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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vs 패스트

“돈 더줘도 환경보호” 대 “한철 입고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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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78호 정초원⁄ 2012.06.11 13:11:25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서희(28·가명) 씨는 최근 ‘에코 라이프’에 푹 빠졌다. 음식물 쓰레기를 건조시켜 집안에 키우는 화분 비료로 주는가 하면, 유행 지난 옷들은 재봉틀로 손봐 새 옷처럼 만들기도 한다. “제가 생각하는 요즘 트렌드는 화려한 명품과는 거리가 멀어요. 가죽 백 대신 에코백을 걸치고,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 들고 다니는 게 오히려 세련됐다는 반응이에요.” 이 같은 친환경 흐름을 방증하듯, 국내 기업들도 ‘환경 보호’를 내세운 마케팅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화장품·식품 업체는 소비자들의 건강과 밀접히 관련된 생활용품을 다루는 만큼, ‘그린 마케팅’을 활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다수의 기업이 친환경을 표방하는 제품을 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캠페인 활동까지 곁들이고 있기도 하다. 반면 유행하는 아이템을 빠르고 손쉽게 갈아치우는 정반대의 경향도 여전하다. 특히 패스트 패션의 대명사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제조·유통 일괄화 의류)’ 산업에 제일모직 등 국내 대기업들이 진출하면서 이런 추세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패션업계에서는 재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와 소비자들의 욕구를 따라잡기 위한 최적의 시스템은 SPA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식음료업계, 친환경으로 ‘건강’ 이미지 강조 롯데칠성음료는 이달 중순부터 ‘그린 보틀’이라 불리는 친환경 식물성 페트를 사용한 펩시콜라를 선보인다. 그린 보틀은 제조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이는 것은 물론, 100% 자연친화적 재활용이 가능한 차세대 음료 포장 기술이다. 이번 그린 보틀에는 사탕수수로부터 추출한 식물성 원료가 30% 정도 함유돼 있다. 이미 지난해 3월 미국 펩시콜라 본사는 세계 최초로 건초, 소나무 껍질, 옥수수 껍질 등 친환경적 원재료를 이용한 100% 식물성 원료의 그린 보틀 개발에 성공했다. 롯데칠성음료는 향후 오렌지 껍질, 감자 껍질, 귀리 껍질 등 재생 가능한 재료들을 더욱 많이 사용한 그린 보틀을 적용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2010년 3월 칠성사이다의 탄소성적표지 인증을 받는 등 8개의 탄소성적표지 인증 제품을 보유했다. 뿐만 아니라 ‘2018 ASIA 지속가능경영 선도기업 진입’이라는 비전 아래 친환경 음료개발, 에너지 재활용 및 고효율 설비 도입, 사회적 책임경영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식물성 원료 사용량을 점차 늘려나가고, 지속적인 용기 개선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의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강화하겠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공식 후원사로 참여하고 있는 여수엑스포에서 그린 보틀에 담은 펩시콜라를 선보일 예정”이라며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친환경 캠페인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오비맥주도 몇 년 전부터 친환경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오비맥주는 2010년부터 몽골에서 ‘몽골 희망의 숲’ 조성 사업을 벌여왔다. 이 사업은 ‘카스’ 맥주 판매금액의 1%를 적립해 기금을 모아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타워 아이막 에르덴솜에 15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대규모 환경개선 프로젝트다. ‘맑은 물 지키기 캠페인’ ‘그린 세이빙 프로젝트’ 등 녹색환경 프로젝트 또한 오비맥주의 환경 캠페인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이천, 광주, 청원 등 3개 공장의 설비를 친환경으로 교체한 ‘그린 세이빙 프로젝트’를 통해 지난 3년간 온실가스 4만 톤을 줄이는 성과를 냈다. 이 프로젝트로 인해 매년 감소된 온실가스는 2008년 1만600톤, 2009년 1만1900톤, 2010년 1만7200톤으로, 금액으로 환산한다면 90억 원에 달한다. 화장품 업계도 마찬가지다. 피부에 닿는 것에 민감한 여성들의 정서를 반영하듯, 친환경 이미지를 통해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2010년부터 ‘에코 손수건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지구를 위해 손수건을 꺼내세요”, 즉 쉽게 쓰고 버리는 휴지 대신에 손수건을 사용해 환경을 보호하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환경 캠페인이다. 올해는 ‘제주 야생화를 보호하자’라는 주제로 멸종 위기에 처한 금새우란, 한란, 죽절초, 황근 등 야생화를 일러스트로 그린 에코 손수건 3종을 선보인다. 스테디셀러 아이템인 ‘더 그린티 씨드 세럼’과 ‘그린티 미네랄 미스트’ 리미티드 에디션의 판매 수익금은 모두 제주 야생화를 복원하는 활동에 기부된다. 이니스프리는 저탄소 용기와 친환경소재 포장재를 사용한 제품 생산과 환경보호를 위한 다양한 그린라이프 캠페인도 펼치고 있다. 연간 판매 수익금의 3% 이상을 자연과 이웃을 위해 기부하고 친환경 캠페인으로 연간 200그루의 나무를 살리는 데 기여한다는 목표다. 이혜진 이니스프리 마케팅팀장은 “나무와 숲, 제주 야생화들을 살리고 더 나아가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이니스프리 에코 손수건 캠페인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의 ‘비욘드’는 출범 단계에서부터 자연주의 ‘에코 브랜드’로서의 철학을 내걸었다. 회사 측은 현재 동물실험 반대와 재활용 가능한 포장재 사용 등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올해 초 출시된 ‘비욘드 패치의 신 3종’은 팬더, 곰, 물개 등의 동물 캐릭터를 패키지에 적용해 “동물 실험 반대” 메시지를 내세웠다. 자동차도 에코가 대세 친환경 흐름에 자동차 업체들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최근 열린 2012 부산국제모터쇼의 주제 또한 ‘바다를 품은 녹색 자동차의 항해’였다. 친환경 자동차를 전면에 내세우려는 취지였다. 부산모터쇼 측은 기존 가솔린 및 디젤 차량의 연비 효율을 극대화한 신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 전기자동차 등 그린 카(Green Car)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번 모터쇼에서 친환경 주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한 업체는 르노삼성이었다. 르노삼성은 ‘전기차의 리더십과 미래(EV Leadership & Future)’라는 주제로 전시관을 꾸렸다. 특히 순수 전기차 ‘SM3 Z.E.’를 야심차게 선보였다. SM3 Z.E.는 소음이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 자동차로, 내년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양산될 모델이다. 유럽 자동차들도 친환경차 개발에 적극적이다. BMW는 지난달 15일 ‘BMW i’라는 새로운 서브 브랜드를 런칭하고 본격적인 친환경 자동차를 개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당시 발표회에서 우베 드레아 BMW i 브랜드 매니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500만 달러짜리 저택 거주자는 집 앞에 벤츠나 포르쉐가 아니라 도요타의 환경 친화 자동차 프리우스를 더 자랑스럽게 세워 둔다”는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부자들이 돈을 자랑하기보다는 “나는 능력이 되지만 그래도 환경보호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앞세우고 있다는 조사 결과다. 앞으로 이런 태도가 확산되면 세계 자동차 시장의 흐름도 바뀔 것이라는 게 BMW의 예상이다. 에코 라이프를 기업 이미지 캠페인에 활용하는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프리우스 덕분에 ‘가장 친환경적인 자동차 업체’라는 이미지를 얻은 토요타는 한국 시장에서도 이런 정체성을 적극 어필하고 있다.

한국토요타는 최근 토요타 하이브리드 차량 기존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체험형 친환경 캠페인인 ‘토요타 주말 농부’ 참여 가족을 모집했다.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모델을 소유한 구매고객에게 친환경 농법으로 텃밭을 가꾸는 기회를 제공하는 행사다. 직접 손으로 재배한 농산물을 식재료를 사용해 농산물의 장거리 이동에서 발생하는 CO2 배출 감소에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분양 받은 5평 중에서 1평에서 나온 농산물은 소외계층에게 기부해 사회를 돕는 행동까지 추가로 할 수 있다. 토요타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자연을 가까이 하기 어려운 도시 어린이들에게 땅을 일구는 소중한 경험을 제공하는 한편, 사회공헌 경험도 줄 것”이라며 “토요타 하이브리드 오너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친환경 에코 라이프를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쪽에선 ‘패스트패션’ 대명사 SPA 인기 반면 한쪽에선 친환경 트렌드와는 전혀 다른 산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국내 패션시장을 주도한 SPA 산업이 대표적이다. SPA는 제조·유통 일괄화 의류를 일컫는 말로, 소비자들의 반응과 유행에 따라 제품을 순발력 있게 출시하는 시스템이다. 일명 ‘패스트패션’의 개념이다. 지난해 전체 패션시장 규모는 29조5000억 원. 그중 SPA가 차지하는 규모는 1조9000억 원 가량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6.4%를 조금 넘어 아직까지 미미한 수준이랄 수도 있지만, 성장률을 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최근 4년간 전체 패션시장 성장률은 평균 3.9%로, 사실상 정체된 수치다. 반면 같은 기간 SPA는 평균 56.0% 성장해 향후 더욱 폭발적인 신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국내 패션시장을 위협하는 브랜드는 스페인의 망고(MANGO), 자라(ZARA), 스웨덴의 H&M, 미국의 갭(GAP), 일본의 유니클로(UNIQLO) 등 외국계 SPA다. 국내 소비자들은 트렌디한 중저가 의류가격, 짧은 주기로 출시되는 SPA 브랜드에 마음을 뺏겼다. 고가 제품보다 원단이 좋지 않다는 평가도 다소 있었지만, 유행하는 제품을 한철 입는 용도로는 꽤 실용적인 선택이었다. 의류는 일상적으로 SPA 제품을 활용하고, 고가 브랜드 제품은 가방, 장신구 등 ‘오래 사용할 수 있는 품목’에 한정해 구매하는 소비 패턴이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퍼졌다. 이 같은 흐름을 감지한 국내 업체들도 SPA 시장에 출사표를 내던지기 시작했다. 이랜드는 2009년 10월 스파오(SPAO)라는 SPA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어 여성복 ‘미쏘(MIXXO)’까지 내놓으며 본격 공략에 나섰다. 국내 패션 산업의 강자 제일모직 또한 올해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를 출시했다. 앞서 제일모직은 2009년 4월 스페인 브랜드 망고와 계약을 맺어 위탁판매를 한 이력도 있다. 제일모직은 그간 빈폴과 갤럭시, 로가디스, 엠비오, 구호, 띠어리 등 비교적 고가 브랜드를 주력으로 내세웠던 기업이다. 사업 방향이 SPA 노선과는 전혀 달랐다. 그러나 제일모직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서현 부사장은 에잇세컨즈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에잇세컨즈 출범 당시부터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겠다‘는 포부가 새어나왔다. 이는 패션시장의 세계적인 트렌드가 패스트패션 쪽으로 확고히 굳어지고 있다는 증거로 읽힌다. 장기간에 걸쳐 기획-제작을 하는 기존 시스템으로는 ‘패스트패션’으로 이동하는 국제 흐름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인 것이다. 환경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에코 트렌드, 그리고 ‘빨리, 더 쉬운’ 소비를 추구하는 패스트패션 중 어느 쪽이 최종 승자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 정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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