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있는 남성상, 여성상은 무엇일까? 공연 무대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전엔 강한 남성과 연약한 여성이 환영받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강하고 당당한 여자, 외모에 신경쓰는 세심한 남자가 무대 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제 남성성과 여성성을 한 가지 특징으로 확실히 구분짓기 힘들게 됐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요즘 공연계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겸비한 인물들을 적극 내세우고 있다. 뮤지컬 ‘풍월주’에는 남자 기생이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신라 시대에 ‘풍월’이라 불리는 남자 기생 계급이 있었다는 가정 아래 천하를 호령하는 진성여왕과 최고의 기생이었던 열 그리고 열의 돈독한 친구 사담의 이야기를 그린다. 풍월들은 손님을 위해 춤과 노래를 배운다. 특히 열이 진성여왕 앞에서 벌이는 춤사위는 선이 고우면서도 농염하다. 남자가 추는 요염한 춤이다. 하지만 이들이 부드러운 면만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남자다운 박력 또한 있다. 항상 칼을 지니고 다니며 접대하는 손님에게 자신의 충성을 바친다. ‘여인을 읽는 법’이라는 뮤직 넘버에서는 박력 넘치는 춤 동작을 보여준다. 이런 묘한 중성 캐릭터들과 함께 이 공연이 관심을 받는 이유 중에는 ‘동성애 코드’도 있다. 극 중 열과 사담의 사이를 우정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자칫 동성애로 비춰질 수도 잇는 이들의 돈독한 사이는 진성여왕을 노하게 만든다. 이재준 연출은 “동성애 코드에 관한 논란이 많은데 그런 부분을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지만 작품 구상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며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이, 내게 없어선 안 되는 존재를 정민아 작가가 보여주려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그 형태가 굳이 단어로 이야기하자면 사랑이라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전적으로 동성애에 중점을 둔 작품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뮤지컬 ‘풍월주’는 7월 29일까지 서울 동숭동 컬처스페이스 엔유에서 막을 올린다. 이재준이 연출을 맡았고, 성두섭, 이율, 김재범, 신성민, 구원영, 최유하, 김대종, 원종환, 임진아, 신미연 등이 출연한다.
연극 ‘M. 버터플라이’에는 여장 남자가 등장한다. 중국계 미국인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1986년 국가 기밀 유출 혐의로 법정에 선 전 프랑스 영사 ‘버나드 브루시코’의 실화를 소재로 한다. ‘여장한 동양 남자를 20년 넘게 사랑한 서양 남자’라는 소재에 오페라 ‘나비부인’을 차용했다. 프랑스 영사 ‘르네 갈리마르’와 경극 배우 ‘송 릴링’ 사이의 기묘한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남성과 여성, 서양과 동양에 대해 일반인이 가진 편견을 비판한다. 동시에 인간의 욕망까지 폭넓게 다룬다. 특히 극 중 르네 갈리마르의 마음을 빼앗는 송 릴링은 여장 남자로, 등장부터 묘한 자태를 드러내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페라 가수로 분하는 송 릴링의 의상은 기모노, 경극 의상, 중국 전통 복식 등 총 9벌로 등장 때마다 색다른 매력을 드러낸다. 하지만 극의 절정에서는 여장이 아니라 완연한 남성의 모습으로 등장해 충격적인 반전을 선사한다. 갈리마르와 릴링 사이의 관계에 대해 김광보 연출은 “그들은 서양-동양,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의 대표로서 서로를 이용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각자에게 결여된 부분을 상대방에게 찾으며 동질감을 느낀다”고 해석했다. 그는 “남자인 르네에게는 부족한 남성성을 여자로 분장한 송의 중성적 모습을 통해 발견하는 것처럼 명확하게 반대되는 두 사람은 거울을 보는 것처럼 서로의 갈망을 채우며 환상의 세계를 구축한다”고 설명했다. 연극 ‘M. 버터플라이’는 6월 6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김광보가 연출을 맡았고, 김영민, 김다현, 정동화, 손진환, 정수영, 한동규, 이소희, 김보정 등이 출연한다.
뮤지컬 ‘라카지’엔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갖춘 게이 커플이 등장한다. 게이 커플 앨빈과 조지 사이에서 자란 아들 장 미셀은, 게이의 존재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극보수주의 정치인 에두아르 딩동의 딸 앤과 결혼하겠다고 선포한다. 소동이 벌어지는 게 당연하다. 극 중 앨빈은 남자지만 엄마로서의 역할도 하는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앨빈 역을 맡은 정성화는 “여성이 가진 내면의 아름다움 중 최고가 모성애라고 생각한다”며 “모성애를 가장 잘 표현한 캐릭터가 앨빈이 아닌가 싶다. 외형적으로 난 게이 연기에 적합하지 않지만 무대 위에서 앨빈의 모성애를 표현해 누구보다 아름다운 연기를 보여주려 하며 자신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드라마 ‘개인의 취향’과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에서도 게이 역할에 도전했는데 매번 연기의 패턴이 달랐다”며 “이번에도 색다른 연기를 선보일 것이다. 게이 친구들이 있는데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런던에서도 여장 남자들을 만나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많은 정보를 조사해 좋은 연기를 보여 드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뮤지컬 ‘라카지’는 1973년 프랑스의 극작가 장 프와레에 의해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진 후 동명의 뮤지컬로 1983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클럽 ‘라카지오폴’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겉으로는 화려한 쇼 뮤지컬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결국엔 전 세계 공통의 정서인 가족과 사랑 그리고 인간애를 독특한 캐릭터들이 모여 풀어낸다. 공연될 때마다 토니어워즈 작품상(1984, 2005, 2010년)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는 뮤지컬 ‘라카지’는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7월 4일부터 9월 4일까지 막을 올린다. 이지나가 연출을 맡았고, 정성화, 김다현, 남경주, 고영빈, 이창민, 이민호, 윤승원, 천호진, 전수경, 도정주, 유나영, 김호영, 이지송 등이 출연한다.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