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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고민이 만들어낸 예술 철학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열린 첫 ‘데미안 허스트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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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6호 박현준⁄ 2012.05.29 11:01:57

그는 참으로 쿨하다. 예술가인가 사업가인가 하는 수많은 비난에도, 그의 작품은 대중의 눈을 속이는 사기이고 곧 가치가 하락할 것이니 지금 파는 게 낫다는 어느 작가의 독한 비평에도 불구하고 꿈쩍하지 않는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그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는 분명 잊혀져가던 영국 현대 미술을 세계 예술의 선두에 당당히 올려놓고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중심에서 수많은 미술품 수집가들과 예술 관람객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주인공임에는 틀림없다. 2012년 런던 하계 올림픽을 향해 질주하는 런던 시가 방문객에게 선사하는 선물 보따리 중 하나인 데미안 허스트 회고전이 4월 4일 5개월간 일정으로 시작됐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허스트의 대형 전시인 만큼 그의 작품을 만나 보는 좋은 기회다. 런던 시가 야심차게 부활시킨, 버려진 발전소에 들어선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은 런던의 현대 미술관을 대표하는 곳이다. 개관한 지 한 세기를 조금 넘긴 지금 내셔널 갤러리를 제치고 영국 박물관에 이어 영국에서 두 번째로 관람객이 많은 미술관이 됐다.

런던의 심장부에 위치한 세인트 폴 성당은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현대와 조화를 이루는 런던의 정신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세인트 폴 성당을 뒤로 하고 밀레니엄 브리지를 건너 테이트 모던에 들어서면, 미술 경매의 기록을 무섭게 갈아치우면서 명실상부 현대 미술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의 한 사람이 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회고전이라는 특성대로 그를 세계 미술의 스타덤에 올려놓은, 포름알데이히드 속에 길이 4미터가 넘는 죽은 상어를 전시한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년 작)’, 18세기 사람의 두개골에 플래티넘과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은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 2007년 작)’가 전시되고 있다. 물론 이 외에도 파리들과 죽은 소를 유리관에 전시한 ‘천년(A Thousand Years, 1990년 작)’ 등 20년 넘게 이어져온 그의 주요 작품들이 소개된다. 전시회를 주관한 테이트 모던은 이번 회고전 중 가장 눈여겨봐야 할 작품 중 하나로 처음 공개되는 ‘약국(Pharmacy)’을 지목했다.

허스트의 1992년 작 약국은 실제 약국의 모습을 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약 선반의 가장 위에는 두통약들이, 중간 선반에는 위장약들이 그리고 가장 아래쪽에는 발 치료약들이 진열돼 인간의 몸을 표현한다. 죽음에 관한 성찰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주로 작업해온 그에게 약이나 주사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시적 고통을 덜어줄 수는 있으나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이라는 의미인가? 숙명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고민과 예술에 대한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작품에 대해 허스트는 “나는 어떤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도 없이 약을 맹신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술에 대해서는 같은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마도 이는 그의 예술에 대해 끊임없는 독설과 의구심을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허스트의 대답일 수도 있다. - 최수안 런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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