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책 속의 정치 ①] 재벌 경제가 좋다고? 그럼 왕정복고 해야지

로버트 달 지음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를 읽고

  •  

cnbnews 제273호 최영태⁄ 2012.05.07 15:11:59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따뜻했던 경제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추억은 이런 거지요. “그래도 그 때는, 비록 재벌에게 돈을 몰아주긴 했지만, 다 전 국민이 잘 살자고 그러신 거고, 또 재벌들이 말을 안 들을 때는 쪼인트를 까서라도 말을 듣게 했는데…. 그래서 그때는 다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는데….” ‘그리운 박정희 경제’에 대한 향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에도 기여했고, 그래서 현 정권은 엠비노믹스라는 걸 추진했지요. 그 핵심은 ‘대기업 중심의 수출 드라이브’여서 사실상 박정희 식 경제노선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내용은 같은데 결과는 완전히 딴판이지요. 박정희 때는 수출 드라이브가 국민의 배를 따스하게 만들었는데, 이제는 재벌만 떼돈을 벌고 서민은 죽을 지경이지요. 자살이 세계 최고인 게 바로 죽을 지경이라는 증거이지요.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 관련 논의가 한창인 요즘, 로버트 달 지음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를 읽어 봤습니다.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경제민주화에 대해 현재까지 국내에서 나온 논의들이 대부분 세법 강화, 불공정거래 엄단, 복지 강화 등 ‘사후처방적’ 성격이 강한 반면, 이 책에서 제시하는 내용은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경제는 왕정시대로 놔두고 정치만 민주화하면 되나?" 저자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국가통치에서 민주주의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면 당연히 기업 통치에서도 그 정당성이 인정돼야 하는 것 아닌가? 만약 기업 통치에서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면 국가 통치에서도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즉, 왜 정치는 1인 1표의 민주주의로 운영하면서, 경제는 1인 1표가 아니라 1달러 1표의 원리로(즉 돈 많은 사람이 모든 결정권을 쥐는 황제식으로) 운영되느냐는 질문입니다. 한국 기업은 현재 황제식으로 경영됩니다. ‘오너라야 경영할 수 있다’는 게고, 이런 순혈주의 덕분에 3세, 4세 승계가 온갖 비리 속에서 이뤄지고 있죠. 김일성으로부터 내려오는 백두혈통이라야 통치할 수 있다는 북한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로버트 달은 한국인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습니다. “기업 운영에서 철인(오너) 통치가 최고라면 정치에서도 시끄럽고 느린 민주주의보다 철인통치를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사실 박정희의 경제정책도 이런 ‘철인(哲人)주의’에 근거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박정희는 사실상 자신의 쿠데타를 ‘새 왕조 창건’ 정도로 생각했다는 증거가 꽤 있거든요. 정치심리학자 전인권 저 ‘박정희 평전’을 보면 이런 측면이 잘 분석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한국인은 결정해야 할 단계에 온 것 같습니다. 기업 경영에서 황제주의를 인정하듯이 정치에서도 민주주의가 아닌 철인통치(귀족통치, 왕정)를 지향할 것인지, 아니면 정치민주화를 이뤘듯 이제 경제민주화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를.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