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안거낙업(安居樂業)을 이루고 대한민국이 세계 속의 선진국이 되는 것이 정치하는 이유이자 목표”라며 “안거낙업은 국민이 근심 걱정 없이 살면서 생업에 즐겁게 종사한다는 뜻이다. 어떤 정치 목표도 이것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말입니다. 고위 공직자의 기상천외한 범죄 행각을 매일처럼 보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정말 국민이 각자 생업에 창의적으로 전념할 수 있는 한국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너무나 비정상적인 정치-경제 환경에서 신음하면서 사는 한국인에게 한줄기 햇살이 되는 좋은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안거낙업이 최고의 정치 목표일까”라는 의문도 한켠에선 듭니다.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가 쓴 ‘다음 국가를 말하다-공화국을 위한 열세 가지 질문’(웅진지식하우스 간, 2011)에서 읽은 다음과 같은 글귀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유신 때도 “잘 살게 해줄테니 정치 잊어라”고 했는데… “고복격양(鼓腹擊壤)의 신화는 이제 버려야 한다. 누군지도 모르는 선량한 임금이 있어 나라를 대신 다스려 줄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일 뿐이다. 시민들이 국가를 남의 손에 내버려두면 그것은 예외 없이 시민을 노예적으로 억압하고 착취하는 폭력 기구로 전락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224쪽) 고복격양이란 태평한 세월을 즐김을 이르는 말입니다. 중국 요 임금이 국정 시찰을 나갔는데 한 노인이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하고, 해 지면 들어와 쉬네. 샘을 파서 물을 마시고, 농사지어 내 먹는데, 임금의 힘이 어찌 미치리오”라며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고사성어죠(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인용). 정치(나라 걱정)는 잊고 생업에 종사하는 즐거움의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라는 의미에서 안거낙업과 고복격양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데 동양 고전의 이런 태도에 대해 김상봉 교수는 “그러면 안 된다. 정치적 속임수가 있는 구호”라고 일갈한 것이지요. 제 경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선 한국에 사는 사람에겐 고복격양이든 안거낙업이든 다 안 됩니다.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미관말직까지 모가지가 왔다 갔다 하고, 청와대의 결정에 따라 내 삶이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나라에서 정치를 잊고 산다는 것은 바보짓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안거낙업 하면서 살아보니… 그런데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면 이런 안거낙업 또는 고복격양이 되더라구요. 제가 미국에 꽤 오래 살았는데, 거기서는 대통령이 누가 되든 사실 삶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주변 지인들의 모가지가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아니고, 백악관의 결정 사항이 내 피부로 느껴지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국에서 정치를 잊고 사니, 정말로 김상봉 교수 말대로 문제가 터지더라구요. 조지 부시라는 속칭 ‘불싯(bull shit) 대통령’이 아슬아슬한 표 차이로 8년 동안이나 집권하면서 미국 경제는 거덜 났고, 하루도 쉴날없는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더라구요. 미군에 입대한 한인 청년들까지. 그래서 고복격양이나 안거낙업은 아주 보수적인 구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는 내가 할 테니 너희들은 알아서 생업에 전념하라는 의미이고, 이런 구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충분히 경험했죠. ‘10월 유신’ 이후 국민들이 자기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일이 아예 없어지자(“정치는 잊고 살아”) 국민들의 불만감은 높아갔고, 그때 박정희 정권이 추진했던 게 바로 “더 박차를 가해 경제를 개발하고 국민소득을 더 빨리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거든요. 박근혜 위원장의 안거낙업을 최고 이상향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김상봉 교수처럼 ”시민이 적극 정치에 관여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볼만한 문제죠? 최영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