 그리고 갈색, 녹색, 노랑 등 색채의 교감이 이뤄진다. 황 작가는 "진정한 우리의 것은 조용하고 운치있고 깊이가 있지요. 중국 도자기처럼 격하고 강하고 화려한 대륙적 감각의 도자기는 정적 문화를 가진 한국인에게는 친숙하지 않고 거부감을 느끼게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전통에 뿌리를 둔 창작 도예의 외길을 걸으며 '귀얄문' 추상 세계를 자신의 독창적인 작업 세계로 만들어냈다. “우리 것을 담아야 하고, 역사성이 있는 도자 문화를 만들어야 우리 것입니다.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작가 양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거든요. 일본에 가면 도자기가 없는 기업이 없어요. 우수한 문화를 가진 나라라야 기업도 성장하고 경제도 살아납니다.” 그녀는 조선시대 분청사기에 대한 관심 속에서 자신의 도자기 여정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분청사기를 관찰하니 “검소하고도 자연스럽고, 구수하면서도 소박한 모습이 오랫동안 보아도 싫증이 안 나고 정이 들었다”며 “꾸밈이 없는 표현, 회화성을 띤 모습에 애정을 갖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귀얄문은 돼지털이나 말총을 넓적하게 묶어 만든 풀비인 귀얄로 만든 무늬다. 황 도예가는 “귀얄로 감성을 자유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모양과 색상이 1200도가 넘는 불 속에서 완성돼 나와야 하는 귀얄문의 세계에 푹 빠져서 살다보니 어느덧 선생님으로서의 의무도 넘어섰으니 이제 남은 세월을 귀얄문과 함께 계속 걸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귀얄문은 조형적으로 속도감이 있는가 하면 '정중동'의 숨결이 살아 있는 듯하다. 타원형, 사선으로 빗대는 무늬가 있는가 하면, 가을날 강변에 나부끼는 갈대 같은 문양도 있다. 다채로운 추상적 표현이기에 보는 이에 따라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는 ‘감상의 여백미’도 있다. 황 작가는 후학들에게 실천적 창작론을 강조한다. “예라는 것은 기술적 품격이 높은 창작 작품이며, 정신·사상·철학이 생활 속에 함축되어야 그 속에 간직된 모티브가 예의 모습으로 작품화되어 나타난다”는 당부다. 그의 창작론은 오늘에 이르러 후학들이 본 받아야 할 교훈으로 새겨지고 있다. 미술 교류가 빈번히 이뤄지는 글로벌 시대에 국적 없는 창작품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황 작가는 이런 상황에 대해 “모방성이 짙은 작품은 자칫하면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가 없어 흔들리죠. 남의 것을 참고로 하되, 전통성을 외면하면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고 국제 경쟁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결론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일본은 도예 국가로서 세계에 정평이 나 있어요.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도자기 기술을 전수받았던 과거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일본이 수입 도자기 문화를 자기 것으로 착실히 뿌리를 내린 결과지요”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일본은 일찍이 개방 정책을 펴 해외에서 선진 기술을 배워오는 한편, 토착화에 힘썼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도 무작정 상품 수출 정책을 앞세우기보다는 우리 문화, 예술을 먼저 외국에 알리려는 노력을 펼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나라든 문화를 알리는 작업과 함께 대외 무역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이어 황 작가는 디자인 경쟁시대임을 강조했다. “상품도 디자인인 좋아야 잘 팔립니다. 즉 우리 전통에 기초한 특색있는 디자인이 나와야 외국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일본 디자인은 다양하고 마무리가 잘 되어 있어요. 고려, 조선 시대에 우리가 선진국으로서 일본인들에게 도자기·염색·직물·목기·나전칠기의 기술과 예를 가르쳐 줬던 역사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과거의 앞선 문화 예술 수준을 돌이켜보면 오늘날 우리는 낙후된 감이 없지 않다는 황 작가의 회고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일본 도자기가 앞서간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뒷짐만 지고 있으면 안 되죠. 생활에 밀착한 도예가 되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진작부터 생활도예를 계몽해오고 있습니다. 대중에 접목된 공예품이라야 그 가치성이 뚜렷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황종례의 이러한 생활예술론은, 일부 지각없는 상류층의 무조건·무비판적인 외래품 선호에 일침을 놓는다. “제대로 멋을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고가의 외국 제품을 사들여야 하는 것으로 아는 이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만 들어요. 요즘 지각있는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조기 교육을 시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의 예술·연극·영화·무용·국악 등을 접해 눈을 뜨게 해주는 교육입니다.” “정체되지 않고 살아있는 것을 담고 싶습니다. 자연에 귀의하면서도 인간적인 것을 담아내는 생동감을 작품에 표현하고 싶습니다. 독특한 창작품을 통해 우리나라 자연을 그릇에 표현하는 것이 저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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