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경제불황으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장기화 속에서 국내 기업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미 직원들 대상의 체험형 해병대 입소캠프는 생존전략의 기본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기업들은 더 전략적이고 효율적인 생존전략 마련에 고민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근 신세계그룹이 내놓은 유명 TV프로그램 ‘개그 콘서트’를 통한 생존전략 배우기는 시사하는 점이 크다. 일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이 나갈 방향을 배울 수 있다면 기꺼이 배우겠다는 적극적이고 유연한 경영관이라는 주변 평가다. 앞서 기업들이 하리수나 디자이너 고 앙드레김 같은 성공한 스타들을 벤치마킹한 사례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신세계처럼 특정 오락프로그램에서 성공비법을 찾는 것은 새로운 시도다. 무엇보다 기존 핵심역량인재 확보나 조직역량 극대화 전략 같은 진부한 전략을 벗어났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신세계 측은 앞으로 개그콘서트만의 강점에서 시장경제 논리를 끌어내고, 담당 PD를 초청해 임직원 대상 특별강좌를 듣는 시간도 준비하고 있다. 결과에 따라서는 주변 기업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신세계뿐 아니라 최근 재계에 폭넓게 불고 있는 그린경영, 착한기업 마케팅까지 기업들의 신 생존전략을 살펴본다. 신세계그룹이 적자생존-무한경쟁 구도로 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록하고 있는 ‘개그 콘서트’의 성공 사례에서 기업 생존전략을 배우기로 했다. 신세계그룹은 5월 2일 사내 방송국(SCS)의 ‘SCS 스페셜’ 코너를 통해 ‘개콘을 보면 기업 경쟁력이 보인다’는 주제로 개콘의 차별화 전략을 방영했다. 또 다음 달에는 같은 주제로 개콘의 서수민 PD가 신세계백화점의 임직원 대상 강좌인 ‘지식콘서트’에서 특강할 예정이다.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개콘에 냉혹한 시장경제 논리가 숨어 있으며, 출연-연출진이 매번 ‘올인’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에 맞설 수 있다고 신세계그룹 경영진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경쟁 구도 ‘필살기’로 간판 프로그램 등극 개콘에서는 통상 15개의 코너가 무대에 오르지만 2, 3개 코너는 편집을 거치면서 경쟁 콘에 밀려 전파를 타지 못한다. 또 100여 명의 개그맨 가운데 선후배와 상관없이 절만 정도만 방송에 출연할 수 있다. 3~5분짜리 프로그램 하나를 위해 1주일간 ‘필살기’를 고민하게 만드는 방식인 셈이다.
1999년 9월 첫 방송 이후 개콘의 적자생존 구도는 바뀌지 않았고, 경쟁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비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무한경쟁의 논리는 이마트가 핵심 경쟁력으로 꼽는 글로벌소싱 분야의 사내 경연장인 ‘이마트 해외소싱 컨벤션’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매달 한번 정도 열리는 해외소싱 컨벤션에서는 바이어들이 발로 뛰어 전 세계에서 3개월~1년 가량 발굴-준비한 새 제품들이 선보인다. 통상 50여개 정도가 진열되는데 여기서도 냉혹한 시장경제의 논리가 적용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비롯한 이마트 경영진이 높은 안목으로 낙점한 제품은 20여개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문제점을 보완해 재경합에 나서거나, 아예 출시되지 못 하고 사장된다. “경쟁 업체에서 6개월 안에 따라잡을 수 있거나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지 못 할 것 같은 상품은 처음부터 가져오지 마라”는 것이 경영진의 주문이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거친 해외소싱 컨벤션의 간판스타는 ‘반값 상품’들로 태어났다. 최근 6개월간 ‘이마트 반값 빅3’로 꼽히는 이마트 TV, 세라도 원두커피, 반값 자전거가 이 과정을 통해 개발됐다. 협업 시스템으로 적재적소 분배, 최고의 시너지 개그맨들의 선후배 관계는 엄격하기로 소문나 있다. 개콘도 예외는 아니어서 연예프로그램 등을 통해 비춰지는 개그맨 후배들의 모습은 이른바 ‘군기’가 얼마나 센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개콘의 차별성은 선후배와 상관없이 해당 코너의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는 개그맨을 적재적소에 분배하는 데 있다. 종종 어느 누구의 아이디어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흥행을 위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더 잘 실행할 수 있는 동료에게 그 역할을 넘겨주기도 한다. 이처럼 적절한 역할과 책임(Role & Responsibility)으로 시너지를 창출하는 경영 원리는 이마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마트는 ‘협력업체 경쟁력이 곧 이마트의 경쟁력’이라는 판단 아래 새로운 상품 개발 과정에서 전통적 유통-제조업체 구분을 뛰어넘는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히 국내 중소업체가 수입한 완제품을 판매했다면, 지금은 제조업체를 대신해 해외에서 원료를 사오는 방식을 택해 반값 상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컨대 오는 7월쯤 런칭할 예정인 ‘이마트 콘칩’의 경우 이마트가 미국 굴지의 가공식품업체인 타이슨에서 싼값에 옥수수가루 원료를 사오고, 국내 중소제과업체인 청우식품이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춰 콘칩 제품을 개발하는 방식을 택했다. 또 앞서 선보인 ‘이마트 세라도 원두커피’도 이마트가 수입한 생두를 국내 중소업체가 로스팅 하는 등 협업시스템을 성공시킨 사례다. 세라도는 지난해 11월 출시된 지 반년 만에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100여개 원두커피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독보적인 상품으로 급부상했다. ‘그린경영’ ‘착한기업 마케팅’ 등 다양한 전략 등장. 철저한 고객분석, 트렌드 맞춤전략에 나서 신세계백화점도 마찬가지다. 고객 니즈의 변화를 따라가는 데 급급하지 않고 오히려 고객 앞에서 이끌어가는 데 조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패션과 식음 분야의 트렌드 변화가 빨라지면서 충성고객을 확보했다고 안심할 수 없으며, 최고라고 해서 끝없이 사랑 받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지난 2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선보인 ‘디자이너 슈즈 편집숍’의 경우 가치 소비 트렌드에 따라 뛰어난 디자인과 품질을 고집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을 원하는 고객들이 많아지는 추세에 따라 만들어졌다. 이 매장의 상품은 최신 유행의 ‘핫 플레이스’로 꼽히는 홍대, 청담동, 가로수길 등에서 인정받은 디자이너 브랜드가 대부분이다. 신세계백화점은 편집숍의 성공에 힘입어 캐주얼 의류까지 그 영역을 확대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3월에는 본점과 강남점에 신진 디자이너의 캐주얼 여성의류 편집숍인 ‘신세계 앤 컴퍼니, 컨템포러리’를 여는 등 한층 다양해진 니즈를 리드한다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업계의 기존 관행을 떠나 지금부터는 백화점 편집매장이 고객들에게 먼저 패션 트렌드를 제안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기업들 ‘그린경영’ ‘착한기업’ 마케팅 전략 내세워 이밖에도 최근 뜨고 있는 기업들의 생존전략에는 ‘착한 기업 마케팅’도 있다. 올초 패스트 패션을 주도하는 몇몇 SPA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이 더 많은 옷을 사도록 조장해 자원을 낭비한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몇몇 의류업체가 유기농 면이나 폐기물을 재활용한 섬유를 전체 제품의 95%에 적용하는 친환경 전략으로 소비자에게 어필하며 나름 높은 판매율을 올리기도 있다. 이런 경우 기업의 이미지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추세라 할 수 있는 그린경영도 주목받고 있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LG와 포스코를 비롯한 대기업과 웅진 등 중소기업들이 동참하고 있다. LG는 2020년까지 ‘Green 경영’에 20조 원을 투자하며 본격적인 녹색성장 전략을 새 생존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3대 전략과제’를 세웠다. 또 ‘Green 경영’ 전략을 통해 물(원수) 사용량을 30% 절감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포함시켰다.
포스코 역시 그린경영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포스코는 인천 송도에 ‘포스코 그린빌딩’을 건설 중이며 건물운영에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태양광, 지열, 빗물 재활용 등 110여 가지 친환경 에너지를 확보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포스코 그린빌딩은 일반 건축물에 비해 이산화탄소 사용을 크게 감축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밖에도 웅진코웨이가 중소기업 협력사와 그린파트너십을 통해 상생경영에 나선 것도 특화된 생존전략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기업 관계자들은 최근의 이런 생존전략에 대해 “전 세계적인 무한경쟁의 환경 속에서 기업들이 자신만의 특화된 생존전략 없이는 지속가능하기 어렵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 이완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